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하늘나라의 생일로 천국소망 가져야
죽음은 하늘나라의 생일로 천국소망 가져야
  • 정택은
  • 승인 2018.03.08 0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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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한 번 태어나고 언젠가는 죽게 된다. 죽음은 인간의 삶의 한 과정이지만 그러나 공포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죽음이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경험이지만 어느 누구도 직접적인 경험으로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은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모든 관계가 단절되는 사건이기에 어떤 종류의 죽음이건 모두에게 슬픈 것이요, 두려운 것일 수 있다.

성경은 죽음이 인간에게 본래적인 것이며 따라서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성경에는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죽음이후 문제에 대해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만 가르쳤을 뿐, 죽은 자의 가족들이 죽음에 대해 확고한 신앙적 가치를 정립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다.

교회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성도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갖지 않고, 죽음은 하늘나라의 생일로 여기며 슬픔을 넘어 천국소망을 갖도록 지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평상시에 사후 세계에 대한 신앙적 이해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훈련된 성도들은 죽음을 긍정적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교육을 위한 실천의 장이 바로 장례예식이라고 할 수 있다.

James F. White는 “교회공동체는 장례예식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공동체의 지지를 보여주며, 교회는 이들을 위로할 때 솔직하게 함으로써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장례예식은 죽은 사람에 대한 보살핌, 부활에 대한 신앙, 그리고 구원에 참여할 육체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었다. 따라서 기독교의 장례예식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교리를 증언하는 것, 둘째, 고인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 셋째, 유족을 위로하고 공동체의 지지를 보여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장례예식은 예배의 범주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기독교 예배는 그리스도 사건, 즉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사건의 고백과 선포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장례예식도 그리스도 사건의 의미가 전달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었으며 영생의 복을 누리고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의 죽음을 목도하는 기독교 공동체에게 부활의 메시지를 증언하는 것은 초대교회부터 장례예식의 중요한 기능이었다.

초대교회에서는 시신을 옮길 때 낮에 흰 옷을 입고 개선의 노래를 부르며 운구하였다. 죽음을 이긴 승리를 표현하기 위하여 촛불과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시신에 둘러 찬송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는데, 이것은 당시 로마인들이 죽음을 악한 징조라고 믿어 검은 옷을 입고 밤에 장례를 치르는 것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일종의 하늘나라의 생일이었다. 2세기 ‘폴리캅의 순교’에서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함께 모여 마치 생일처럼 그의 순교일을 축하하고, 이전에 이미 떠난 그들의 영웅을 추모하며, 이후에 가게 될 자신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해서”라고 언급하며 연례적인 추모행사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이는 초대교회부터 장례예식에서 부활의 메시지를 증언하는 일이 어떻게 강조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지금도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를 증언하는 일은 기독교 장례예식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전통적으로 기독교 장례예식에서는 유가족들을 배려하고, 그들을 돌보는 의식들이 나타나고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장례를 치른 후 제3일, 제9일 그리고 40일째 되는 날에 가족들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 시편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기도했던 ‘아가페’라는 의식이 뒤따르기도 했다. 이것은 슬픔을 당한 유가족들을 돌보기 위한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 장례예식의 기능은 산 자를 위한 사역과 죽은 자를 위한 사역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장례예식은 고인보다 유가족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해 유가족이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과 상태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우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유가족들에게 정체성 위기를 일으킨다. 또한 죄책, 체념, 적대감, 분노, 평화, 의존, 부당한 느낌 등 다양한 감정들을 나타낸다. 이러한 다양한 감정들은 정상적인 것으로써 이러한 태도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비탄에 빠진 유가족들을 돌보기 위하여 이들이 경험하는 슬픔과 과정을 잘 인식하고 돌볼 필요가 있다.

생명의 존귀함과 명확한 내세관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는 장례예식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예식을 정립하는 일이 필요하다. 장례예식은 더 이상 슬픔의 상징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진 자라면 이를 슬픔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생의 마지막을 가장 아름답고 경건하게, 그리고 유가족을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장례예식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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