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성찰에 대한 마카리오스와 에바그리오스의 교훈(7)
내적 성찰에 대한 마카리오스와 에바그리오스의 교훈(7)
  • 김수천
  • 승인 2017.11.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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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에바그리오스가 설명하는 관상의 상태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에바그리오스에 의하면 기도자가 무정념의 단계에서 참된 기도를 드리게 될 때 두 단계의 기도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피조물과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한다. 첫 단계는 피조물에 대한 관상의 단계로 사물의 내적 본질들에 대한 관상이다. 이에 대해 에바그리오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에 지성이 피조 세계에 대한 관상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직 하나님의 세계를 완전하게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지성이 이해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지식에 머물러 있고, 그것들의 다양성에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첫 단계의 관상에 이른 기도자는 피조물에 대한 지식에서 이제 기도의 마지막 단계인 신적 지식의 관상에 이르게 되는데 이에 대해 에바그리오스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영적 지식은 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돕는 자로 지성의 이지적 능력을 일깨워 신적 지식의 관상을 하게 합니다.

이 단계에서 기도자는 천사들처럼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삼위일체를 관상하게 된다.
에바그리오스에게 기도는 이처럼 사물과 궁극적 진리에 대한 인식론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내적 경성을 통해 무정념에 이른 기도자는 순수한 지성의 활동에 의지하여 사물의 내적 본질에 대한 통찰을 하게 된다. 나아가 기도자는 사물의 내적 본질을 넘어서 창조주에 대한 관상을 통해 궁극적 진리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에바그리오스는 덕이나 사랑도 창조주에 대한 관상을 위한 일종의 방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피조물의 내적 본질에 대한 관상을 획득하기 위해서 우리는 덕을 실천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그것들에게 존재를 부여해 주신 로고스에 대한 관상으로 나아갑니다. ... 기도의 상태는 하나의 무정념의 상태입니다. 그것은 지혜를 갈망하는 지성을 가장 간절한 사랑에 의해서 순이지적인 영역으로 인도합니다.

덕이나 사랑이 순수한 사고를 하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사랑으로 가득차면 내면에 시기심 같은 혼란이 없기 때문에 순수한 사고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에바그리오스가 내적 경성을 마음에 관한 학문(science of mind)이라고 부른 이유다. 내적 경성으로 이른 무정념의 경지 자체가 기도자에게 우주만물과 창조주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얻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무정념의 상태는 최소한 피조물과 인생과 창조주에 대한 궁극적 진리들을 최상의 정신적 상태에서 관상할 수 있게 해준다. 에바그리오스는 이 깊은 사색의 세계를 사파이어 보석에 비유하였다. 일체의 불순물이 없이 맑은 사파이어 보석처럼 인간의 마음속에 광활하게 펼쳐지는 사색의 우주, 그것이 바로 에바그리오스가 강조하는 기도의 세계다. 그 기도의 세계에서 피조된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궁극적 진리의 심연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신학방법론에도 적용할 수 있는 지혜이다. 주지하듯이 현대의 신학방법론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에 의해 진리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것은 필요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신학 탐구자가 고도의 순수한 사고의 상태에서 진리를 관상함을 통해 진리를 터득하는 방법론도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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