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도 이미지 업데이트!
교회도 이미지 업데이트!
  • 정택은
  • 승인 2017.12.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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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초기 기독교 역사는 선교와 사회변혁을 동시에 이룩한 근대화의 선구자로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선교사들은 서양의 발달된 의학과 신기술을 가지고 들어왔고, 전통사회의 오랜 구습인 반상제도와 축첩제도, 남녀차별, 조혼제도 등을 철폐하는 정신적인 동력을 제공하였다. 또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면서 기독교는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는 애국적 종교로 자리매김을 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기독교는 근대화의 선구자였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관(官)과 민중의 박해대상이었다. 결국 어떤 사회이든 변화를 원하지 않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고, 전근대사회일수록 그 사회 가치관의 수혜자이든 피해자이든 변화에 대해 수구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특히 기독교는 한국인의 정신과 물질세계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저항이 더욱 심했다.

이후 근대산업사회에 들어오면서 기독교는 산업화시대가 요구하는 윤리의 일정부분을 제공하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들라면 성장에 대한 신념과 이를 이루기 위한 근면성의 강조였다. 또한 이때에 기독교의 정체성을 ‘자본주의 정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났는데, 80년대의 성장제일주의, 기복신앙, 대교회주의, 개교회주의 등이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제공했다. 여기에 이데올로기 문제가 결합되면서 교회가 군사독재를 비판하는 일에 대하여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 당시 대부분 보수적 개신교에서는 민주화운동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70-80년대 보수적 기독교의 이미지는 현실에 참여하지 않고, 현세적인 복을 구하는 종교라는 이미지를 깊게 각인시켜 주었다.

21세기 기독교는 이런 기독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그러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회전반에 여과 없이 전달되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젊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대사회적인 봉사의 자세를 고취시키기도 하고,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통하여 세속학문과 문화와의 거리를 좁히려 하고, 권위주의를 탈피한 새로운 형태의 목회방향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런데 근대세계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세상은 저 만큼 앞서 가서, 이제 ‘후기근대(Post-modern)사회’에 돌입했다. 이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한 결 같이 근대정신의 쇠퇴와 더불어 기독교의 책임론을 제시하고 있다. 환경파괴의 주범이 자연을 비신성화한 기독교의 책임이며,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정신적 뿌리도 기독교라 한다. 성경에 근거하여 동성애나 낙태를 반대하는 기독교를 메마른 율법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기독교의 절대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다. 다원성의 세기에 절대를 주장하는 기독교는 독선과 아집을 낳고 결국은 투쟁과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는 말이다. 기독교의 절대성을 비판하는 서적들의 출판이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고, 기독교계 안에서도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한국교회는 한국의 급격한 변혁의 역사에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기여하면서 호흡을 같이 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어 갔으며, 빠른 속도로 교세의 확장을 이루었다. 한때는 기독교가 한국의 대표종교로 등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서 한국의 종교지형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인들이 서서히 기독교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런 부정적인 흐름을 막고 교회의 갱신을 이루려고 노력해 왔지만, 이제는 한국교회의 근원적인 문제를 재검토하고 본질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본질적인 이유 이외에 교회의 세속화와 상업화, 지나친 물량주의와 경쟁주의, 성도들의 신앙과 생활의 불일치, 세상을 섬기기 위한 투자의 빈곤 등 많은 이유가 지적되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보다 필요한 것은 원인분석보다 해결책이다. 예수께서도 나면서 소경된 자를 보셨을 때 그 소경의 원인이 부모의 죄인지 자신의 죄인지를 논쟁하는 제자들과 접근방법이 다르셨다. 오히려 문제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기회로 삼으셨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쟁론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이 시대는 이미지의 시대이다. 이미지 때문에 실제보다 더 좋게 보이기도 하고 더 나쁘게 보이기도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이미지, 좋은 소문이 나면 실제로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질적 수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반면에 본질적인 면에서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쁜 이미지, 나쁜 소문이 나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빠져 나간다. 스캔들 하나로 교회가 심한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지가 나빠지면 그 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다른 교인들, 더 나아가 불신자들에게까지 부정적인 효과를 미치게 된다. 만약 매스컴에 의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건강한 다른 교회도 단지 기독교 혹은 교회라는 이름 때문에 치명적인 손실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한국교회는 각각의 교회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에도 관심을 가지고, 또한 세상과 사회의 반응도 민감하게 살펴야 한다. 교회 전반의 위기와 침체에 대해서 함께 논의하고 중보하고 나누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위기가 교회의 잘못이든 한국사회의 세속화이든지 간에 문제는 한국인이 기독교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한국교회가 직면한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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