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표현된 탄원시 영성을 통해 생각해 보는 마음의 평안
시편에 표현된 탄원시 영성을 통해 생각해 보는 마음의 평안
  • 김수천
  • 승인 2017.04.2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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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 사회는 묻지마 범죄로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묻지마 범죄가 여성 같은 신체적 약자들을 상대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일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그로 인해 분노가 형성될 수 있는데 그것을 잘 조절하지 못해 사회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한 현상의 원인들은 다양하지만 근본은 공정하지 못한 사회제도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제도 개선이 하루아침에 다 이루어지지 않기에 참으로 답답하다...

이 안타까운 현실에서 시편에 표현된 탄원시를 통해 분노 조절 장애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다. 시편에는 크게 찬양시, 탄원시, 감사시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탄원시가 가장 많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들의 삶에도 찬양과 감사가 우러나오는 상황보다는 탄식이 흘러나오는 상황이 더 많았다고 하는 것이다. 힘든 상황이 찾아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신의 잘못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의 어두운 시기들을 하나님께 탄원하는 영성으로 통과했던 것이다.
탄원시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익한 것은 마음과 영혼의 힐링을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힐링을 위해 시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언어치료 분야에서 글쓰기 등 언어를 활용하여 치유하는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대표적인 탄원시인 시편 10편을 묵상해 보며 힐링과 회복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살펴 보자. 대부분의 탄원시의 구조는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토로하는 부분, 악한자에 대한 응징을 간구하는 부분,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영적으로 회복하는 부분으로 되어 있다.
먼저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는 내용은 1절(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과 12-13절(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에 표현되어 있다.

 다음으로 시편의 저자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공의로 다루어 주시기를 간구하는데 2절(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과 15절(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에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악한자를 벌해 달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어긋나지만 아직 신앙의 수준이 높지 않은 사람에게는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점차 신앙이 자라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함을 통해 회복을 경험하고 있다. 14절(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이 잘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벌써부터” 하나님의 도움을 확신하고 있다. 아직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고통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바뀐 것이다. 그래서 절망의 바닥으로부터 희망을 향해 V자형으로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렇다! 탄원시의 영성은 우리가 이 스트레스 많은 세파 속에서 히브리서 11장 38절 말씀을 체험하게 해 준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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