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과 정화를 위한 영성 일기
힐링과 정화를 위한 영성 일기
  • 김수천
  • 승인 2017.03.2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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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서 요즈음 영성 일기에 대하여 관심이 있기에 힐링과 정화를 위한 영성 일기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먼저 영성 일기는 영적 힐링을 위해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힐링은 일차적으로 상한 감정을 치유 받는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마음의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며 그 상처들은 마음에 쓴 뿌리로 남아 건전한 인격 형성을 방해한다. 기독교적 의미에서 건전한 인격 형성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형상이란 한 마디로 한다면 이타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 솔직한 감정을 기록하다 보면 단순한 힐링을 넘어 정화를 경험하게 된다. 정화란 무엇인가? 마음 바닥에 내재되어 있는 죄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마치 물컵 속에 있는 먼지를 제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뿌연 부유물이 있는 컵 속의 물은 탁자위에 한 동안 가만히 놓으면 먼지가 가라앉는다. 그래서 물의 윗부분은 맑아진다. 하지만 컵에 충격을 가하면 물은 다시 흐려진다. 그러므로 먼지를 제거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우리가 정화되어야 할 죄성의 목록은 헤아릴 수가 없다. 우리는 평생 그 죄악의 목록들과 씨름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몇 가지 핵심적인 주제에 대해서만 살펴 보고자 하는데 그것은 정욕, 자신에 대한 신뢰, 일상의 필요에 대한 염려이다. 정욕은 인간의 실존을 나타내는 가장 근본적인 욕구의 하나이다. 우리가 알듯이 동물들은 발정기 외에는 거의 성적인 욕구를 느끼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강렬한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노년기가 되어 육체적인 정력은 쇠약해져도 정신적인 성욕은 여전히 활동한다고 한다. 특별히 남자의 성적 에너지는 수면중에 무의식중에도 활동한다. 이처럼 거의 평생 동안 그리고 무의식중에도 활동하는 것이 성적인 에너지이며 욕구이다.

두 번째로 정화되어야 할 주제는 자신에 대한 신뢰이다.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려고 하는 본성은 또 다른 인간의 실존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사유의 능력을 선물로 받았다. 이 사유의 능력으로 첫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인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고 모든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의 사유 능력은 그의 첫 번째 과제인 이름 짓기를 적절하게 수행하게 해서 곁에서 지켜보신 하나님은 만족하셨다. 그런데 그의 사유 능력이 그릇된 방향으로 자극되었을 때에 인간은 그 사유 능력의 오용으로 인해 타락하게 되었다. 사탄은 여자에게 금지된 열매를 먹으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그 말을 듣고 열매를 보았을 때 그녀에게 내재된 사유 능력이 활동하여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했다...
자신의 사유 능력을 신뢰하려는 인간의 성향은 인간에게 정함이 없고 그래서 열매가 없는 인생을 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지혜와 꾀를 따라 살려고 한다. 그래서 성경은 정욕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신뢰하려는 성향에서 정화되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가르친다.

셋째로 우리는 일상의 필요에 대한 염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일에 대한 염려가 내 마음을 지배하는 한 내 마음 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묵상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제 역시 알면서도 잘 실천되지 않기에 말씀 묵상과 병행되는 일기를 통해 조금씩 연습해야 한다.
영성일기를 통해 정화의 길을 가다보면 우리는 더 많은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그 진리안의 자유는 우리에게 초월된 삶을 경험하게 해 준다. 초월이란 무엇인가? 영성신학적으로 말한다면 인간성을 벗어나 신성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영성일기는 구원의 완성을 위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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