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회심 줄어든 한국교회
종교적 회심 줄어든 한국교회
  • 정택은
  • 승인 2017.08.1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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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 어거스틴, 루터, 칼빈, 웨슬리 등 기독교 역사에서 ‘회심’은 항상 새로운 사람을 낳았고, 그들에 의해서 교회는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교회 내에도 그동안 수많은 회심을 경험해왔다. 이러한 회심의 결과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가 부러워하고 놀랄 정도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왔고, 한국 사회 내에서 한국교회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회심이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교회공동체적,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21세기의 한국교회는 교인의 감소, 사회적 신뢰성의 추락, 교단과 교회내의 갈등 등으로 총체적인 변화를 요청받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많은 아픔들은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표면상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서 기인하고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가 다시금 고민하고 되돌아보아야 할 주제가 ‘회심’이라고 생각한다.

회심은 하나님과의 신뢰경험이며, 교회는 신뢰경험으로서의 회심공동체이다. 회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며, 신앙공동체적 사건으로서 예배나 집회 등 영적활동과 관련된 상황에서 일어난다. 회심은 믿음의 결단으로 표현되며 삶의 새로운 변화를 동반한다.

일반적으로 종교적 차원에서 회심이라는 표현은 각 개인이 가지는 종교적 신념, 삶의 가치들에 대한 변화된 순간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종교적 변화로서의 회심은 종교적 신념을 통한 존재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처럼 회심은 변화에 대한 물음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교회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회심, 체험 등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의 결단이고 고백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회심의 고백이 삶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회심의 체험을 통한 변화된 삶이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회심을 세상과 분리시키고, 교회의 영적사건으로 형식화하고 이해하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비록 회심이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것은 동시에 공동체로서 공통된 신앙경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바울의 회심은 한 개인의 극적인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동시에 회심한 바울을 통해 그 신앙공동체가 고백하고 지녀야 할 믿음과 소망의 문제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심은 개인의 사건에서 공동체의 사건으로 이어져야 하고,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세워가는 하나님의 관심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할 때 회심을 통하여 부활을 경험하게 된 개인이 종말론적 비전을 안고 하나님 나라 백성공동체로 영입되어 이 땅에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회심으로서 개인의 신앙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종말로 열려 있는 이 공동체의 비전을 따라 이 역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신앙인으로서의 회심의 경험은 생활세계인 사회와의 관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회심이 가지는 사회학적 차원은 나의 체험과 경험의 문제가 우리의 생활세계와 사회관계 속에서 깊은 상호작용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기독교신앙으로의 회심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의 관심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종교적 교리나 종파적 믿음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역사 속에서 변화될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에 참여하는 것이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해하는 것이다. 이 참여와 이해는 하나님의 역사의 지평을 넓혀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내 감정과 취향에 따라 보이는 문자적 해석이 아니라, 나의 삶과 모든 것을 통해 인격적으로 전해주시는 사건으로서의 말씀이다. 그것이 성경으로 주어졌으며, 나의 생활가운데 이해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회심은 용기이다. 이 용기는 큰 다짐보다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고 감동으로 전해진다. 교회는 이러한 용기 있는 회심자들을 지지하며 세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으로 파송하는 교회의 용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할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교회와 회심을 경험한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공동체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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