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주기도문(4) 성취될 하나님의 뜻 (마 6:10하)
26. 주기도문(4) 성취될 하나님의 뜻 (마 6:10하)
  • 주성호
  • 승인 2018.06.2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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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문(전)과 인간을 위한 기도문으로(후) 구분되는데,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에 관한 기원문 중의 마지막이면서 한편 주기도문 전체의 결론도 된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 구원이다. 하늘과 땅은 단순히 장소적인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세계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있는 죄악 된 세상을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아름답게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인간들의 과욕으로 인하여 죄가 관영하게 되므로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심으로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을 이 땅에서도 이루고자 하시었다. 하나님의 이 같은 고귀한 뜻은 불가불 그리스도의 사역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첫째 :하나님의 뜻

1) 신실하심(사 25:1)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친히 창조하신 피조물과 언약을 맺으시며 그 언약에 신실하게 만물을 유지하고 계신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자신의 욕구대로 생활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불순종하여 범죄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그 후 노아 때는 홍수를 통해 심판도 하셨고 바벨탑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향한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신실하심으로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오늘도 섭리하고 계신다. 아담과의 언약, 노아와의 언약, 아브라함과의 언약, 모세와의 언약, 다윗과의 언약 등 그 후 많은 주의 종들과 언약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린다. 그리고 예레미야에게는 새 언약의 말씀을 주셨는데, 렘 31:31, 33을 보면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새 언약의 성취는 눅 22:20에서 찾을 수 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이 완성됨을 예수께서도 친히 말씀하여 주셨다.

2) 불변하심(히 1:12)
인간은 시작과 끝이 있으며 환경에 따라 그 성품이 변화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고방식조차도 순간적으로 돌변할 수가 있다. 조석으로도 변하고 연초에 마음먹은 것들이 연말까지 지켜지지 않는 것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자로서(출 3:14) 완전하시기 때문에 더 좋게 변화될 이유가 없으며 영존(永存)하시는 분이시므로 늙거나 쇠잔하는 일도 없는 분이시다. 사 41:4 "이 일은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令定)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 내가 곧 그니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 이 말은 곧 영원히 불변한다는 말도 된다. 약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 해도 하나님은 변함은 없고 끝내 반드시 그의 뜻을 이루고야 만다.

3) 영원하심(시 90:2: 요일 2:17)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 이미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은 이후에도 영원히 존재하실 분으로 그의 사랑도, 영광도 영원하신 분이시다. 욥은 육체적인 고통과 그의 친구들이 찾아와 조롱하면서 그를 괴롭힐 때,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연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욥 36:26). 하나님은 영원하신 존재임을 확신한 욥의 고백이었다. 시편은 특별히 무한한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을 하고 있다. 시 90: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 102:26~27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 즉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계와 피조물은 변해도 하나님을 영존하고 무궁 하시다는 말씀이다.

둘째: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성도의 자세

1)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롬 12:2)
예수께서 그 당시 사람들을 향해 탄식하며 안타까워하신 말씀들이 많은데, 특히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백성들을 향하여 탄식하셨다. 마 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겔 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이 세상은 악이 관영하기 때문에 분별력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면 적당히 살게 되어 있고 방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성도가 받는 축복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알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승리의 삶이 가능하며 복 받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살아야 함에 대한 권면은 바울이 롬 12:2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기본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된 상태가 되어야 가능하다. 영적 변화 없이 하나님의 뜻의 분별력은 불가능하다. 또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의 분별력이 없으면 매사에 자기 감정대로 행하므로 실패하게 된다(고전 2:14).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알면 곤고한 중에서도 인내하며 어떤 시험, 위기 속에서도 승리하게 된다.

2)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한다(롬 1:10)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완전하고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으므로 성도의 입장에서 이유 없이 믿음을 가지고 쫓아야 한다. 인간은 감정뿐 아니라 지식, 경험, 진리조차도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자기의 뜻에 따르다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의 생각은 달라도 순종하는 것이 신앙의 바른 태도이다. 삼상 16:10~35에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린 이유가 나온다. 특히 11절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일러주신 말씀인데,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라고 하여 그의 불순종을 지적하신다. 19절에도 사무엘이 사울 왕 책망하는 말이 나오는데,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라고 한다.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라는 사울의 변명에 대하여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책망한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피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22~23절)

마 7:21에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되어 있다. 제사 행위, 즉 오늘의 예배 행위가 아무리 거창하고 장황해도 순종을 앞서지 못한다. 그것은 예배가 순종을 나타내는 종교적 행위 자체이므로 순종이 전제되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한 주간 아무렇게나 살다가 주일날 예배만 드리는 식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평상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다가 주일이 되면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가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들어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는 기도까지 하면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를 밤새 기도하셨고, 끝내 십자가를 지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행한 산 표본이 되셨다. 오늘 우리 성도의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순종하는데 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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