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최초의 순교, 스데반(행 7:54~60)
47. 최초의 순교, 스데반(행 7:54~60)
  • 주성호
  • 승인 2015.11.24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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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복음증거로 예루살렘 교회가 이룩되고 갑자기 부흥되므로 수천 명의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으므로. 교회에서 펼치는 구제사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7명의 집사를 선택할 때 그 중의 한 명이 스데반이었다. 스데반은 이방 태생의 헬라파 유대인으로 가정 배경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없으나 평판 높은 상류 계급 출신으로 집사의 조건을 갖춘 좋은 일꾼이었다.
예수의 십자가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에 의해 복음이 급속하게 확산되자, 모세의 율법과 전통을 생명처럼 여기던 유대인들에 의해 핍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던 때,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스데반이 회개를 촉구하며 말씀을 증거 하므로 이에 분노한 자제심을 잃은 군중들이 흥분하여 스데반에게 돌을 던져 잔인하게 죽이고 만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면서 영광스런 기독교 역사에 첫 순교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첫째: 성령이 충만한 사람(행 7:54~60)

1) 믿음과 성령의 충만(행 6:5~8)
믿음(pivsti")은 설득하다......와 친분을 가지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떤 것의 진실성에 대한 기대와 확신을 뜻한다.
이 세상은 어쩌면 믿음의 관계로 가득 차 있다. 실상 믿음이 없으면 잠시라도 살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세계는 믿음의 관계가 점점 형편없게 되어가고 있다. 부부지간에도 신뢰감이 희박해져 가고 있다. 국민들이 대통령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한다. 검찰이 기업 수뇌들을 줄줄이 불러들여도 성역 없는 수사를 하고 있다고는 믿지 않고 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확신을 가리키는 전문용어로 믿음이 사용되고 있다. 믿음으로 구원도 받고 믿음으로 영생도 받는다. 본문의 스데반은 믿음이 강한 자로 인정되어 집사 직분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한 자였다. 성령은 공기의 움직임, 비물질적 실체, 또는 영혼을 뜻하는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으로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집사였다. 성령은(pneu'ma) 육체와 구분된 것으로서의 영혼이 아니라 인간의 전 존재를 결정짓는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영혼을 가리킨다,
오늘 본문의 스데반은 위의 모든 것을 갖춤으로 7집사 중에서도 특출했고, 믿음과 성령의 충만으로 기사와 표적까지 행하였다. 성령의 충만한 능력까지 받은 스데반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서 상식을 초월하는 놀라운 신유의 역사도 행사하였다. 지혜와 믿음의 충만함이 인격적인 면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라면 권능은 성령의 은사적인 면에서 나타난다. 과연 스데반은 놀라운 평신도 사역자요 주의 종으로도 손색없는 귀한 종이었다.

2) 지혜와 성령으로 증거(행 6:9~10)
스데반이 기사와 표적을 행하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때 구약의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증거하다 겪었던 것 같이, 스데반도 여러 곳에서 모인 사람들과 변론을 하게 되었는데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 예수 당시에도 대적자들이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씌웠는데 스데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현상은 악이 득세하는 이 세상에서 주의 종들이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겪는 핍박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과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면서 압도당해 사람들이 기이히 여기며 믿었듯이, 스데반 집사 또한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복음 증거로 인하여 대적자들이 변론을 통해서 이길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주의 종을 통해 증거 되어지는 복음은 반박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증거 되었다.

둘째: 믿음에 의한 최초의 순교자

1) 하늘의 소망을 간직함(행 7:54~56)
예루살렘을 중심 한 초대교회의 부흥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열도를 더해갔고 많은 교민들이 모이곤 했다. 이때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스데반의 활동은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사방에서 모인 사람들과 회당에서 변론할 때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무리를 충동하여 스데반을 공회로 잡아오게 했다.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6:11~13)하는 말을 했다고 거짓 증인을 세워 증거하고 곤경에 처하게 했는데도,공회에 앉은 사람들이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6:15)같이 빛났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7장에서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대적자들이 스데반을 향하여 찔린 마음으로 살기등등하여 이를 갈 때에도 스데반은 죽음을 앞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하늘에 계신 주를 바라보면서 감격과 기쁨을 표현했다(7:54).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빛나는 얼굴빛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생명과 진리의 말씀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생명력 넘치는 말씀으로 무장된 사람에게는 어떤 험악한 상황이 전개되어도 전혀 장애를 받지 않고 목숨을 걸고 담대해짐을 보게 된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절대 평안과 신령한 기쁨을 허락해 주신다.

2) 최초의 순교자(행 7:59~60)
스데반은 이를 갈고 있는 유대인을 향해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7:56)고 말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큰 소리 지르며 귀를 막고 성 밖으로 스데반을 끌어내어 돌로 쳤다. 이 때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라고 기도하며 순교 당하였다. 스데반의 이러한 기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아버지께 드린 기도와 같은 내용이다. 만약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어떠한 모습으로 맞이할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십자가상의 칠언은 그를 따르는 주의 종들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이에 대한 양편의 강도들의 반응에서도 인간들의 반응을 시사해 준다. 한편 강도는 예수님을 조롱하며 최후의 발악을 하는 모습이었고. 다른 편의 강도는 믿음으로 자기의 생명을 위탁하므로 예수의 십자가를 중앙에 두고 복음과 저주로 양분되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이 같은 상황은 모든 인간이 누구나 최후에 경험해야 하고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판가름하는 판결을 받게 된다.
어쨌든 스데반은 초대교회의 최대의 순교자로서 값진 죽음을 당하였고 그가 순교할 때 그 자리의 책임자는 후에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선교사명을 훌륭히 수행한 사울이라는 자였다. 아마도 사울이 기독교인들에게 대한 증오심을 가지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대장 노릇을 했어도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 천사의 얼굴 모습으로 죽이는 자들의 죄의 용서를 비는 장면에서는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 후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을 결박하기 위해 가는 도상에서의 경험에서 주의 종으로 탈바꿈된 과정에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된다.
스데반의 순교의 피는 복음의 열매가 맺혀지는 밑거름이 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독교 역사, 아니 우리나라 선교역사를 보아도 신앙의 선조들의 생명을 내건 복음의 열정과 순교들이 오늘의 부흥을 가져온 밑거름이 되었다. 스데반으로부터 시작된 순교자들의 생명을 건 진정한 헌신은 복음이 만방에 증거되어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현대는 스데반이 살던 시대와 같은 핍박의 시대는 아니지만 악의 도전은 시험과 유혹으로 충만해 있으므로 스데반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헌신하며 충성하는 주의 종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너무 안일에 빠지고 어려움을 극복할 능력을 상실한 종의 모습을 자책해야 한다. 목사나 평신도도 마찬가진데 스데반과 같은 복음의 열정으로 믿음, 성령 충만, 지혜로운 말씀으로 무장하여 오늘을 극복하는 종의 자세를 회복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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