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먹이는 권사님
물 먹이는 권사님
  • 신상균
  • 승인 2016.09.28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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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주일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과 인사를 나눈다. 맨 마지막에 물컵을 들고 나오던 권사님께서 나를 부른다.

“왜요?” 하고 내게 묻자 권사님 물컵을 내밀면서 내게 말한다.

“목사님, 이거 보이차예요. 몸에 좋은 거니까 다 드세요.”

예배시간마다 권사님은 강대상에 물을 올려 놓으신다. 설교하다가, 찬송하다가, 목이 타면 마시라는 것이다. 그런데 설교를 하다보면 물 마실 시간을 놓칠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물컵의 물을 반도 마시지 못할때가 허다하다. 그럴때마다 권사님은 마치 물에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 것처럼 고민하신다.

‘물의 온도가 맞지 않은 것일까?’

‘물 맛이 문제가 있는 것일까?’

‘물에서 냄새가 나나?’

그리고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최고의 물을 만들어 놓으신다.

여름에는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만들고, 겨울에는 따듯하게 해서 먹을 때 차지 않게 만드신다. 이번에는 나의 건강을 생각해서 특별히 보이차를 준비해 놓으신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물을 제대로 마시지 않았으니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래서 성도들에게 인사하는 나를 끝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 물을 다 마시라는 것이었다.

나는 권사님이 내미시는 물컵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아니, 권사님의 정성을 마셨다.

새벽에 예배를 드린다. 역시 새벽에도 다른 권사님이 물을 올려 놓으신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에서 냄새가 났다. 인삼향이 난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냉수를 한컵씩 마시는 버릇이 있기에, 새벽에 물을 잘 안먹었다. 그런데 그 향을 느끼는 순간 안 마실 수가 없었다.

권사님이 얼마나 노심초사 했을까? 그 순간 나는 그 물을 마셨다. 아니 권사님의 정성을 마셨다.

성도들은 목사에게 지극히 정성을 다한다. 말은 못하고, 그때 그때마다 고민한다. 그래서 집에서 물을 끓이고, 그 물을 가지고 온다. 워낙 물맛이 까다로운 목사이기에 입맛을 맞추느라고 고생한다. 그러다보니 웬만한 정성 아니고는 강대상에 물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

권사님이 날 불러 세우지 않았다면 나는 그것도 모르는 지냈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마시기 싫으면 안 마셨을 것이다. 그런데 권사님들은 어떻게라도 마시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을 알게 되었다.

권사님들의 물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권사님들이 나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정성껏 준비하듯, 나도 생명의 물인 말씀을 먹이기 위해 정성껏 준비했던가?

그냥 억지로 마시라고 했던 적은 없었는가? 물 맛이 안좋은데도 믿고 먹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겨울에는 찬물을 가져다 놓고, 여름에는 뜨거운 물을 갖다주면서도 먹는 것이 몸에 좋다고 강짜는 부리지 않았던가? 과연 나는 권사님들의 정성스런 물을 마실 만큼 설교를 했는가?

그 이후 나는 새로운 변화를 겪었다. 설교를 마치고 물을 찾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온 힘을 다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목이 탈 수 밖에 없었다.

권사님들이 나를 물 먹인 만큼 나도 성도님들에게 물을 먹여야 하겠다. 여름에는 시원한 생수의 말씀을, 겨울에는 따뜻한 생수의 말씀을 먹여, 권사님들이 주시는 물로 나도 건강해지고, 목사가 주는 물로 성도들도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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