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태극기
촛불과 태극기
  • 이구영
  • 승인 2017.02.16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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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가 평화적이라는 말에 반대합니다.
촛불을 든 순간 이미 평화는 깨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폭력적 방법을 통해서 의사를 전달하지 않았을 뿐이지 촛불을 든 자체는 이미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전쟁이 선포되자 잠시 멈칫 하더니 태극기가 등장했습니다.
태극기가 평화적이라는 말에도 반대합니다.
태극기를 든 순간 이미 평화는 깨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물리적인 방법에 의한 전투가 일어나지 않을 뿐이지 이미 한 편은 아닙니다.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의 역사나 세계의 역사는 늘 편을 갈라 대립하며 살아왔습니다.
고구려 / 백제 / 신라라는 큰 틀이 있었습니다.
한 고려, 한 조선 인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당파싸움과 지역, 혈연에 의한 분열이 있었고, 대한민국 안에도 학연, 지연을 비롯한 수많은 편 가르기가 있었습니다.
이념의 대립, 지역의 대립, 소유의 대립, 성별의 대립, 세대의 대립이 이어져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일까요?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키시려고 십자가를 선택하신 예수님의 뜻일까요?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해서 오늘도 탄식하시며 연결의 사역을 이어가시는 성령님의 뜻일까요?

미소 짓다가 또 박장대소하는 마귀가 보입니다.

국회도 편 가르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정의와 사랑으로 법을 만들어야 하고 그 법으로 인한 피해자를 인정하고 그들을 도와야 하는 국회가 편을 가르고 있습니다. 입법보다는 사법과 편 가르기와 내 편 만들기에 정신을 쏟고 있습니다.
언론이 편 가르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공정한 보도는 이미 느껴지지 않습니다.
선동과 편파보도가 일상화되어가는 느낌입니다.
검찰이 편 가르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여론에, 권력에 휘둘리지 말고 법을 법리로만 해석해야 하는 검찰도 상황이나 여론에 따라 굽은 잣대를 대는 느낌입니다.
청와대가 편 가르기에 앞장서는 느낌입니다. 우리끼리 살겠다고 백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더니 이제는 그 우리들도 서로 남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갈라지게 하는 마귀의 궤계를 바로 보고, 물리치게 해 달라고, 함께 휩쓸려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선동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회개하며 바로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중심을 잃은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중국과 미국의 눈치도 보아야 하는데 내란까지 겹쳐 있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을 생각하게 합니다.
백제의 멸망을 생각하게 합니다.
외부의 적이 두터워지고, 내부의 분열이 이어지면 불행과 분노와 외로움, 혹은 절망과 탄식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하나 되기를 원하셨던 겟세마네동산의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언론도 국회도 검찰도 청와대도, 선동당하고 또 다시 선동하는 국민들도 우리를 한 나라에서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때입니다.

분열의 끝은 자멸입니다.
모래는 아무리 많아봐야 모래입니다. 결코 건물을 세울 수 없습니다.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군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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