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받아들이기
자신을 받아들이기
  • 김재용
  • 승인 2018.07.1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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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목회 칼럼 16

외모에 대한 불만이 있다. 어려서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뻣뻣하게 곧게 뻗은 헤어스타일이라 남들 다하는 옆으로 빗겨 멋지게 헤어스타일을 만들고 외부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동생이 미용학원에서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부터 연습 상대 삼아 머리에 파마를 해 줄 때만 옆으로 넘기면서 나름 멋을 부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도 직선으로 곧게 뻗고 삐치기만 하는 모발에는 지금도 불만이 많다. 그리고 30대에서 40대로 접어들면서 그렇게 많던 모발 수가 줄어들었다. 학생 때 이발소를 가면 이발사님의 물만이 모발이 너무 많아서 일하기 힘들다는 푸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숭숭 비어가는 두발 피부가 거울로 비춰진다. 여기에 또 하나 조부와 부친이 M자형 탈모와 함께 40대부터 이미 머리는 백발로 가득하셨다. 이 또한 닮아서 조금 느리기는 해도 이제는 세치가 아니라 뽑기도 아까운 백발이 점점 늘어간다.
그러고 보니 모발과 관련해서 불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당하게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나이가 들면서 모발이 변화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내 안에서 불만이 커져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은퇴를 준비하거나 은퇴하신 목사님과 장로님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더는 자신을 초청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한다. 전화도 없고 인사하러 오는 사람도 없고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잊어버린 것과 같다는 말한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중요한 말이 아직 많고, 특히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본질적인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자부하는데 아무도 자기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도 덧붙였다.
노년기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불만족스러웠던 것에 대해 하나님께 굳게 의지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기도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생각한다. 자신이 맺고 있던 적대 관계나 실패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그가 겪었던 상처에만 붙잡혀 있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된다. 검은 머리를 달라고 간청할 필요가 없다. 처음에 그렇게 시작되었는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가고 횟수가 더할수록 하나님께 감사할 일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찾기 원한다면 모든 것이 문제 덩어리다. “과거에 내가 그랬어야 했는데”하는 아쉬움에만 메어 있으면 거기서 통과하여 새로운 행복을 누릴 시간이 없다. 백발이 되어도, 탈모가 진행되어도, 심지어 머리가 너무 뻣뻣해서 스타일을 제대로 못 만든다 할지라도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수행해야 은빛 지혜자들은 앞날의 두려움 또한 견디고 이겨나갈 수 있다. 한 권사님이 신혼초부터 남편의 폭행을 당하면서 살았고, 바람을 피워서 40년 이상의 부부생활은 악몽 그 자체였다. 칠순이 넘어서도 서로에게 탓을 하면서 과거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칠순을 살아왔다면 적어도 앞으로 십년 이상은 남는 시간인데 계속되는 지옥의 삶을 살아야 할지 화해를 하고 과거를 받아들이고 남은 미래를 행복으로 채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백발이되면 백발의 아름다움을 소유하면 되고, 모발의 탈모는 모자를 사용하던지, 살이 찌고 불편해졌다면 계획적으로 타인과 함께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내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이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내가 나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물어보아라. 부족한 것을 바라보기 이전에 베풀어 주신 것을 찾아보면, 믿음이 더욱 깊어갈 것이다. 걱정한다고 백모가 흑모가 되는 것도 아니고, 빠진 머리카락이 솟아나지 않는다. “자신을 받아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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