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의 복 (마 5:10~12)
10.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의 복 (마 5:10~12)
  • 주성호
  • 승인 2018.03.0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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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복에 대한 많은 말씀이 있는데, 구약의 경우와 신약의 경우는 복의 성격이나 내용면에서 구분됨을 쉽게 알 수 있다. 구약의 복은 아브라함을 위시로 하여 신명기. 시편에 반복되고 있는데 어디까지나 육 적이요 물질적이며 현세적인 복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생활 면에서 풍족한 축복은 물론 자식들에게도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나 신약의 복은 분명히 구약의 경우와는 성격이나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 현세도 물론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내세에 초점을 두고 있으므로, 현세에서는 오히려 고난이 불가피하고 뿐만 아니라 현세에서 당하는 고난도 복이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기독교의 상징적인 정신을 부여하는 기독교는 한마디로 수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오늘의 본문은 8복의 마지막 복으로 성도들이 고난을 허용하고 견딤으로 받는 복의 내용이다. 물론 무조건 받는 고난이 아니고 반드시 의를 위한(의를 근거로 한) 핍박일 때 복을 받게 된다.

첫째: 의를 위한 핍박(10절)

1) 성도는 핍박을 받는다.
왜 믿음으로 살려고 하고 선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핍박을 받아야 하는가? 회의가 생길 때도 종종 있지만.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빛보다는 어두움이 더 만연하고 진리보다는 비진리가 성행하는 곳이므로, 진리가 빛을 발휘하려면 고난을 감수해야 하고 희생이 불가피하다.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세상 끝의 징조 가운데 자연을 통한 재난이 나오고, 9절에는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되어 있으며, 13절에 의하면 구원을 얻으려면 끝까지 견디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요셉의 경우를 살펴보아도, 어려서는 10명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의 종으로 팔리어 갔고, 애굽의 시위대장 집에서나 보디발의 아내로 인하여 억울하게 옥살이하면서도 잘 견뎌냈다. 자기에게 부딪힌 상황과 현실로 인해 형제를 원망하거나 다른 사람을 원망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고 감수하며 극복하며 승리한다. 그는 신앙인의 본보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욥의 경우를 살펴보자. 욥 1:1은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했다. 그에게는 고난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극한의 고난을 경험하게 되었고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할 정도로 극도에 다다랐지만,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인내의 본을 보였고, 그래서 인내의 표본이 되었다.
예수님의 경우에도 고난의 극치를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보여 주셨다. 극도의 고난 가운데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육신을 가진 자로서의 절망적인 부르짖음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 같이 부르짖으셨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난은 의를 위한 것이어야 하고, 성도는 어떤 고난 가운데도 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 주어지는 보상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에서 핍박은 불가피하며, 어느 시대나 있는 것이다. 다윗의 시인 시 22:20~21에는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낙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 하셨나이다"라고 되어 있다. 마 27:43에는 십자가에 달린 한 편 강도의 조롱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고후 4:11은 바울의 말인데,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본문의 '핍박을 받는 자'(diwvxwsin)는 들짐승이 사냥꾼에게 쫓기거나 군인이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쫓기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말이다. 이런 자들은 마치 이리에게 쫓기는 양 같이, 또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도가 이 세상에서 고난과 핍박만 받느냐? 아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다"라고 하셨다. 보상의 내용은 3절과 같으나. 3절의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는 복인 천국이 심령에 소유되는 천국. 마음의 천국이라면, 본문의 천국은 믿는 자가 악한 세상에서 갖가지 고난을 당하나 인내로 승리할 때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소망을 주는 복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8복의 시작과 끝에 있고 가운데 여섯 가지 복은 천국을 설명해 주는 내용들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복은(8복) 믿음을 통해서 천국을 소유하는 것으로 복의 내용을 설명했다.

둘째: 핍박을 받는 자의 자세(11~12절)

1)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11~12절을 9번째 복(9복)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으나 10절의 확대 설명을 하는 부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 당한 환난은 두 말 할 것 없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도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고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받는 일은 기독교 역사에 계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고 그의 가르침을 지키려는 성도들은 결코 악에게 굴복하지 않았으며, 그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면서 의를 고수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역사를 수난의 역사. 순교의 역사라고도 한다.
핍박을 받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12절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역설적인 원리를 제시하였다. '기뻐하고'(caivrw)는 기쁨을 표시하는 일반적인 낱말로서 마음에 넘치는 기쁨을 의미한다. '즐거워하라'는 '크게'(ajgan)와 '뛴다'(allomaiv)가 합해진 낱말로, 기쁨을 참지 못해 동작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고후 12:10에서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라고 하였다. 또한 고후 4:9에서는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말한다. 이 같은 믿음을 가질 때 옥에 갇혔어도 찬양하며 감사하므로 기적도 일어나고 자유의 몸이 되는 역사가 나타난 것 이다 (행 16:16~34)

2) 하늘로부터의 큰 상
주님을 위하여 어떠한 핍박을 당하면서도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유는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기 때문이다.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자의 상급은 분명히 큰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고 "하늘에서", 즉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여기서 주어지는 상은 단순히 고난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행위로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상(상급)은 이 땅에서 성도들이 행한 것에 대한 보상임에도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핍박은 성경역사에서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시대의 주님을 위시로 하여 제자들과 사도들, 그리고 기독교 역사 과정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들도 하나님을 바로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핍박이 계속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내하고 끝내 승리하는 자는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급도 큼을 알아, 천국을 소유한 자로서의 복을 누리는 삶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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