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갈은 몰라도 요나단은 안다
하갈은 몰라도 요나단은 안다
  • 이구영
  • 승인 2017.03.24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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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향단이가 이 도령을 사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춘향이가 이 도령을 목숨 걸고 사랑하고 있고, 이 도령도 춘향이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확실한데 그 사이에서 향단이가 이 도령을 사랑한다면 춘향전은 어떻게 되었을까?
신분의 차이가 엄연한 사회에서 참 큰 비극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몇 해 전에 방영되었던 추노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종의 딸이 주인집 도련님과 사랑에 빠집니다.
도련님도 노비의 딸을 사랑해서 함께 살고 싶어 합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그들의 삶은 비극으로 이어져갑니다.
참으로 힘든 인생을 열매도 없이 살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선을 넘은 생각은 사람을 불행으로 이끌어갑니다.

비극적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비극의 씨를 심으니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섯 달란트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재능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을 주시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둘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십니다.
백성이 있어야 왕이 있고, 회사원이 있어야 사장이 있고, 교인이 있어야 목사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왕이 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사장이 될 수 없고, 모든 교인이 목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일을 자주 봅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장님들이 서로 자영업에 뛰어 들었다가 창업하고 5년이 가기 전에 그동안 모았던 평생의 재산을 다 소진하고 빚쟁이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준비되지 않았고 마음도 없었는데 어찌하다 떠밀려 목사가 된 후 교인도 힘들고 교회도 힘들고 본인도 힘들어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글쎄... 저 사람까지... 하는데도 대통령 하겠다고 나서서 여러 사람 힘들게 하고, 본인도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와는 에덴동산의 주인이 아니었는데 주인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선악과를 따 먹습니다.
실낙원! 추방되고 맙니다.
하갈은 대리모이었고, 정식 부인이 아니었지만 본 부인인줄 착각하다가 아들과 함께 추방당해 광야를 떠도는 처량한 신세가 됩니다. 자신의 본문을 잃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다가 그만 모든 것을 잃고 광야에서 통곡하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브닌나와 한나는 엘가나의 두 부인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엘가나의 부인이었고, 협력 관계 속에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엘가나를 독차지 하고 싶었습니다.
한나를 파트너가 아니라 경쟁자로 생각하고 몰아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얄비운 브닌나보다는 한나의 손을 들어주시고 사무엘의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오히려 큰 소리치던 브닌나는 무대 밖으로 사라져버리는 초라한 존재가 됩니다.

요나단은 오늘 이 시대에 다시 생각해 볼 영웅입니다.
그는 사울왕의 아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될 0순위 후보자이었고, 백성들의 지지와, 군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분명한 사실 하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지명하셨음을!
요나단은 욕심을 부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세력과 단단한 군사적 지지기반을 업고 왕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그 어떤 욕심도 부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주연이 아니라 조연임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배역에 충실하며 다윗을 군사들과 사람들 앞에 세워주었습니다.
위기에 몰려 죽음을 앞에 두고 도망 다니는 다윗에게 요나단은 이런 말을 해 주며 용기를 주고,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삼상 23: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아니라 다윗을 왕으로 지목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생각에 자신이 아무리 적임자라 할지라도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인맥과 재물과 권력구조를 다윗 중심으로 재편하고 다윗을 왕으로 삼고 자신은 물러납니다.
그랬기에 요나단의 죽음 후에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다윗의 보호 속에 행복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주어진 배역이 있습니다.
지나친 자기 사랑은 욕심을 낳게 하고 이 욕심은 죄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자기 자신 보다는 하나님을 더 사랑했던 요나단은 행복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기 자신이 더 중요했던 하와, 브닌나, 사울왕등은 불행의 대명사가 됩니다.

오늘 서로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고, 힘을 가지고 싶어 하는 세상을 보면 문득 요나단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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