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에 대한 니사의 그레고리오스의 교훈(7)
완전에 대한 니사의 그레고리오스의 교훈(7)
  • 김수천
  • 승인 2017.09.0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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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살펴 본 그레고리오스의 완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모세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완전에의 길에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상태에 이르렀다. 모세의 생애 결론에서 그레고리오스는 “모세가 성취 가능했던 완전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대하여”라고 말한다. 여기서 ‘모세가 성취 가능했던 완전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헬라어 원문의 두 단어와 구절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완전에 이르렀다”를 나타내는 헬라어 단어(πέτυχε)와 “인간적인 완전”을 나타내는 헬라어 구절(ᾄνθρωπο τελειότητα)이다. 먼저 3인칭, 단수, 과거, 직설법으로 쓰여진 헬라어 단어(πέτυχε)는 모세가 확실하게 완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적인 기준의 완전(ᾄνθρωπο τελειότητα)이다. 절대적인 의미의 완전이 아니다.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정상에 도달한 또 다른 증거를 우리는 민수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민수기 12장 3절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 완전에 이르는 길은 그 과정이 중요한데 그 과정은 끊임없는 달리기와 같은 것이다. 서론에서 그레고리오스는 그 길을 말 경주에 비유하여 묘사한다. 그레고리오스는 바로 자신이 관중과 같은 태도로 자신에게 이 책을 써줄 것을 요청한 젊은이를 향해 그의 영적 달리기를 응원한다고 강조한다. 모세의 생애 끝부분에서 그레고리오스는 “더 나은 것을 향한 삶의 지속적인 성장이(επεκτασις) 완전을 향한 영혼의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레고리오스는 여기서 지속적인 진보의 개념을 통하여 완전에 대한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즉 완전을 덕의 정적인 성취 개념(static achievement of virtue), 즉 절대적인 개념으로 이해한 플라톤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동적인 성취 개념(perpetual progress-επεκτασις)으로 설명한 것이다.

셋째, 완전에 대한 또 다른 개념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론적 측면에서 설명된다. 모세의 생애에서 하나님은 영적 성장의 초보자에게는 빛 가운데에서 계시되는 반면, 진보자에게는 어둠 가운데 알려진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드러남과 감추어짐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에게 처음 나타난 하나님은 떨기나무의 빛 가운데 계시된다. 여기에서 빛이 암시하는 것은 구체적인 드러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의아해하는 모세에게 자신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구체적인 관계를 통하여 알리신다. 나아가 하나님은 자신의 신적 본질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명백히 드러내신다. 이와는 다르게 영적 진보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은 암흑 가운데서 나타나신다. 빛 가운데에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나 어두움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감추어진다. 이것은 모세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모든 전이해들을 부정해야 함을 상징한다. 영적 진보자는 과거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부정하고 다만 어둠과 침묵 가운데에서 주어지는 새로운 신적 계시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레고리오스의 완전에 대한 개념 가운데에는 부정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이해해 가는 부정의 신비신학(apophatic theology)이 포함된다.

끝으로, 개인적 완전은 공동체의 유익에 기여한다. 완전의 덕은 개인을 위한 목표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 완전의 덕을 향한 경주는 곧 이웃을 향한 달음질이다. 이러한 사실은 동방정교회 영성가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던 숯불에 달구어진 쇠의 비유에서도 잘 나타난다. 쇠는 숯불에 달구어지면 빛과 열이 된다. 어두운 곳을 환히 비추는 빛이 되고 추운 곳을 따뜻하게 해주는 열이 되는 것이다. 불이 되어 버린 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이 된 쇠는 자신의 본질과 관계없이 자신이 가는 곳마다 빛과 열을 나누어 준다. 차가운 쇠가 열을 받아 불이 되는 것은 이기적인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머물러 이타적 존재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충분히 머물렀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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