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 속의 지우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 김재용
  • 승인 2018.04.2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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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모든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나이도, 이름도, 사랑했던 나조차도 ...”

2004년에 개봉해서 250만 명이나 동원하고 대종상까지 수상한 손예진, 정우성 주연의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사랑을 하고 아름다운 부부생활을 하던 중에 여 주인공인 수진에게 알츠하이머병이 찾아옵니다. 매일 가는 집도 못 찾아갑니다.

영화 속의 대사 이지만, “모든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나이도, 이름도, 사랑했던 나조차도 ..” 이 말이 입속에서 아니 귓속에서 계속 머물고 맴돕니다. 최근의 기억부터 잃어가기 시작해서 소위 치매라고 하는 증상이 점점 심화 되어 갈수록 환자들의 가족들은 괴로운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는 무척 기억력이 좋으신 70대 여 권사님이 계십니다. 나라와 수도 이름을 다 암기해서 말씀하시는가 하면, 구구단도 척척 말씀하시고, 예전에 있었던 자신의 기억을 언제나 말씀하시기 시작하면 빠짐없이 잘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분의 기억에서 머뭇거리는 타이밍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한 참 만에 기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까먹는다고 하는 표현과 같이 깜빡 깜빡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 권사님께서도 그러시는데 일반적인 분들은 더 빨리 기억이 희미해 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망각이라는 기능을 통해서 수많은 정보 속에서도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망각의 순기능을 넘어서 기억이 삭제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면 당사자도 힘든 일이지만 자신을 기억 못하는 어머니, 아버지를 돌보는 자녀의 심정은 무척이나 괴로울 것입니다. 우리 머리 안에 존재하는 뇌의 건강을 활력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현대 의학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아울러 다양한 저장 장치를 이용해서 저장 한다 해도 그 저장된 사진과 기록을 당사자가 몰라본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친분 있는 교역자들과 교회의 ‘은빛 지혜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기록을 남기고 또 자녀들에게 그 기록을 들려주는 자서전 쓰기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거창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출생하여 아름다운 노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온 날들을 감사하며, 모세와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마지막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듯이, 노년의 아버지 어머니가 자녀들 앞에서 자신을 정리할 수 있는 자서전 쓰기 운동입니다.

젊어서는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도 없이 엄격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자신의 첫 아들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렸다는 고백을 장성한 아들이 읽으면서 노년의 아비와 장년의 아들 그리고 손주 3대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토크 콘서트가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한 번 기억을 할 수 있을 때 기억을 정리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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