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주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마 26:14~16, 24)
43. 주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마 26:14~16, 24)
  • 주성호
  • 승인 2015.10.27 07: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다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흔히 사용된 이름으로 '하나님을 찬양'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예수와 함께 활동했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가룟 유다라 함은 가룟이라는 지방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는 시몬의 아들로 다른 제자들이 비교적 농어촌 출신으로 무학자들이 많았지만, 가룟 유다는 예루살렘 남단 도시 출신으로 교육도 받은 지식인으로 추측된다. 제자들의 돈궤를 맡아 회계를 본 것으로 보아 계산에도 밝았던 것 같다.
그러나 침식을 주님과 같이하고 때로는 전도 활동에도 가담했는데도 예수님을 만인을 죄의 종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오신 종교적 메시아로 믿지 못하였다. 그에게 실망을 안겨주게 된 뒷날, 즉 주님께서 거듭 수난의 사실을 말씀하실 때에, 주님을 배반할 뿐 아니라 악한들에게 넘겨줄 계략까지 꾸몄다. 그리하여 가룟 유다는 오명의 대명사로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배신자가 되었다.

첫째: 배신자 가룟 유다

1) 배신의 기회를 엿봄(마 26:14~16)
유다의 이름 앞에 붙어있는 가룟은 그의 출신지명으로(현재의 키르벳 엘 카라데인),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도 또 다른 유다(일명 다대오, 마 10:3)와 구별하기 위해서 붙인 것이다.

왜 제자 중의 하나인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을까? 그 이유가 있다.
첫째로 메시아를 세속적 욕망을 충족시켜 줄 정치적 메시아로 이해하고 그를 따라다니면 언젠가는 세속적 목적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는 가룟 유다만은 아니었고 실은 제자들의 대부분이 그러했다.
둘째로 예수님을 쫓아다닌 목적을 성취할 수 없는데 대한 실망감과 반항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소망을 가졌던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마도 가룟 유다는 예수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마저 느꼈을 것이다. 3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냈구나 후회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의 범죄는 순간적인 실수가 아니라 처음부터 목적이 잘못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믿는 목적이 잘못된 자는 언제든지 실망하며 배신하게 되어있다.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이며 교회는 왜 나오는가? 세상에서의 어떤 목적을 달성코자 하는 이들은 끝내 발걸음을 돌리게 됨을 경험케 되는 것이 기독교이다.

2) 스승을 배반함(마 10:4: 막 14:44~45)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가 3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고가의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을 때, 그녀의 행위를 비난하면서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어야 했다는 말로 마리아의 행위를 비난하자, 사도 요한은 가룟 유다를 가리켜 그는 돈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 가는 도적이라 증거했다(요 12:6).
그 후에 기대했던 예수님에게 크게 실망한 그는 스승을 배반하여 악한들에 넘겨주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넘겨줄 때 예수에게 입을 맞추는 것으로 신호를 삼았다. 입맞춤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인데 가룟 유다에게 있어서는 스승을 배반하는데 시도한 가중한 입맞춤이 되었다.
오늘의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았으면서도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도 배신행위라 할 수 있다. 딤전 6:10을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며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 했다. 예수께서도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을 말씀하시며 재물을 사랑하여 재물의 종이 되는 것을 경계하셨다.

둘째: 비참한 최후

1) 불행한 태어남(마 26:24)
예수께서 천국과 말세에 관한 복음을 말씀하신 뒤에 정확히 유월절이 되기 이틀 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팔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유다가 은 30에 자신을 팔 것을 미리 아시고 하신 말씀이다.
마 26:2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 우리라 하시니라."
마 26:14~16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한말로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30을 달아주거늘. 저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 잡수시기 위해 준비케 하시고, 앉은 자리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하셨다. 이에 제자들이 심히 걱정 하면서 "주여 나이니까" 하고 서로 말하자 이렇게 대답하셨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뻔하였느니라"(마 26:24: 막 14:21)
인자는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라는 말은 이미 이사야가 예언한(사 53장) 그대로 십자가를 지고 죽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하신 것은 가룟 유다를 가리킴인데, 그의 종말이 비참할 것을 아시고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욥 3:3, 10, 11을 보면 비극적인 운명에 처한 사람을 향해 랍비들이 자주 사용했던 속담적 표현이다. 예수께서는 장차 가룟 유다가 처하게 될 모습을 분명히 아셨기에 그를 불쌍히 여겨 그같이 말씀하셨다.
세상에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들이 많다. 아비 없는 자식, 기형아 정박아 등 불행한 상황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사람들을 보고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높은 지위에 앉은 사람 중에도, 많이 배운 사람 중에도, 돈을 많이 가진 사람 중에도 마지막에 비극적인 운명에 처했을 때 해당되는 이들이 제법 많다.

2) 배반자의 최후(마 27:3~8)
주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신에게 돈을 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가 돈을 도로 갖다 주며 자신이 무죄한 자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고 하였으나 거절당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저주를 받을 뿐이었다.
유다는 그 돈을 성소에 던져 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 하고 말았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주님께 사죄 받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행위요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어쨌든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없는 범죄행위를 추가할 뿐이고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였으므로 죄 사함의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고 말았다.
만일 가룟 유다가 베드로와 같이 스스로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고 용서를 구했었더라면 죄 사함의 은혜를 받고 새 삶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후회는 했으나 회개치 않았다. 롬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그리하여 계 20:14~15의 말씀대로 "둘째 사망 곧 불 못에 던지 우리라"고 했는데, 배반자를 향한 합당한 최후의 선고라 본다.
오늘의 스승을 배반하고 자살하고만 지상에서 가장 불행 한 인물을 상고하여 보았다. 이름은 못 남겨도 오명의 대명사는 남기지 말아야 된다는 교훈을 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