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에 대한 심각한 고민 세 가지
성도들에 대한 심각한 고민 세 가지
  • 민돈원
  • 승인 2018.01.0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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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들어 지금까지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매우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대상은 교회 다니고 있는 성도들에 대한 고민이고 그것들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예수님이 좋으신 분임이 분명한데 성도들 특히 수 십 년 교회 다니고 있는 성도들인데도 함께 사는 자기가족에게, 예수님이 좋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왜 자랑하지 못하는 걸까? 그 좋은 예수님이라면 자녀이든 부모님이든 남편이든 아내이든 상관없이 내게만 좋은 분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좋으신 분으로 믿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안 믿는 그들의 문제라고 떠넘기기에 앞서 함께 살면서 지켜 보고 있는 교회 다니는 누군가의 그 가족이 얼마나 예수님이 좋은 분으로 안 여겨졌기에 그렇게도 좋으신 예수님을 가족들이 안 믿겠는가? 에 대한 의문이다.

둘째,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기도하는 집이요, 하나님의 집인데 왜 성도들이 내 사는 집 정도만큼도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을까? 이다. 주님이 계신 집이라면 교회 가는 시간이 설레고 기다려지고 나아가 신나야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교회 나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같이 안 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들 가운데는 교회에 너무 시간 빼앗긴다느니 교회에서 산다느니 하는 말로써 손해와 수치가 되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물론 교회 일 때문에 마치 집안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원성과 자조감은 언제부터 어디서 나온 발상일까?

성경 어디에 성일(주일)이 내(소유의) 날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누가 시간을 빼앗았다는 말인가? 주의 날이 주님의 것으로써 우리에게 복 주시려고 성일을 주셨는데 어떻게 감히 빼앗겼다는 말을 쓸 수 있겠는가? 도리어 내 날도 아닌 주님의 날을 훔쳐서 다른 곳에 악용해오고 있음을 왜 모르는 것일까? 이는 마치 죽게 된 사람 살려주니까 왜 나를 내버려두지 살게 해서 고생하게 하느냐? 라고 역정(逆情)을 내는 것이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과 다를 바가 무언가?

따라서 믿는 내가 교회 가는 게 즐겁고 좋아야 안 믿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뭔가 호기심도 생기고 따라가고 싶은 감동도 오지 않겠는가? 내 집이 싫어 밖으로 맴돌고 외박을 일삼으면서 집을 멀리 하는 사람이라면 그 원인은 가족과 불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 가는 것이 기쁘지 않고 멀리하고 있다면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다는 뜻이요 나아가 단절되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멘탈리티의 문제요, 교회 공동체 누군가와 역시 불화하고 있다는 영적 진단이 가늠이 된다.

셋째,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주님이 하신 말씀 또한 너무너무 좋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솔직히 어디 그런가? 이 또한 의문이다. 성도들이 말씀 배우고 듣는 것을 맛 집에 가느라 거리에 상관없이 찾아 가는 것처럼 좋아하던가? 최근 들어 갈수록 말씀 듣는 시간을 마치 물건 값 디스카운트하는 것처럼 줄이고 줄이려 한다. 하나님 말씀이 살았다 해도, 내 영과 혼과 육을 치료한다 해도 그런 초자연적인 계시 속에 들어가 맛보려 하지 않는다. 아니 세상 물정에는 빠르고 눈이 밝지만 이런 영적 양식에는 문외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으로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벧전2:2) 다시 말하면 말씀의 양식은 영적 성장을 위해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할 생명의 양식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살은 양식이다.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6:55)라고 하셨다. 즉 예수님이 생명이시고 생명을 주는 신비한 양식이시다. 그러기에 수가성 우물가 여인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양식을 받아먹고 마신 그가 만난 좋으신 주님을 가서 와보라고 증거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4:32) 하신 다음 그 “양식이란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34절)라고 하신 것을 통해 잘 살펴보면 양식이 다름 아닌 잃어버린 자를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해주는 그 일이었음을 본다.

이처럼 성도는 매순간 말씀을 갈급해 하고 말씀이 좋아함이 지극히 당연하다. 그래서 그 좋은 말씀이 전해져서 너무 세상 것으로 찌들어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영적 입맛을 돋우게 해 줌으로써 내세의 능력을 맛보게 해주는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예수님이 좋고 교회가 좋고 말씀이 좋다라는 이 분명한 고백부터 다른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새해에는 우선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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