32. 성도의 용서 (마 6:14~15)
32. 성도의 용서 (마 6:14~15)
  • 주성호
  • 승인 2018.08.0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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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주기도문에서도 용서에 대한 말씀이 있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본문에서 주님은 용서에 대해 더욱 강조하셨는데 그만큼 용서가 중요함을 일깨워 주셨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기도생활을 열심히 해도 실제로 용서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면 주기도문의 간구가 헛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에 있어서 사랑은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것인데 용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사랑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성숙한 신앙인의 증거는 용서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삶은 곧 용서의 삶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실천임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다.

첫째: 성도의 용서(14절)

1) 사람의 과실

과실 (paraptoma) 이란 '결으로' (para) '떨어진다' (piptw)는 두 낱말의 합성어로 '곁으로 떨어진다, 길을 잃다, 배반한다'는 뜻을 가진다. 빚이란 뜻을 가진 죄 (a;martia)와는 근본적으로 개념을 달리하는 낱말이다. 죄란 원죄와 연결되는 것으로 인간 스스로 처리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셔야 하는 것이고, 과실이란 진리와 의에서 벗어난 실질적인 잘못들로서 영어로는 'trespasses'이다. 죄로 인해 부패한 인간성을 지닌 인간은 많은 과실 속에서 살게 되어 있다. 과실은 죄에 비하면 미소한 잘못, 허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속출하는 과실들을 관대하게 포용하고 이해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과실의 악한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고 선한 길로 인도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으레 과실이 있기 마련인데 용서와 관용이 없으면 살벌할 뿐, 문제만 가중될 것이다.

2) 용서해야 할 이유

형제의 과실을 용서해야 할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죄를 용서받은 자로서 형제의 작은 과실은 이유 없이 용서하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는 용서를 받고 형제의 과실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배은망덕한 자가 될 것이므로 결국에 가서는 자신의 잘못도 용서 받을 수 없다. 큰 은혜를 입은 자가 용서하지 못하며 배은망덕한 경우를 예수께서는 비유로 가르쳐 주셨다. 마 18:23~34는 천국 비유 중 빚진 자의 용서에 대한 내용이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탕감하여 주었는데 그가 돌아가는 길에 불과 백 데나리온 빚진 자기 친구를 만나게 되어 붙들어 목을 잡고 갚을 테니 조금만 참아 달라고 사정하는 친구를 옥에 가두고 말았다. 주인이 후에 이 사실을 알고 노하여 탕감했던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어 버렸다.

35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큰 죄를 이미 용서받았어도(하나님께로부터), 이웃간에 용서하는 생활을 하지 않을 때 이전 용서했던 것이 무효가 됨은 물론 더 큰 벌을 받게 된다는 비유였다. 형제의 과실을 용서하기가 쉽지 않지만 실제로 용서하고 나면 용서받은 당사자보다 용서한 내가 더 기쁨과 평강을 누리게 됨을 경험하게 된다. 남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과실만을 용서해 달라고 한다면 이는 올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니다.

둘째: 하나님의 용서(15절)

1) 하나님의 용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악에 대해서는 엄격하시지만 그래도 징벌보다는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신다. 때로는 선악 간에 엄중한 심판을 내리시지만 무조건적인 용서를 베푸시는 모습이 더욱 많으시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은 죄에 대한 보응보다는 사랑으로 인간을 상대하시는데, 특별히 무한한 사랑으로 인한 용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대속 제물에 의한 구속에서 증거되었다. 엡 1:7, 13~14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같은 믿음으로 산 성경의 대표적 인물이 있다면 구약에서는 요셉이고 신약에서 스데반을 들 수 있다. 창 45:5에서 요셉은 자기를 노예 상인들에게 팔아 넘긴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에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한다. 행 7:16의 스데반은 돌아 맞아 죽으면서 기도하기를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했다. 이러한 것은 인간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나 하나님의 용서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기만 하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우리도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의 풍성함을 무시하며 회개치 아니하고, 남을 용서 한 번 못한 자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시행되는 마지막 날에 행한 대로 보응 받는다고 했다(롬 2:4~10).

2) 용서할 수 없는 경우

성도로서 받은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이 있다면 믿음으로 인해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의한 것인데, 죄 용서함을 받은 자는 형제의 지극히 작은 과실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성도로서 형제의 과실을 용서하지 못할 때 천부께서도 어떠한 경우라도 너희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본문의 말씀은 실제적이면서 구체적인 주님의 말씀으로 대단히 중요한 교훈이기도 하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말은 깊이 새기면서 형제의 과실을 용서하라는 말은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형제의 과실을 용서해주고 우리 자신의 허물도 용서받아야 한다. 이때에 12절 주기도문 중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거리낌없이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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