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사의 그레고리오스(Gregory of Nyssa, 335~395)는 아리우스파를 단죄했던 아타나시우스 이후 동방정교회에서 세 명의 교부 중 하나로 활동하였다. 그는 381년 제2차 종교회의로 불리는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니케아 신조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함으로써 니케아 신조가 정통 교리로 재확인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종교회의 후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신학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한편 그레고리오스는 가이사랴의 감독이던 형 바실레이오스(Basil the Great of Caesarea)에 의하여 니사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형과 달리 침묵과 고독을 즐기는 성향으로 인해 영성적 명상 생활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그레고리오스는 단순히 신비적 명상만이 아닌 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일찍이 플라톤, 플로티누스, 그리고 필로의 저서들을 탐독하였다. 알려진 것처럼 그레고리오스는 그리스도교 사상가들 중 특히 오리게네스(Origenes)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오리게네스가 신플라톤주의의 관점처럼 영혼의 상승을 영혼의 본래 상태에 대한 회복으로 이해하며 어둠으로부터 점차 빛을 향한 상승으로 설명하는 반면, 그레고리오스는 빛으로부터 신적인 어둠으로의 상승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처럼, 그레고리오스는 영성신학사의 입장에서 볼 때 철학과 영성신학을 균형감각을 가지고 조화롭게 적용한 인물이다. 철학에 대한 그의 긍정적인 입장은 그의 저서인 모세의 생애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그레고리오스는 이러한 이방 철학이 그리스도교적 계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고 모세의 생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덕에 대한 우리의 가르침은 부유한 이집트인들로부터 도덕과 자연철학, 기하학, 점성술, 그리고 수사학 같은 교회 밖에서 추구되는 지식들을 받아들일 것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신비스러운 신적 진리가 이성의 풍요에 의하여 아름답게 될 때 유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스는 이렇게 신 이해에 대한 철학적 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이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전이해들을 부정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궁극적인 이해의 단계에서는 다만 침묵 가운데 주어지는 계시 앞에 머물러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 이해의 과정은 지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님 이해의 진보과정은 인간의 인격 완성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와 만남은 지적 확장만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닮는 신화(神化-Theosis)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그레고리오스와 헬라 철학자들과의 결정적 차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본성을 닮아 신화 또는 완전에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모든 덕의 원천(the source of virtues)인 하나님처럼 변화될 수 있다는 신화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서가 모세의 생애가 지니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모세의 생애는 카이사리오스라 불리는 젊은 수도사의 요청으로 저술되었다. 이 책은 I부와 II부로 구성되었는데 I부는 출애굽기를 중심으로 한 모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다. II부는 모세의 생애에 대한 그레고리오스의 명상적 해석이다. 이 명상적 해석에서 그레고리오스는 많은 부분에서 당시에 유행하던 알레고리적 해석 방법을 따르고 있다. 한편, 그레고리오스는 모세 개인의 이야기만 다루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신자의 영적 성장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더욱 효과적인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몇 주간 그레고리오스가 말하는 완전에의 길을 함께 산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