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위대함은 소유 아닌 ‘생명’
사람의 위대함은 소유 아닌 ‘생명’
  • 정택은
  • 승인 2018.01.11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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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높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 1, 2위를 다투는 낙태율, 자살률, 이혼율, 성폭행을 비롯한 각종 인권 및 생명침해 사범들이 늘어가고 있다. 갈수록 상품화되어 가는 인간, 경제논리로 생명에 값을 매기는 현실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고 기독교적 가치에 근거한 생명이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늘날 먹고 마시고 즐기고 노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돈으로 거래 되고 있다. 심지어 인간 자체도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성욕을 채울 목적으로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고, 인간의 외모가 상품이 되고, 신장 등 장기가 상품으로 거래되고, 인간의 유전자도 상품이 된다. 상품가치가 높은 사람이 환영받고, 상품가치에 따라 능력이 측정되고 평가된다. 생활 곳곳에서 사람이 경제논리에 따라 상품가치로 값이 매겨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세상의 거래 행위가 통하지 않는 진정한 삶의 맛을 내고,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는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비록 상품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귀한 존재라는 것이 교회에서 선포되어야 할 메시지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교회에 경영과 관리가 들어가게 되면서 교회가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건물과 조직이 있으면 생존해야 하고, 생존의 문제가 걸리면 관리와 경영이 부각되게 된다. 곧 교회의 수입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교회가 커지면 목회자는 성공하게 되고, 거기서 여러 가지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그 이익은 영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이요 육적인 것이다.

비록 세상 모든 것들이 상품화되어도 종교만은 거래 질서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종교만은 사고파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시장질서가 들어오지 못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너무 많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교회는 좋은 사업을 위해 세를 불리기보다 인간 영혼의 안식을 위해 빈 공간을 마련해 가야 할 것이다. 인간이 경제 성장의 도구가 되는 것 보다 더 나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사람을 교회성장의 도구로 삼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이용당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목적임을 깨닫고 존엄성을 얻는 곳이 돼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모든 인간들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창1:27). 그래서 인간들은 일반 피조물들과 다른 것이다. 어떤 인간이 모욕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데 이는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들이 아무리 잘나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도 피조물이라는 한계 속에 있는 사람이며, 또 아무리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창조 질서의 회복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구원일 것이다. 그 다음은 인권회복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인권을 존중한다고 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지켜야 할 인권은 남의 인권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권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용적이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자기 인권의 근거가 자신에게 있다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소중한 존재인 이유는 내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로 내게 주신 선물이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내게 준 것도 아니고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생득적 권리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지키기가 힘들다고 마음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보물을 평생 지키며 살아야 한다. 인권을 침해하려는 자가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인권을 침해당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도록 방치하는 것과 같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기 생명의 근본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때 비로소 생명의 위대함과 존귀함을 깨달을 수 있다. 서로 인정하고 품어주며 다른 사람의 가치를 알아주는 데서 생명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우리 각자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가족과 이웃과 함께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바른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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