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를 계속해서 이루어 나가라(마태복음 22장 8-14절)
성화를 계속해서 이루어 나가라(마태복음 22장 8-14절)
  • 이관수
  • 승인 2016.08.25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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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15주(2016년 8월 28일)

가. 구원의 문은 열려 있다.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9-10절).

본문은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 비유를 통해 예복 입은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쳐주신 말씀입니다. 이 비유는 혼인 잔치를 준비한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초청하기로 되어있던 사람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1-7절).

그래서 임금은 처음 청했던 사람들이 거절하자 종들에게 광장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를 혼인 잔치에 청하도록 명했습니다. 9절에 ‘만나는 대로’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비유는 구원의 문이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또한 10절에 보면 ‘나가’(εξερχομαι)라는 말이 부정과거 분사형으로 쓰여, 하나님의 부르심이 여전히 계속 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는 유대인과 이방인, 의인과 악인 차별 없이 모두에게 미칩니다(마5:45). 바울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라고 하였습니다(딤전2:4). 하나님은 지금도 만민을 구원의 여정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나. 구원의 길에서 한눈팔거나 안주하면 위험하다.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8절)

임금은 처음 초청한 사람들이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라 자부하던 이스라엘에게 주는 경고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여기면서도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천국에 들어오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이 잔치 자리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3절에 보면 혼인 잔치에 오라고 하였는데 청함 받은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했다고 하였습니다. 5절에서는 사람들이 종들의 외침에 돌아보지도 않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기만 했습니다. 심지어 종들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6절).

이 비유를 오늘의 상황에 연결해보면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은혜 받기를 게을리 하는 모습과 같습니다(고후6:1). 곧 진리에 관심 갖기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잃어버리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 남은 경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하신 것은 먼저 신앙생활 했다는 이유가 결코 자랑이 아니라는 경고입니다(마20:16). 구원의 길에서 한눈팔거나 안주해서는 위험합니다.

다. 성화를 계속해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11-12절)

이야기의 절정은 임금이 혼인 잔치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가 예복을 입고 있어야만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본문의 핵심은 결혼 예복을 입고 있어야만 천국 잔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결혼 예복이 무엇을 상징하는 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1절에 ‘옷을 입다’(ενδυω)라는 동사를 보면 완료형 분사 중간태로 쓰였습니다. 이는 옷을 입고 있는 상태가 완벽하고 계속되고 있다는 뜻을 가집니다. 또한 중간태로 쓰인 것은 자신이 옷을 입으려고 부지런히 애를 쓸 때 입혀주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결혼 예복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은 죄 용서함의 칭의가 아니라 구원의 길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성화를 말합니다. 성화는 내 삶에 성령님이 역사하심으로 인격이 성숙해지고 은사의 능력이 나타나는 거룩함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거듭나는 상태입니다(벧전1:23). 바울의 고백처럼 스스로 내 몸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삶입니다(고전9:27).

라. 성화를 이루는 자가 구원의 영광에 이른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13-14절)

예수님은 “청함 받은 자는 많되 택함 입은 자는 적다”는 말씀으로 이 비유의 목적을 밝히셨습니다. 구원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습니다. 하지만 택함에는 명백한 조건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총 6번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는 마지막 심판 때에 천국에 들어가기 합당하지 않은 자들의 결과로써 모두 행함과 관련해서 쓰였습니다. 우리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죄인들을 하나님은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자는 성령을 따라 행하며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십니다(롬8:4).

주님은 우리 모두가 거룩함의 옷을 입고 구원의 영광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바울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성화의 삶을 명했습니다(롬13:14). 사도 요한 역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는다”고 선포했습니다(계19:8). 성도의 소망은 주님 앞에 서는 날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인정받고 구원의 영광에 이르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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