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
내 나이 마흔
  • 김재용
  • 승인 2018.04.0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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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목사의 노인목회 칼럼(1)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애굽기 3:4)

하나님께서는 불타는 떨기나무로 모세를 이끄시고,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셨다.(출3:2)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마다 감격스러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나의 팔십에 접어들어서 만나셨다는 것이다. 30대 목사로 설교를 할 때, 40년 40년 40년으로 구성된 모세의 삶을 조명하며 여선교회에 60대 이상의 성도님들께 “○○○ 집사님, ○○○ 권사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모세보다 젊으셨으니까 더 열심히 헌신하세요.”라고 웃어가면서 당부의 말씀을 드렸는데, 젊은 교역자가 그분들의 헌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쉽게 넘어간 듯한 후회감이 든다.

초고령 사회라고 부르는 대한민국에서 목회를 한다는 것은 노인에 대한 이해가 그 어느 때 보다 더 절실한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세도 60대의 집사님 권사님들도 대단한 헌신과 결단을 하셨다는 것을 이해하기 까지 마흔 중반이 넘어서야 깨닫게 되었으니 10년 전에 그런 말로 웃고 넘어간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뿐이다. 기도실에서 기도 방석에 앉지 못해서 힘들어 하시던 권사님, 조금 걸으면 숨이 차서 쉬어 가시던 집사님, 사실 그분들을 위해서 나는 천천히 걸었어야 했고, 방석을 치우고 의자를 여유 있게 구비했어야 했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성도님들이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또 주방 봉사와 기타 활동을 위해서 움직이시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다는 사실도 오십이 다 되어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노년기의 모세는 젊은 혈기가 다 빠지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40대의 중년의 위기(“내 나이 마흔” 안젤름 그륀, 이성우 역, 성서와 함께)를 지나고 중년기의 위기 속에서 어려움과 곤경을 겪은 이후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타울러는 이 과정을 하나님의 탄생이라고 불렀다. 노년기 성도들은 이런 과정을 통과 했기에 젊은 교역자들이 준비된 지식과 존경 없이 청소년부, 청년부를 대하듯이 영적 지도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젊은 교역자들은 은빛 지혜자의 삶을 경정하지 못하는 실수를 한다.

왜 하나님은 모세를 그 나이에 부르셨을까? 다시 생각해 보라. 40세까지 살다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개인화의 과정(융)을 통과한 자에게 하나님은 부르시면서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신을 설명할 때, 모세는 그 하나님을 발견하게 인격적으로 믿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노인을 대할 때, 지도 대상이 아닌 배움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은 열정의 크기이지 나이를 고려해서 배려하는 목회를 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 칼럼은 교회 내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과 심방을 통해 얻게 되는 은빛 지혜자들의 신앙 고백을 나누면서 젊은 교역자들과 교회 내에서 열심히 사역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좋은 씨앗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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