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6성인 순교지 탐방기-화양교회
일본 26성인 순교지 탐방기-화양교회
  • 김오채
  • 승인 2017.11.18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전도 99% 일본인의 복음화를 위한 원대하신 하나님의 계획

▲ 26인 성인 기념 동상 탐방

▲ 26성인 순교 기념 비 및 동백 나무

서울연회 성동광진지방 화양교회(담임목사 최상훈) “일본 순교지 탐방 선교 팀(18명)”은 지난 11.14(화)-11.16(목)의 일정으로 나가사키 니시자카 공원 내의 “26성인 순교 터”를 탐방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99%의 일본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며 선교의 비전을 품고 돌아왔다.

최상훈 목사(화양교회)는 현지에서 드려진 예배 설교 말씀을 통하여 420년 전에 뿌려진 순교의 피는 지금도 살아서 인류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잔악한 방법으로 핍박하며 처형했지만 자발적으로 믿는 자라고 고백하면서 순교했던 믿음의 형제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약 30,000 명이 순교하였지만 지금 일본의 기독인은 불과 인구의 1%에 지나지 않은 현실이 서글퍼진다. 여기에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달아 미전도 99%를 품고 기도하여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할 것을 당부하였다. 문희재 권사는 일본하면 우리의 침략국가로서의 인식이 강하여 순교자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 특히 12-14세의 어린아이들까지 믿음을 지키며 순교하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이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불식하고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구원의 선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하였다.
또한 기독교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일본 땅에서 예배를 심고, 기도를 심고, 땅 밟기를 통하여 일본선교의 비전을 갖게 된 것은 일본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있음을 알고 지속적으로 기도와 복음 전파하기로 다짐하는 의미 있는 일본 순교지 탐방이 되었다.

▲ 26인 성인 기념 동상

▲ 26인 성인 기념교회 탐방-1

▲ 26인 성인 기념교회

▲ 26인 성인 기념교회 탐방-2

▲ 26인 성인 기념교회

일본 땅 기독교 전파와 26성인 순교사건의 개요

⃟기독교(그리스도교)는 불교보다 훨씬 늦은 1549년 스페인 프란시스코 사비에르(1506~1552)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었다. 규슈와 시코쿠 지방의 다이묘 가운데 서양의 문물에 대한 관심이나 무역상의 이익 등을 고려하여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생기면서 17세기 초에는 신자수가 약 70만 명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기독교 전파가 비교적 순조로웠던 것은 단순히 종교의 자유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요인 더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당시 권력을 잡았던 오다 노부가가 자신에게 적대적인 불교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기독교에 호의적인 정책을 폈다. 한편 우리나라는 서민들에게 먼저 복음이 전파된 반면, 일본은 각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 계급에게 복음이 전파됨으로 오사카, 교토를 중심으로 영주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그 영향으로 믿는 자가 많아졌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기보다 신을 존중하는 것이 두려워 1587년 선교사 추방령을 내려 신국(神國) 일본에서의 사악한 종교의 포교를 금지하고 나가사키를 몰수하고 막대한 벌금을 물리며 교회와 십자가를 부수라고 명령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때 스페인 선박 산펠리페호가 시코쿠근해에서 조난을 당하였는데 그 선박에 많은 대포를 포함한 무기들이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스페인이 필리핀이나 멕시코를 침범할 때 먼저 선교사가 들어가 기독교를 포교한 후 이어서 군대가 진주하여 정부를 전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페인들이 기독교를 위장하여 들어와 일본을 식민지화 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기독교 금지령을 선포하고, 그 이후 교토와 오사카에서 선교사 등을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교토와 오사카에서 활동하던 선교사와 성도 24명이 체포되어 나가사키로 호송하던 중 2명이 더 체포되어 총 26이 되었는데 이들은 최연소자 12살의 루도비꼬 이바라기 소년부터 64세의 디에꼬 키사이에 이르기까지 일본인 20명, 외국인 6명(스페인, 포루투칼, 멕시코)이다. 이들은 왼쪽 귀와 코를 잘린 체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 약 966km를 십자가를 메고 걸어서 1달 정도의 기간에 걸쳐 호송되었는데 기독교를 믿으면 이들처럼 귀와 코를 잘려 처형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걷게 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결국 나가사키 니시자카 언덕에서 1597년 2월 조리를 틀고 관자놀이를 파헤쳐 기절시키고 깨어나면 다시 고문을 한 후 나중에는 십자가에 매달아 창으로 배에서 어깨까지 관통시키는 등 온갖 고통 속에서 순교하였다. 12살 된 루도비꼬 이바라기는 부모가 보는 앞에서 화형을 시키면서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를 하였으나 하나님이 좋고 천국이 나의 소망이기에 기꺼이 십자가를 지겠다는 굳건한 믿음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 후 막부도 1612년 금교령을 내려 근세 쇄국 하에서 기독교는 완전 금기시되어오다 메이지 정부가 기독교 금교를 해제하자 가톨릭, 개신교, 러시아정교의 선교사가 들어와 활동을 개시하면서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게 되었고, 이때 순교한 26명은 1862년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1950년 로마 교황, 피오 12세가 가톨릭교도의 공식 순례지로 공표했으며, 성인 추대 100주년이 되던 1962년에는 26성인의 기념비와 기념교회가 세워졌고. 26명의 성인과 천주교 금지령과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처형된 자리마다 동백꽃 나무를 심어 순교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14세 순교자-토마스 고자키의 편지

처형 직전에 잠시의 시간을 이용하여 어머니께 “임종 시에 상등통회로 신부님이 안 계셔도 구원을 받을 수 있으니 열심히 살라.”는 내용의 편지를 적었으나 보내지 못하고 아버지 “미카엘 고자키”의 옷섶에서 나중에 발견되었다.

(편지의 전문)
어머니!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몇 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가사키에서 처형되기 위해 거기로 가고 있는 우리들은 선두에 게시된 선고문대로 24명입니다. 저와 아버지 일에 대하여는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 머지않아 어머니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 신부가 안계시더라도 임종 시에 범한 죄를 깊이 통회하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수많은 은혜를 생각하고 그것을 인정하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덧없는 것이니 천국의 영원하고도 온전한 행복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저는 우리 주님께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저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부 전해 주십시오. 재삼 부탁드립니다. 지은 죄에 관하여 깊은 통회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범했지만 회개와 속죄에 의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멘!

음력 12월2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