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적 기복신앙 ‘말씀’으로 극복
샤머니즘적 기복신앙 ‘말씀’으로 극복
  • 정택은
  • 승인 2017.11.16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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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신앙 자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구원의 복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복을 빌고 받으려고 하는 기복신앙 그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 복을 기원하는 것이 개인적이고 이기적일 때 문제가 생기게 된다. 개인주의적 기복신앙은 이웃과 사회에 대한 관심의 결여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랑 없는 기독교’, ‘진리 없는 기독교’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바로 이런 비본질적인 것이 신앙의 본질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복을 비는 기복이나 복을 빌어주는 축복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원시적 형태인 미신적, 무속적 신앙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외경심과 영혼구원이란 본질에서 벗어나 현실의 복을 빌고 재앙을 물리치는 데만 몰두하는 기복적 신앙은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는 형태이다. 하버드 대학 하비 콕스 교수도 한국교회내의 기복신앙적 형태는 민간신앙인 샤머니즘과 접목되어 한때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에 무속신앙이 혼재되어 있고 성령운동을 지나치게 종말론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경계한 바 있다.

사실 기독교가 이 땅에 전래될 당시 기독교의 하나님과 영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샤머니즘적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이질감 없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영향을 주었다. 한국교회의 경이적인 성장도 따지고 보면 이런 바탕에 힘입은 바 적지 않다. 그래서 심지어 ‘한국형 기독교’라는 변형된 모습으로 토착화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초기의 한국교회는 계몽집단이요, 근대화의 주역으로 미신과 무속을 타파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성경은 기독교 진리와 복음신앙을 왜곡하고 오도하는 기복신앙과 샤머니즘에 대해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 가증한 일, 가증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신앙의 정도를 떠나거나 신앙의 기본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또한 여기서 진일보하여 샤머니즘적 기복신앙을 세척, 극복함으로 말씀중심의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동시에 신학적, 윤리적, 역사적 교회의 정체성을 바로 확립하여 한국 민족과 인류역사에 복음적 이상을 실현토록 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기본을 다시 세우는 일, 즉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문제는 깊이 있는 신학적 성찰과 생활에서 실천하는 영성 대신 교회성장과 기복주의에 따른 말씀의 왜곡에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육신의 생명이 호흡에 있듯이 교회의 생명은 설교에 있다. 설교를 통해서 영적인 생명력이 공급되어 교회의 부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떠한 해답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설교는 하나님의 의도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문 안에 머무르는 설교, 본문의 의도만을 전하는 설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기도로 숨 쉬며 기도로 그 생명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강조함과 함께 말씀 중심의 기도를 강조하고 일깨우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말씀 중심의 신앙이 바른 신앙인 것처럼, 말씀 중심의 기도가 바른 기도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기도하는 교회라는 사실은 긍정적인 요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기도가 참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도의 열의와 함께 그 열의의 반대편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로 한국교회 내의 기도에 있어서 비성경적인 요소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성경적인 기도로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비성경적인 기도란 인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샤머니즘화 되어가는 기도를 말한다. 한국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 샤머니즘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복음의 순수성을 지켰는가 하면 일정부분 타협을 통한 변질된 부분이 있었다. 샤머니즘이 한국교회의 기도에 영향을 끼치기가 용이했던 것은 바로 ‘기복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은 복된 일이다. 그런데 샤머니즘의 기복과는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 드려지는 기도들 가운데 샤머니즘에 친숙한 기도들이 있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며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샤머니즘에서는 도덕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얻고자하는 것을 얻는 것만이 중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선한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으려는 것에 몰두한다. 그래서 부도덕한 짓을 하면서도 그 짓이 성공할 수 있도록 비는 것이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도덕성을 배제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덕성을 배제한 기도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지 않다. 이러한 이기적인 욕심으로 가득 찬 기도는 올바른 기도라 할 수 없다.

이제 한국교회는 자기개혁에 나서서 이기적 기복신앙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교회로 일어서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말씀하셨다. 말씀 안에서 진리를 구하고 진리 안에 거할 때 복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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