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개신교·천주교 종교 개혁 선언문
불교· 개신교·천주교 종교 개혁 선언문
  • KMC뉴스
  • 승인 2017.12.3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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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개신교·천주교 종교 개혁 선언문
- 원효 탄신 1400주년, 루터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아

“이게 종교냐?” 지금 대중들이 “이게 나라냐?”에 이어서 외치고 있는 소리다. 대다수 대중들이 고통 속에 있음에도 종교는 따뜻이 안아주지도, 길을 밝히지도 못하고 있다. 성직자와 수행자들의 타락은 이미 종교를 유지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었다. 대다수 절과 예배당은 성스러움과 무한, 빛과 소금을 상실한 채 영화 한 편보다 더 가르침을 주지 못하고, 일개 상담소보다 더 마음을 치유하지 못하는 곳으로 전락하였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탐욕과 시장질서가 점점 내면화하더니 이제 구조화하고 있다. 신자들은 예수님과 부처님보다 돈을 더 섬기면서 화폐증식의 욕망에 휘둘리고 소비와 향락을 무한정 추구하고 있다. 예배당과 절은 기업화하고 경영과 이윤의 논리가 의례와 신행을 지배하고 있다. 자신과 가족의 부를 늘리고 이기적 소망을 실현하는 데만 급급한 채 약자들의 신음과 절규를 외면하고 있으며, 다른 믿음을 가진 자들을 배제하고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 예수님과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로 남녀와 신분, 직분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존엄하거늘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 폭력이 당연한 듯이 행해지고 있다. 진리와 의미는 사라지고 종교 공동체마저 해체되어 각자 제 살 궁리만 도모하면서 모두가 외로움과 소외에 몸부림치면서도 서로 이를 심화하는데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극한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조차 없다. 우리 모두 공범자다. 우리 또한 탐욕과 이기심을 일소하지 못한 채 남의 탓만 하였다. 성직자와 수행자들이 교리에 부합하지 않거나 반민주적인 언행을 하여도 방관하거나 침묵하였다. 머리나 가슴, 배꼽이 아니라 아픈 곳이 우리 몸의 중심이고 그곳에 부처님과 예수님이 계신데도 고통 속에 있는 약자들의 신음소리를 외면하였다. 설혹 불의에 맞섰다 하더라도 두 걸음을 나아갈 수 있었는데 한 걸음만 내딛는 비겁함도 범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대중들은 더욱 고통에 빠지고 길을 제시할 종교가 스스로 길을 잃고 말았다.
종교와 사회는 깊은 연관관계를 맺고 있으며, 종교 개혁 없이 사회개혁은 불가능하다. 주권자로서 각성한 우리 국민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밝혀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성찰하지 못한 과거는 우리의 미래가 된다.” 라는 마음으로 적폐를 청산하고, “현재는 미래를 앞당긴 실천이다.” 라는 의지로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신자들도 이에 발맞추어 촛불기도회와 촛불법회를 열었다. 이제라도 예수님과 부처님의 진리를 올곧게 세워 공동체를 복원하고 맑고 향기로운 교단을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처음을 기억하여 오늘을 성찰하며 이후(以後)를 새롭게 모색한다. 우리는 부처님과 예수님의 본래 가르침을 직시하고 따르며 예수처럼, 붓다처럼 살아갈 것을 선언한다. 우리는 돈의 힘에 굴복한 물신 종교, 권력과 유착관계를 맺은 정치 종교, 성직자와 수행자, 남성이 모든 것을 독점한 권위 종교,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자폐 종교, 주술의 정원에 머물고 있는 퇴행 종교, 이웃종교의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독단 종교, 노동과 구체적 사회현실을 외면한 관념 종교를 성찰하고 거부한다. 대신, 우리는 자비와 사랑이 모든 사고와 신행, 사회적 실천의 동력이 되는 자비와 사랑의 종교, 자본이나 권력에 결탁하지 않고 늘 창조적 비판자로 남는 자율 종교, 가르침과 깨달음을 앞세우는 깨달음의 종교, 시민사회 및 공론장과 결합한 합리성의 종교, 구성원 모두가 남녀, 신분과 직분, 인종, 이데올로기, 성정체성에 관계없이 평등하고 친밀하게 연대하는 공동체의 종교, 이웃 종교의 진리를 인정하고 새로운 해석을 허용하는 열린 종교, 노동을 중시하고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자비로운 분노’를 하며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 발전’에 ‘느리고 불편한 삶’으로 동행하는 참여 종교를 추구하며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길에 나선다.

