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하는 목사 아파하는 성도
설교하는 목사 아파하는 성도
  • 민돈원
  • 승인 2017.09.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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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7일 주일 낮 예배시간이었다. 성경은 잠14:25-27이고 제목은‘부조화를 극복하는 신앙’이었다. 설교 본문에 필요한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두에 미국 사회심리학자 페스팅거(1919-1989)의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이론’을 설명했다. 인지부조화란 한 사람이 서로 상반되는 생각과 신념,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있거나 기존의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느끼는 스트레스나 불안한 경험을 일컫는 용어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믿는 것과 실제 일어난 일이 다를 때의 좌절이나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믿음과 현실, 둘 중 하나를 바꿔야 하는데, 현실을 바꾸기 어려울 경우 결국 자기 믿음-흔히 사이비 종교 같은 경우-에 맞춰 합리화한다는 이론이다. 그래서‘인지 부조화’라고 부른다. 이를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서 설교를 이어갔다.

‘이 이론은 어떤 사람이 금연에 실패하는 이유에서 볼 수 있는데요. 간혹 주위사람들이 그에게 담배 끊겠다고 마음먹었더니 되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 보십시오. 하지만 대다수 흡연자는 그렇지 못하고 실패합니다. 흡연하는 사람들가운데 이유중의 하나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어떻게든 흡연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성적인 접근보다는 자기합리화를 꾀하게 됩니다. 즉 흡연을 정당화하거나 핑계거리를 찾으면서 금연에 무감각하게 됩니다. 결국 흡연을 정당화하는 심리가 금연의 필요성보다 우위에 놓이는 일종의 자기구실, 합리화입니다 ...’

그리고 나서 찬송가 511장‘예수 말씀 하시기를 ...’로 시작하는 찬송가운데 3절,‘죽을 사람 구하라고 예수 너를 부르니 힘이 없어 못한다고 핑계하지 말아라...’하는 밑줄 친 가사대목을 다른 말로 바꾸어 강조했다.

예컨대‘말을 못해 못한다고, 나이 많아 못한다고, 몸이 아파 못한다고, 시간 없어 못한다고, 애가 어려 못한다고, 믿음 없어 못한다고 핑계하지 말아라...’

이 찬양 바꿔 부르기 끝나자마자 곧 이어 한 여 집사가 발끈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내 앞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방광염 때문에 새벽기도 못나갔다. 나는 십일조도 한다.’는 등 안색이 잿빛으로 변하며 자기주장을 폈다. 그런데 그날 설교 중에 예배나 기도는 언급했는지 모르나 그렇다고 어느 특정인을 지목하지도 않았고 십일조에 대한 말씀은 한마디도 없었다. 단지 방금 부른 찬송 중에‘몸이 아파 못한다고 핑계하지 말아라.’라고 한 그 대목이 자신의 지난날 쌓여 온 아픈 마음과 약점을 건드렸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에 앞으로 불러내서 기도했지만 아직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 분은 평소에는 예배도 그런대로 잘 드리는 분이고 십일조도 최선을 다해 드리는 분이다. 다만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래전부터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살아오고 있을 만큼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예배 중에 일어난 일이긴 했지만 이 분에 대한 전이해가 있기에 이후 유아실에서 안정을 취하도록 했다.

이처럼 설교자가 말씀을 선포하는 경우 때로는 결코 어느 특정인을 들먹이지도 않았는데 마음에 쓴 뿌리가 있는 분들의 경우 치유되지 못한 채 억압되고 눌려 있는 분들의 경우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이와 비슷한 과민 반응을 일으킬 때가 있다. 아무래도 정황으로 보아 두 주 정도 진정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린 후 전화심방으로 마음을 위로해 드렸더니 이번 주에는 그 때의 안색과는 다소 환한 미소로 밤과 능이버섯을 가지고 목양실에 찾아왔다. 이런 일은 교회 안에 마음이 여린 분들에게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과거 시점에 형성된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지금까지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때 신앙생활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는 실례이다. 그 외에도 이런 분과 다르게 인지부조화를 가진 채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 다양한 사람들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교회가 나아가야 하는 목회자 방침과는 다르게 자기주장 일변도를 펴는 경우도 본다. 그럴 때마다 진정한 목양이 이런 분들을 살리고 치유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무거운 사명감을 느낀다.

이에 이런 개인적인 인지부조화를 겪는 분들과 함께 나아가 최근 국가 지도자들이나 기업 총수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따라서 사회적인 총체적 인지 부조화의 시대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주님이 개인과 사회를 고치러 오신 것처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복음적인 치유방법 등이 다양한 임상경험들을 통해 방안이 제시되고 이런 선포가 설교단에서 권세 있게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지난 예배 때 일어난 일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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