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받은 사람
땅을 받은 사람
  • 이구영
  • 승인 2018.03.0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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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5장에서부터 시작된 야곱의 이야기는 창세기 37장 1절에서 끝나게 되는데 그 결론이 창세기 37장 1절입니다. 성경은 야곱의 삶을 한 구절로 결론을 내립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이 살던 땅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 야곱 일생의 결론입니다.
왜 이런 결론을 창세기 기자는 내려야 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고, 그 흙의 근원이 땅입니다.
사람은 땅에서 태어났고, 땅을 딛고 땅과 함께 살다가 땅으로 돌아갑니다.
땅은 곧 사람의 모든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땅이라는 단어가 13번이나 나옵니다.
아담이 또 가인이 죄를 짓고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땅을 통하여 가인을 저주하셨습니다.
아담에게는 땅이 풀과 채소와 나물이 아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하셨고
가인에게는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성경에 땅이라는 단어는 무려 2415번이 나옵니다. 그만큼 강조되고 중요하게 다루어 지는 것이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처음하시는 축복의 말씀이 창세기 12장 1절에 나옵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땅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가나안을 향했던 아브라함이 차지한 것도 땅입니다.
[창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따르던 아브라함이 삶에 지치고 사업에 망해서 실망하여 낙망중에 있을 대 그에게 용기를 주시면서 격려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도 땅과 관계가 있습니다.
[창 13:15-17]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 땅의 신학은 창세기 전체에 성경 전체게 흐르는 아주 중요한 사상중에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을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세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사라요 둘째는 하갈이요, 셋째는 그두라입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고,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고, 그두라는 여섯명의 자녀를 낳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총 8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차지합니까?
이삭입니다.
배다른 형 이스마엘은 그 어머니 하갈과 일찍 정리가 되어 경쟁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던 아브라함은 이삭의 장성함을 보면서 나중에 문제가 될 것 같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멀리 떠나보냅니다.
정말 중요했던 경쟁자는 아브라함의 세 번째 부인 그두라와 그가 나은 여섯명의 배다른 동생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40이 넘은 나이에 젊은 부인을 얻어서 6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제 어느덧 150살은 넘었고, 젊은 아내와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 어느 날 문득 아브라함이 다시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됩니다.
이스마엘을 내 보내라 하신 하나님은 그두라의 자녀들이 아니라 이삭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실 것 같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드디어 큰 용기를 냅니다.
사랑하는 그두라와 여섯 아들을 떠나보냅니다.
당시 아브라함에 사랑했던 아내이고, 자녀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고 큰 도움과 위로와 힘이 되는 식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면 큰 결단을 합니다.
그렇다고 빈 손을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재산을 정리해갑니다. 170이 넘은 나이에 평생 모든 모든 재산을 정리합니다.
땅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현금으로 바꿉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내 그두라와 여섯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그들을 동방으로 멀리 떠나보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보낼 때 아파했던 것 보다 더 아픈 마음으로 그들을 떠나보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땅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가 되었습니다.
평생 모은 모든 재물을 포기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창 25:5-6]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여기서 이삭에게 준 소유는 땅을 말하고, 서자들에게 준 재산은 요즘으로 하면 화폐입니다.

