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예수의 형제 야고보(약 2:14~26)
52. 예수의 형제 야고보(약 2:14~26)
  • 주성호
  • 승인 2015.12.29 1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년간 성경의 인물 시리즈 설교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마치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자신들을 깨우치는 시간들이었다. 하나님의 두려워하지 않은 자들의 말로는 어떠했는지 알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산 자가 고난 가운데서도 어떠한 축복을 받고 살았는지도 깨달았다. 오늘 인물의 설교를 마감하면서 야고보를 통해 주는 교훈을 받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성경엔 세 사람의 야고보가 있는데
① 예수의 제자 중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②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으며
③ 오늘 본문의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형제였다.
야고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많지 않다. 그는 형인 예수와 한집에 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을 목격하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한 능력을 받은 후 그의 신앙이 급성장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믿음과 행위를 연관시키며 의로운 삶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저술하기도 했다.

첫째: 예수의 형제 야고보

1) 야고보의 가족(마 13:55)
야고보의 아버지는 나사렛에 사는 요셉으로 경건한 신앙을 가진 자이며 의로운 사람이면서 이해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마 1: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당시 유대인들의 법은 정혼한 여인이 동거하기 전에 아이를 갖는 것은 부정한 것이며 사형에 처해도 되기 때문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소문내지 않고 마리아와의 정혼을 파혼코자 했다.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떤 여인이었는가? 눅1:45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마리아는 부유한 집안의 소생도 아니었고 명문 집안의 출신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을 진실되이 믿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여인이었다.
지난주간 모 신문에(국민일보 22면에) '성탄절이 되면 수천명이 인사하러 다녀갈 만도 했는데'라고 전제하고, 과거 전직 "세 대통령의 부인들" 이라는 제목에 사건과 함께 세 밑 형편을 기록했다. 최전 대통령 부인 홍기씨는 거동이 불편하여 휠체어 의지하고 1주일에 한 번 한방치료 받던 것도 "외출 금지령"이 내려졌다. 이순자씨는 전씨 단식에 백담사 행, 그러나 한 주간 기도 작정했다가 나흘 만에 남편이 병원에 이송됐다는 소식에 옷가지도 챙기지 못하고 법복 차림의 초췌한 모습으로 귀가했으나 "안절부절." 김옥숙씨는 비자금 사건 후 두 달이 넘도록 거의 안방에서조차 나오지 않는 "두문불출." 더구나 지난 18일 남편인 노태우씨가 재판정에 선 이후 신문, TV도 보지 않고 방문객조차 꺼리고 있다고 한다. 한때는 남편 잘 만나서 여자들의 선호의 대상이었던 그들이 요즈음엔 하나같이 남편을 잘못 만나서...... 남편에 의해서 행복이 좌우된다고 볼 때, 여자들의 입장에선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세상에서의 평가 방법이요 하나님께 인정받느냐 하는 것이 보다 근원적인 것임을 성도들은 알아야 한다.
마리아는 세상에서의 조건은 못 갖추었어도 성모 되기에 인정된 신앙과 인격을 겸비한 신앙의 여인이었다.
그리고 야고보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형으로 하여 요셉, 시몬, 유다와 누이들이 있었다(마 13:55~56). 아버지 요셉의 직업이 목수였으므로 예수와 그 형제들은 평상시 그 일을 도우며 평범한 생활을 한 가정으로 보인다. 가족들은 예수께서 전도 활동을 하실 때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집안일을 돕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에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부터 신실한 신앙의 가족들이 되었는데 야고보도 예외는 아니었다.

2) 야고보의 생애(마 13:53~58; 요 7:3~4)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으로 한 집에서 오래 동안 형이라고 부르며 살았고 누구보다 예수님을 가장 많이 알고 있었으나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가족들은 물론 나사렛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배척하므로 예수님은 선지자는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까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환경의 좋고 나쁨에 달려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목사나 장로의 아들 딸 이라고 신앙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앙적인 배경 때문에 회의와 반감이 있을 수도 있다. 롬2:17~24에 보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특권의식과 우월감이 대단했으나 오히려 그들의 신앙은 이방인만도 못한 것을 바울은 지적하고 있다.
예수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의 경우 예수가 살아있는 동안은 믿지도 따라다니지도 않았으나, 부활하신 주를 본 후에 믿을 뿐만 아니라 오순절 성경 강림을 대망하여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므로 성령 충만한 능력을 받아 주를 위해 헌신하는 귀한 종이 되었다.

둘째: 신앙의 지도자 야고보

1)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행15:22~35)
세상에 흔히 있는 일 가운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우 존경과 칭찬을 받는 사람이 자기 가정의 식구들에게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예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그 형제들이 믿지 않았다.
예수께서 12제자를 택하고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쁠 때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3:21).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들이......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 대로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 3:31~35절). 오죽 답답하면 이 같은 말씀을 하셨겠는가?
빌립의 전도를 받은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라고 반문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목수의 일을 하였고, 멸시 당한 나사렛 출신이므로 가족들마저도 인정하지도 않았으니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야고보의 경우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후 예수의 형제 중 두드러지게 부상함을 볼 수 있다. 예수의 친동생이라는 그 위치 때문에 평범한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자신도 노력한 근거를 볼 수 있다. 부활을 목격 한 후 마가의 다락방에 제자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게 되었고 성령 충만의 능력을 받음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정확히 말하면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유대인들에게 큰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할례를 받아야만이 구원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제자들의 전도로 파문이 일어나므로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회의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때에 야고보는 총회의장으로서 바울을 위시로 한 소수가 할례가 구원과 상관없다는 주장을 했을 때 의장 야고보는 그들의 주장을 옳게 여기고 다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기초한 결론을 내림으로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과시했고 뿐만 아니라 그 같은 내용의 공문을 작성해 안디옥 교회에 보냄으로 이방인들을 위로하며 격려했다.

2) 야고보서의 저자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서두에 보면(1:1) 야고보는 스스로 자기를 가리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하면서 편지를 보내는 대상을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라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 성도들은 세속 정권 즉 로마의 지배 하에서 핍박을 받을 뿐 아니라 유대교로부터는 많은 핍박을 받고 있었으므로 당시 성도들은 팔레스틴 지역을 떠나 흩어져 살고 있었다. 특히 유대인들은 죽은 전통의 자랑과 선민의식을 가지고 우월감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임을 강조하며 의로운 생활을 강조했다.
신앙이란 예수님을 영접하는 마음의 행위로 의에 이르지만,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신앙의 표현은 반드시 삶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며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랑을 해도 이론이나 말로만의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실천하는 생활로 이어져 결실케 하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됨을 알아야 한다.
당시 분위기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순교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을 때 야고보는 믿음에 생활에 구체화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오늘 우리의 믿음도 새해를 맞아 구체화 되는 각오가 있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