이에 우리는 원효가 탄신한 지 1400주년,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이루어진 지 500주년이 되는 2017년 오늘, 개혁과 화쟁의 마음을 모아 성찰하고 다짐한다. 많은 종교인이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시기에 민족을 배반하며 친일과 친미로 일관했고, 군부독재정권 시기에는 독재자와 야합하여 민주화 주체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선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 종교사에는 주어사(走魚寺) 천진암(天眞菴)에서 미래를 탐색하던 몇몇 유학자들이 천주교를 공부하여 자발적으로 그리스도교를 수용하고, 어두운 일제 강점기에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비롯한 뜻있는 종교인들이 함께 나서서 ‘3.1 독립선언’을 하고 죽음에 이르는 고문과 투옥의 고초를 함께 감내한 소금과 목탁의 역사 또한 포함되어 있다. 세월호와 촛불항쟁에서도 많은 종교인들이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어깨를 맞대고 함께 행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계승하여, 각기 믿음은 다르지만 한 목소리로 한국 종교의 개혁을 천명한다. 이 선언이 교단의 온갖 구조적 병폐, 제도적 모순과 적폐를 청산하고 이 땅을 예수님과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의 빛으로 충만하고 이타행의 향기로 가득한 나라와 정토로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을 확신한다.

<불교>

지금 한국 불교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정법 수행이 사라지고 범계일탈이 만연하면서 승가 공동체는 붕괴하고 300만에 이르는 불자들이 이탈하였다. 권승과 주지들이 권력과 자본을 독점한 채 범계와 불법행위를 다반사로 행하면서 외려 청정한 스님들을 배척하고 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적 탐욕까지 절에 스며들고 사방승가 정신을 상실하면서 승가 공동체는 붕괴되어 스님들은 무소유, 평등, 자비의 정신을 상실한 채 각자도생(各自圖生)하고 있다. 노승들은 노후를 보장받지 못한 채 거리를 떠돌고, 젊은 승려들은 불안한 미래에 절을 떠나고 있다. 불자들은 깨달음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중생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침묵은 또 다른 적폐다. 이제 안으로는 모든 탐욕을 일소하고 깨달음에 이르러 열반을 성취해야 하고, 밖으로는 승가 본연의 청정한 가풍을 일으켜 교단의 온갖 적폐를 청산하여 맑고 향기로운 승가를 구현하여야 한다. 재가불자 또한 일상 속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실현하고자 하는 재가보살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1. 계율을 범하고도 참회하지 않는 스님들은 섬기지도 공양을 올리지도 않겠다.

2. 수행과 재정을 분리하여 출가에서 다비에 이르기까지 스님들이 수행과 포교,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동참하겠다.

3. 사찰 안팎의 모든 조직과 단체에서 비구와 비구니, 남성불자와 여성불자 등이 평등한 자격으로 참여함으로써, 교단 구성원들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수렴되는 사부대중공동체로 나아가는 데 앞장서겠다.

4. 나만의 깨달음에서 벗어나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내 몸처럼 아파하며, 비정규직과 해고 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와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의 아픔을 더는 자비행(慈悲行)에 적극 동참하겠다.

5. 나와 모든 중생과 자연이 연기로 얽혀있음을 통찰하여, 비움과 나눔에서 비롯된 평안함과 환희심이 채움과 소유의 욕망을 극복하도록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살겠다.