그렇게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땅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런 후에 이삭은 아버지의 믿음대로 결혼한지 20년이 지난 후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에서와 야곱입니다.
이삭은 생각했습니다. 장자 에서가 이 땅의 임자가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을 것이고, 이 땅을 다스리는 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범죄한 야곱을 떠나보내는 일에 그리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 1:2-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그 땅을 주시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철 없는 야곱은 그 땅에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형 에서의 미움을 피해 땅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망하여 살면서는 그 땅 보다는 여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무려 4명의 부인을 얻었습니다. 자녀에게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들만 12명을 낳았고 딸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살았지 하나님의 말씀이나 약속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아주 많은 방법으로 다양하게 길들여 가셨습니다.
가난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도망자의 삶도 살게 하셨습니다.
저주의 대상이 되게도 하셨습니다.
열심히는 살았지만 허망하게도 하셨습니다.
많이 노력했는데 고민도 많았습니다.
정정당당하기 보다는 온갖 치사한 방법을 다 사용해서라도 이기며 살려고 했는데 결국 그는 절망과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야곱은 자신의 한계를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게 됩니다.
벧엘과 얍복강에서 자신을 두 번이나 찾아와 만나주셨던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런 야곱에게, 벧엘이 아니라 세겜에서 편하고 누리며 즐기며 살고 싶었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창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드디어 야곱은 큰 결심을 합니다.
바로 그 땅으로 돌아가서 그 땅의 주인이 되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세상 문화에 푹 빠져사는 부인들과 자녀들,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져 살고 있는 모든 가족을 소집해서 큰 선언을 합니다. 나 이제 정신차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이라고, 양다리 걸치며 살던 생활 정리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그러니 너희들도 그리 살고 함께 약속의 땅에 돌아가자고 합니다. 비록 그곳에 에서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죽더라도 그곳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창 35:2-3]
“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가족들의 동의를 얻고, 그들의 협조로 야곱은 출발합니다.
[창 35: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정리할 것 정리하고 이렇게 야곱이 약속의 땅에 돌아가자 그곳에 있던 에서가 심난해 집니다.
분명 아버지 이삭의 모든 것이 내 소유이었는데 경쟁도 되지 않을 것 같던 야곱이 돌아와 버렸습니다.
또 야곱을 경쟁자로 알고 있던 모든 부족들에게도 야곱이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땅을 이어받고 그 땅에서 살며 그 땅을 다스리기 원하는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지켜주셨습니다. 그의 경쟁자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창 35: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이 뿐이 아닙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자, 그 세상에서 돌아오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창 35:9-12]
“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여러 가지 복 중에 하나가 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땅의 주인은 여전히 에서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 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이삭에게 갔고, 그 땅은 지금 에서의 손에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 이삭이 죽자 에서와 야곱은 함께 장례를 치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참 묘한 구절 하나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창세기 35장의 마지막 부분은 이삭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36장 전반부는 에서의 이야기를 실어 나름니다.
그 에서의 이야기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창 35:6-8]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

하나님의 복 주심 속에 부유함의 은사가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함의 복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척박했던 곳이 황량했던 곳이 옥토가 되고 넉넉해졌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함께 살 수 없을 만큼 양과 소와 낙타와 가축들이 떼를 이루었습니다.
과거,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거주할 수 없이 풍성해 졌을 때 롯이 먼저 선택하고 떠났던 것처럼 이번에는 에서가 떠나갑니다. 롯이 소돔을 선택하고 먼저 갔듯이 에서는 세일 산쪽을 선택하고 떠났습니다.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에서는 그곳에서 부족을 이루었고, 그 자녀들도 부족을 이루어 각자가 부족장이 되는 큰 명예를 얻었습니다.
덕분에 야곱도 수지 맞았습니다.
아브라함 – 이삭 – 에서가 아니라
아브라함 – 이삭 – 야곱으로 바뀌었습니다.
창세기 37장 1절은 그래서 야곱의 일생을 이렇게 마무리 짓습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야곱의 일생을 떠남과 돌아옴으로 요약합니다.
그 땅을 떠났던 야곱이 그 땅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긴 아픔의 과정도 겪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험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과정에 그는 길들여져 갔습니다. 야생마와 같아서 아무도 길들일 것 같지 않았던 야곱을 하나님께서 길들이셨습니다. 말씀으로 길들여졌습니다. 그렇게 길들여져서 이제 힘이 빠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간하고 순종할 때 즈음에 그는 가나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임이요!

하나님께서 주시고 싶은 약속들은 아무에게나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믿고 용기를 내어 그 말씀에 나를 길들여갈 때, 말씀으로 나를 다스려 유업을 받을 만한 자격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오늘도 스스로 질문합니다. 난 온유한 사람입니까? 땅을 기업으로 받을 만한 사람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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