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너희는 세상의 소금 (마 5:13)
11. 너희는 세상의 소금 (마 5:13)
  • 주성호
  • 승인 2018.03.12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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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8복에 대한 말씀을 드렸다· 처음 네 복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말씀이었고, 뒤의 네 복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 가운데 있는 성도가 세상과 이웃을 위해 바로 살 때 복이 된다는 말씀으로서 객관적인 교훈이다. 그에 반하여 오늘부터 시작되는 소금과 빛에 대한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성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함을 가르쳐 줌으로 주관적 교훈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다시 말하면 8복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복의 내용들이다. 마음이 가난하면 천국을 소유하고,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고,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고,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배부르며,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고.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보고,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으며,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천국을 소유한다. 한마디로 나의 태도에 따라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의 내용들이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그 같은 복을 받는 성도는 실제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믿음을 가지고, 복을 받아 천국을 소유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소금처럼 살면 나를 통해서, 나에 의해서 세상에 복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한다.

첫째: 세상의 소금

1) 소금의 특징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에서 '너희'는 주어의 역할 뿐 아니라 강한 강조를 목적으로 앞에 두어 뜻을 부각시킨다. '소금이니'(to aga")는 서술어이지만 관사(to)를 붙임으로 주어와 서술어를 동일 선상에 두어, 서로 교체해도 문제가 전혀 없도록 되어 있다('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와 '세상의 소금은 너희이니').세상도 '게스'(gh")라는 단어를 씀으로 '코스모스'(kosmo"), 즉 죄악 세상이라는 한정된 부분이 아니라, 평범하고 포괄적인 전 세상을 의미하고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너희'는 당시로서는 물론 제자들을 주로 일컫는 말이지만,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8복을 소유한 성도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소금)이니 (you are)'는 권고에 쓰여지는 단어로서 '...이 되어야 한다'라는 뜻이다. 즉,너희는 반드시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로서 소금의 특징을 지니며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성도라고 부를 수 없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플리니(Pliny)는 소금이 없이는 인간의 생명이 지탱될 수 없다고 했다. 과연 소금이 없이는 인간의 건강이 지탱될 수 없으므로 소금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이다.

2) 소금의 역할
소금의 역할에 대해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다양하다. 보편적인 해석은 ① 맛을 내는 것과 ②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으로 해석하는 것이지만,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데도 사용되었다.
민 18:19의 "소금 언약"은 변하지 않는 약속을 의미한다. 왕하 2:21에서는 해독제로 사용되었다. 여리고의 샘물이 먹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소금을 뿌림으로 먹을 수 있는 물이 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엘리사의 샘'이라고 하는데, 여리고 사람들, 가축, 농토를 적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모습을 갖게 하였다. 레 2:13에서는 제물로 쓰여졌다(흰색, 순수성).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최근에 와서 소금이 만병통치약처럼 광고되고 있고 죽염, 할렐루야 소금, 생 소금 등 야단들이다. 그러나 소금은 약도 아니고 음식물도 아니다. 이상구 박사에 의하면 필요 이상으로 쓰면 세포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몸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필요한 양 이상으로 쓰면 오히려 우리 몸에 해를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소금을 말씀하심은 치료 효과나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시키지는 않았을 것이고 분명히 단일 개념으로 말씀하셨다고 볼 수 있다. 점점 맛을 잃어가고 있는 이 세상의 맛을 회복하기란 쉬운 일도 아니고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성도를 향하여 소금이라 하신 것은, 죄로 부패되어 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가 처한 곳에서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해야 하신 것이다.

둘째: 맛 잃은 소금

1) 맛을 잃어버리는 경우
막 9:50은 "너희 속에 소금을 두라"고 하였다. 소금의 역할도 해야 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소금의 맛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내 속에 소금의 맛이 없으면 소금의 역할도 하지 못하고 부패를 방지하는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본문은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이라고 가정법을 쓰지만, 팔레스틴에서는 실제로 소금의 수집 과정에서 흙이나 불순물이 섞이므로(천일염),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고, 또한 쓸 수 없는 소금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예수님의 많은 비유들은 실제로 있는 사실을 우리 생활과 연결시켜서 교훈해 주신 것들인데,소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는 말씀은 소금이 맛을 잃었을 때 다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확실한 사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비유는 성도가 그 실제 생활에서 맛을 잃는 경우 소금의 기능을 잃어버림으로 아무데나 쓸데 없게 되어 존재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자가 된다는 것을 교훈하는 것이다.

2) 사람에게 밟히는 소금
소금이 실제로 맛을 잃는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거듭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실제로 수집 과정에서 뿐 아니라 때로는 화학 반응을 일으켜 실제로 맛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맛을 잃은 소금은 어떻게 하는가? 농토에다 버리면 염분 때문에 농토를 못쓰게 하기 때문에 보통 길에다 버리게 된다고 한다. 결국 길에 버린 소금은 사람의 발에 밟히게 된다. 평범한 진리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겨 주는 진리다. '내어버려'나 '밟힌다'는 표현에는 종말론적인 의미도 포함 되어있다. 교회나 성도가 맛을 내는 일이나 부패를 방지해야 하는데도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결국은 사람들에게 멸시 당할 뿐 아니라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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