<개신교>

루터 종교개혁 500년의 해를 대형교회 세습논쟁으로 마감하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한국 개신교의 추락상(像)이 분노를 넘어 안쓰러울 정도다. 세상은 이를 두고 한국교회에 하나님이 없는 증거라고 조롱하고, 개신교 신앙인들이 예수를 가롯 유다처럼 ‘은전 30냥’에 판 일이라고 비유한다. 이렇듯 보편화한 세습은 영적으로 파산한 교회의 실상이다. 온갖 교파로 나뉘어 분열되고, 자신들의 교리에 안주하여 스스로의 근원인 예수를 잊고, 세상과 소통치 않고 담장을 쌓으니 세상이 교회를 등진다. 거룩함의 이름을 내걸고 권력과 부를 탐하며,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애써야 할 교회가 남과 북, 남과 남을 편가르는 이념을 재생산하며 분열을 부추기니 더 이상 복된 소식이기를 그친다. 하지만, 이를 고칠 의지도, 힘도, 용기도 없는 현실이 더욱 뼈아프다. 개혁할 수 없는 교회는 개혁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프로테스탄트의 역사이건만 아직도 대형교회 되기를 절대화하며 자본에 예속된 성장신화에 빠져있다. 교회의 수장이 되기 위한 돈 싸움이 세상을 빼닮았다. 불법선거와 교단 재산 문제로 교회 내 송사가 끊이지 않는다. 수많은 신앙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위로를 얻기보다 위협을 당한다. 작은 교회 목사들이 생존을 위해 이, 삼중의 직에 내몰려도 정작 그것을 염려하고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 이 모두는 자신들만의 특권적 오늘을 위해 개신교의 미래를 빼앗는 일이다. 신학대학들 역시 권력 욕심으로 분규 없는 곳이 없어 그 위상이 한없이 초라해졌다. 그래도 탈(脫)성장, 탈(脫)성직, 탈(脫)성별을 외치며 개신교의 새로운 앞날을 달리 개척하는 이들이 있어 희망을 갖는다.

1. 종교개혁 500년 역사의 이름으로, 세습하는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당함을 밝히고 교회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신앙적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2. ‘모든 신앙인이 사제’라는 개신교 종교개혁의 정신에 따라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하는 민주적 교회 공동체를 실천한다.

3. 배금주의로 획일화된 자본주의적 교회 대신 다양한 선교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소명을 자각하고 감당하는 성숙한 ‘작은 교회들을 형성하고 연대한다.

4.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며, 교회와 사회의 성평등을 위해 일한다. 자폐적, 배타적 교회를 넘어 이웃종교들과 더불어 세상의 고통에 응답하고 참여하는 열린 사회적 교회를 지향한다.

5. 교회 안에서  주일에만 교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모든 날을 예수의 제자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천주교>

프란치스코 교종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자비를 실천하는 교회는 스스로 가난한 교회가 됨으로써 세상의 모든 재화와 인간을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대안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 천주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맘몬을 섬기는 자본주의에 맞서지 못하고, 자본주의에 포섭되어 부유함을 선택하는 일을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대구시립 희망원 사태로 불거진 교회의 대형사회복지 시설 운영과 인천국제성모병원에서 드러난 허위 환자유치를 비롯한 의료급여 부당청구 사건과 부당 내부거래 의혹 사건이 상징적이다. 나아가 교회 사업장 안에서도 비정규직이 많아지고 노동조합이 존립하기 어려운 현실은 세상에 대하여 정의를 말하는 교회 스스로의 모습을 더욱 옹색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신자의 60 퍼센트에 이르는 여성신도가 교회 안에서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고 있으며 본당 사목회의 같은 주요 기구의 참여에서 소외되는 등,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름하에 성직주의와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여전히 강고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현재화하고 복음 정신을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드러내는 신앙의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1. 교회는 대형의료 시설과 사회복지 시설을 통한 자본증식 활동에 사목적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이윤 추구 사업에서 물러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가난한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2. 평신도 희년을 계기로 한국교회는 성직자 중심의 교회 운영을 멈추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 형제자매로 교회 운영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여성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성직자 및 남성 평신도와 더불어 동등한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진정한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3. 인간의 노동이 자본보다 우위에 있다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연대해 온 만큼, 같은 기준으로 교회도 돌아보아야 한다.

4. 한국천주교회는 지역공동체와 이웃종교를 외면하면서까지 벌이고 있는 순교성지 성역화 사업이 순교정신과 복음 정신을 바탕으로 이웃 종교와 역사를 배려하는 진정한 성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5. 우리 신앙인들은 모든 피조물의 집인 지구가 상처받지 않도록, 4대강의 재자연화, 탈핵 등 자연을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즐거운 불편’을 몸소 실천할 것이다.

지금이 절체절명의 위기임은 분명하지만, 성찰과 혁신, 연대가 있을 때 위기는 기회로 전환한다. 우리는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분노가 아니라 자비와 사랑의 마음으로, 권력이 아니라 금강석과 같은 믿음과 실천의 힘으로 반드시 종교 개혁을 성취할 때까지 작지만 굳센 발걸음을 딛겠다.

2017년 12월 28일

불교·개신교·천주교 종교 개혁 선언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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