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 조박사
  • 승인 2016.06.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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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의 문제는 리더십 부재의 결과이다

감리교의 문제는 리더십 부재의 결과이다."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미국의 33대 헨리 투루먼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성공적으로 마친 지도자로 역사에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그가 그런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리더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자인지에 대한 분명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그의 책상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팻말이 있었다고 한다.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buck 란 포커게임에서 공정하게 딜러의 순번을 결정하기 위해 사용한 'buckhorn knife'에서 나왔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다. 손잡이가 사슴뿔로 된 칼을 다음 딜러에게 넘겨주는 것(passing the buck)이 곧 책임과 의무를 전가한다는 관용어로 굳어졌고, 이에 따라 숫사슴 혹은 1달러를 의미했던 buck에 책임이라는 뜻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대통령직 승계 때 보잘 것 없는 출신배경으로 비웃음을 샀던 트루먼은 이 좌우명 덕분인지 원폭 투하, 한국전 참전, 베를린 공수 등 중대 결단을 내리며 세계에 영향을 준 지도자가 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의 문제가 생겨도 그 결과는 교장선생님이 책임을 진다. 하다못해 30여명 밖에 안 되는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문제가 생겨도 원장이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 노릇이다. 군대에서 대대급이나, 연대급에서 문제가 생기면 사단장이 옷을 벗으면서 책임을 진다. 일개 작은 교회에서 임원들이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도 대외적으로는 모든 책임을 담임목사가 지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우리 감리교회나 감신대나 교회에는 이렇게 책임을 지는 지도자가 보이지를 않는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감리교회와 감신대의 지도자의 리더십 부재의 결과이다.

먼저 감리교회의 상황을 살펴보자, 수년전 감리교회에 은급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은급에 목회 이후 삶에 대하여 한 가닥 희망을 두고 목회했던 저 수 많은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좌절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문제에 대하여 아직도 누군가가 책임졌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당시의 감독회장을 비롯한 결정권자들은 지금까지도 묵묵부답이다. 감리교회가 잃어버린 10년의 치욕스런 기간을 보내면서 발생한 기독교 타임즈의 문제도 또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역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선교연회에서 행정이 마비되어도 그 일에 대하여 누구도 “내 책임이요” 하는 분이 없다. 교회에서 담임목사나 부목사가 성추행을 한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도 그저 다른 교회로 옮겨가면 끝이다.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니, 가는 곳마다 똑같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감신대의 문제도 감리교회와 닮은 꼴이다. 감리교회가 10여년을 감독후보 문제로 분쟁하면서 이미지를 추락시키며 세월을 보내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그 바통을 감신대가 이어받아 연일 교수회, 교수평의로 나누어져 싸우고, 이제는 총장 선출문제로, 거기다가 성추행문제로 막장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리더십의 눈으로 본다면, 감신대의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총장이 책임을 지지 않는데서 일어난 일이다.

문제의 발단은 어떻게 된 것인지 다 알려져 있으니 더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거룩한 신학교에서 이사장이 학생들을 고소하는 상황에서 총장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리더십을 갖춘 총장이라면, 이사장과 학생이 고소 고발하고, 투쟁하는 현장에서 당연히 총장직을 걸고 화해를 시키고 사건을 해결해야 했을 것이다. 적어도 금식을 하면서 함께 문제를 풀려고 애써야 했다. 도저히 상대방들이 자기주장을 하면서 화해가 안 된다면 초개와 같이 총장직을 던지면서라도 책임을 지는 자세가 되어야 했었다.

어쨌든지 학생들이 고소당하는 학교 현장의 마지막 결정권자, 책임자는 총장이기 때문이다. 교수협의회, 교수평의회로 나누어진 교수 사회 문제도 총장이 직을 걸고 화해와 새로운 비전을 함께 나누는 일을 했었더라면 내부적인 문제로 잠시 소란스러움으로 끝났을 것이다. 총장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이사장과 이사의 결정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라면, 총장을 뽑을 필요가 없지 않는가? 또 그런 총장직이라면 굳이 또 하려고 도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런데 현 총장은 또 총장 후보로 도전을 하였다. 또 총장과 더불어 책임자인 이사장과 이사들도 아직도 네 편 내 편으로 나뉘어 이사회을 마비시키고 있으면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만약에 모든 것이 잘 못되어 교육부 감사로 간다면 그 수치는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감신대는 지금 총장을 뽑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표절과 횡령의혹, 성추행 소문이 분분한 이들 중에서 총장을 뽑은들 리더십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겠는가? 사실, 이번에 취임하는 감신대 총장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장을 하게 될 것이다. 학생들의 수준 저하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감리교회의 감독과 감독회장과 더불어 어떻게 하면 인구감소와 기독교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시대에 질 좋은 학생을 뽑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2018년 신학대학원 통합을 이루어내는 교단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추진해야 하는 역할이 기다리고 있다. 신학교의 총장은 인품과 인격으로 추앙을 받는 지도자이든지, 학문적인 독창성과 우월성을 가진 학자이든지, 아니면 철저한 행정가나 경영자가 되어 개혁을 이루어 내든지 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이들을 향해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시옵소서! 하시면서 인류의 모든 죄를 당신이 책임을 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나? 감리교회의 감독회장이나 감독, 총장이나 이사장, 이사는 취임하기 전에 먼저 리더는 책임지는 자임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감리교의 개혁은 감독회장이든, 감독이든, 이사장이든, 총장이든, 내 결정에 내가 책임을 진다는 분명한 생각과 의지를 가진 사람을 뽑는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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