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출퇴근이 따로 없는 엠뷸런스?
목사는 출퇴근이 따로 없는 엠뷸런스?
  • 민돈원
  • 승인 2016.06.25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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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학부출신 동문 목사님들과의 약속된 모임이 강화에서 점심을 함께 먹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1박2일 일정으로 예정된 모임이었다. 멀리는 전북에서 올라오신 대선배님(59학번)을 비롯하여 몇 몇 분들이 모여 저녁식사까지 한 후 펜션에서 1박을 하도록 예약해 놓았다. 총무를 맡은 나로서는 이 모임을 위해 끝까지 섬기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성도들 중에 중한 수술을 한 두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도중에 양해를 구하고 저녁 8시가 넘어 강화에서 서울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권사님의 젊은 며느리가 그날 수술한 후 입원해 있기에 위로 겸 기도심방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접기도를 따라서 하게 한 후 간절히 기도했다. 차분히 따라서 하는 그 마음만큼은 편한 듯 느껴졌다.

잠시 담소를 마친 후 이제 다음 방문지인 강남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역시 중한 수술 후 입원해 있는 이곳은 성도의 남편이 있는 곳이기에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도착하고 보니 밤 11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다. 잠을 자고 있지 않아 상태를 물은 후 예수님 영접하는 기도를 따라 하도록 했다. 마음이 무겁고 고통스러울 텐데도 얼굴은 의외로 편안해 보였다.

이들 심방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남은 12시 30분이다. ‘아! 목사는 출퇴근시간이 따로 없구나!’ 속으로 읊조리게 되었다. 시간은 늦은 밤이었지만 그나마 두 성도 가족을 심방하고 왔다는 마음에 도리어 가벼웠다. 이처럼 목사의 생활은 출근시간이 따로 규정 돼있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아울러 퇴근 시간은 더더구나 찾기 힘들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나 여느 직장인처럼 출근시간 안되어 전화 안 받고 아직 출근시간 아니라고 하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동시에 퇴근하면 사무실 전화는 아무리 해봐야 내일 출근시간이후 오라고 할 뿐 묵묵부답이다. 물론 병원에 한해 응급실이 마련되어 급한 환자정도는 수가를 더 주고라도 임시조치를 받을 수 있긴 하나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목사는 밤이든 새벽이든 국내 먼 곳에 가 있든 심지어 해외에 가 있든 급한 경우라면 비행기타고라도 달려와야 하는 직업이다. 마치 병원 엠블런스(ambulance)
와 같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부르면 즉시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선진문화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여 사전 예약을 한 후 방문하는 것이 예의이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예 만나지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 교회의 경우 전통적인 개념은 성도에게 목사는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어느 때든지 임의대로 부르고 전화하고 찾는 그 시간이 만나는 시간이요 있어야만 하는 시간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런 모습은 신앙교육의 부재에서 온 교회의 잘못된 관행이다. 실제 자기가 아무 말도 없이 필요에 따라 찾아와 그 시간에 출타한 목회자가 없다고 원망하는 사람도 접해 보았다.

예수님 믿으면 바뀌어져야 하는 삶의 스타일(Life style)을 평소 교회에서 느끼는 몇가지만 소개해 본다. 먼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방문시 미리 상대방의 시간을 물을 줄 아는 자세,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살릴 줄 아는 마음, 지도자를 존중할 줄 아는 마음, 자녀들 앞에서 남을 비난하지 않고 높일 줄 아는 너그러움, 돈, 몸, 건강, 직장, 자녀 등에 대해 내가 주인이 아닌 청지기의식, 등이다.

비록 출퇴근이 따로 없는 엠블런스 같은 목사라 할지라도 성도가 목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관계에서 오는 시도 때도 없는 철없는 요청일지라도 목회자에겐 다소 자기 생활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무엇보다 보람이 있는 일이라면 힘들여도 힘이 안 든다. 사랑하면 돈이 들어도 아깝지 않다. 사랑하면 힘들여도 힘이 안 든다. 목회가 세상 직업처럼 돈이 되는 일이어서 하는 건 삯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목회자를 하찮게 여기면 잘못하면 천덕꾸러기 믿음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도가 고액 연봉이 아닐지라도 우러나온 마음으로나마 목회자의 몸값을 프로구단의 어느 유명선수나 감독의 몸값보다 높이 여기는 고급매너의 자세를 가지고 섬길 때 목회자는 그 사랑에 감복하여 함께 상승효과로써 나타나되 수 십 수 백 배의 창조적인 영적 에너지가 품어 나와 그 축복을 고스란히 그런 성도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가 목회 현장에서 계속 연구진행중인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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