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없는 교회교육이 희망이다.
경쟁 없는 교회교육이 희망이다.
  • 정택은
  • 승인 2017.09.1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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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주제 가운데 하나는 ‘교육’이다. 늘 교육을 외쳐 왔지만 메아리 쳐 돌아오는 것은 ‘개혁’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래서 수시로 교육 개혁방안을 제시하며 이를 시행해 왔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신음하며 고통 받고 있는 대상은 늘 학생과 학부모들이다.

대학진학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네 꿈은 뭐니?” 라는 질문은 사치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인 우리의 교육현실. 꿈 없이 일단 대학에 진학하면 “그 때 뭔가 되겠지” 라는 아이들의 대답과 “교육이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계속 오답을 찍을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마음은 참으로 답답하다.

고입 비평준화 지역의 중학생들은 심기가 불편하다. 성적으로 학교의 등수가 매겨지고 어느 고등학교를 다니느냐에 따라 자신을 대하는 눈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워해야 할 교복이 낙인이 되고, 학교마크가 주홍글씨가 되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다. 결국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학생들은 시간의 절반은 학교에서 또 절반은 학원에서, 일명 밤의 교실을 옮겨 다니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최고의 청소년 자살률과 세계 유례없는 50조원의 사교육비 지출, 중고생 74%가 소위 ‘공부 잘하는 약’을 섭취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오늘날의 교육을 돌아보게 된다. ‘경쟁’이 주된 삶의 현장인 학생들에게 ‘협동’과 ‘상호존중’의 장을 마련해줄 수는 없을까?

몇 년 전 모 방송국에서 세계의 학교교육을 연속물로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핀란드, 영국, 스웨덴의 교육시스템과 학교교육이 필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는데 이를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핀란드에서는 ‘얼마나 좋은 학교인가?’에 대한 답은 ‘우수한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부진한 학생들이 얼마나 적은가’에 달려있다. 핀란드의 교육은 한 학생이라도 낙오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또한 핀란드에서는 학생을 비교하지 않는다. 시험도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학생 자신이 이전보다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평가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결국 다른 학생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것이다. 핀란드 뿌낀메끼 학교장은 말한다. “학생들이 경쟁을 하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경쟁은 스포츠에서는 중요할 수 있겠지만 교육은 협동과 협력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공부는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등부터 꼴찌까지 서로 도우며 함께 꿈을 키워가며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영국정부는 학교와 손을 잡고 창의력 연계프로그램(Creative Partnership)을 추진하고 있음을 소개했는데,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창조적 산업분야를 연결해 교육에서 창의력을 포함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능력과 태도를 길러주기 위한 것으로, 팀을 만들어 협동을 통해 더 효율적이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주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과목간의 벽을 헐고 여러 과목을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과목간의 벽이 학생들의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빛의 원리는 과학이지만 빛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것은 예술인 것처럼 학생들의 관심을 단지 과학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술로 끌어올리면서 과목의 제한된 경계를 무너뜨리고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영국은 지난 2백년간 첨단자본주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천연자원의 고갈과 제조업의 쇠퇴 등으로 대안이 없을 때 영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조산업이었다. 예를 들어 헤리포터 시리즈는 3백조 원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주었고, 크리스찬 디오르 등이 패션을 주도하면서 패션 강국이 된 것이다. 이러한 창조산업이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성장했고 국내총생산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디어가 중요하지만 창의성이 그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실체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창의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교육이 중요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스웨덴에는 푸투름(Futurum) 학교가 있다. ‘푸투름’이란 ‘미래’를 의미하는데, 창의적인 학생이 바로 미래라고 생각한다. 미래사회는 스스로 계획하고 책임지고 협동하는 사람을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미래사회의 새로운 형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세계는 협동을 이루고 창의성을 지닌 학생을 키워내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우리나라는 영어와 수학, 과학 등 편중된 과목위주의 입시교육이 대세이다. 또한 옆자리의 친구를 여전히 경쟁 대상으로 여기며 친구를 이겨야만 하는 교육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답답한 상황을 벗어버리고 학생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배움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특별히 교회에서 이뤄지는 교회교육에서만이라도 그 대안은 없을까?

그동안 ‘교육’의 개념이 대체로 ‘개인의 다양한 적성과 능력을 발견해 이를 최대한 신장시켜 주는 것’으로 규정해 왔기 때문에 교육의 목표, 내용, 방법 등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도 개인주의를 토대로 개별화 수업이나 경쟁 학습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경쟁학습은 서로 대립적으로 활동하도록 조장하고, 소수만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결국 교육기간 동안에 만성적으로 실패를 경험하는 학생들은 학습에 소극적이거나 포기하게 되고, 또한 지나친 경쟁상황은 학습자에게 불안을 야기해 상대적으로 지적 요구 강도를 약화시킨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인지발달이론에서 피아제(Jean Piajet)는 아이들의 인지발달은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즉 지적자극은 친구나 동료들과의 토론을 통해 상호발달을 이루며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함께 공부하는 것이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협동을 통한 학습은 특별히 분반형태로 진행되는 교회학교에서 실천하기가 용이하며 성적을 내거나 평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경쟁의 구도를 탈피해 상호존중과 협력을 통해 창의적인 학습을 이루어 상호발달을 이루어 갈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학교 분반교육의 내용도 단순히 성경학습 위주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협동학습이 될 수 있는 커리큘럼과 교재가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교육은 기본적으로 ‘윈윈’(Win-Win)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특별히 어떤 협동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친구가 실패하면 자신도 실패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동료를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도 성공할 수 없다. 이는 기독교적 정신에 부합하는 것으로, 이런 교육적 마인드가 확산된다면 학교교육의 현장에도 수용돼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로 인해 지친 우리 자녀들의 얼굴에서 다시 웃음을 되찾아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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