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사랑의 사도 요한(요일 3:13~19)
39. 사랑의 사도 요한(요일 3:13~19)
  • 주성호
  • 승인 2015.09.2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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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란 이름은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의 부모는 세베대와 살로메이고(살로메는 예수님의 이모로 보고 있음) 그의 형은 야고보이며, 비교적 부요한 갈릴리 어부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세베대는 종들을 거느리는 부자였고(막 1:16~20) 예수께서 요한의 형제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을 보면 성격이 급했던 모양이다.
요한은 그의 이름이 말해주듯 제자들 중에서도 특별히 사랑을 많이 받은 자로, 대부분의 제자들이 순교했으나 요한은 늙어 쇠약해질 때까지 살아서 사랑만을 외친 제자였다. 그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요한복음, 요한 1, 2, 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다섯 권이다.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것도 위대한 일로서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평생을 충성스러운 사항의 종으로 아름답게 마감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할 수도 있다.

첫째: 사랑 받는 제자

1) 우뢰의 아들(막 3:17)
요한이 그의 형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 바닷가에서 어부로서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형제를 부르셨다. 그 때 배와 아버지를 버려둔 채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는데 매우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실 때 매우 의욕적이고 열정적인 성격 때문에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신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형 야고보와 베드로와 함께 셋은 예수께서 중요한 사역을 수행하실 때마다 동행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서 활동한 제자였다(막 5:37; 9:2~10; 14:33).

2) 사랑 받는 제자(요 19:26: 20:2)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체포 되셨을 때, 평소에 그를 따라다니던 군중들은 더 말할 것 없고 제자들마저 형편없는 몰골이 되었다. 이미 가룟 유다는 배신자가 되었고, 수제자로 자처한 베드로는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주님의 제자임을 극구 부인하면서(세 번이나) 멀리 도망친 상태였으나, 십자가 처형 장소까지 가까이 접근한 자는 오직 사도 요한뿐이었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마리아를 보고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그 곁에 있는 요한을 보고는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친을 모실 것을 부탁하셨다. 육신의 어머니에게 효자로서의 사명을 끝까지 다하시면서, 동생들도 많았으나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고 요한은 그날 이후로 어머니로 평생을 모셨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신뢰하는 자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신다. 작은 일에 충성을 하는 자에게 더욱 큰 것으로 맡기는 법이다. 특별한 일은 아무에게나 맡기는 법이 없다. 충성스럽고 신뢰하는 자에게 해당되는데 당시 그런 대상은 요한뿐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었다가 에베소로 돌아와, 도시안 황제가 죽은 AD66년에,높은 산꼭대기 피신처에서 마리아를 모시고 살았다고 하는 곳에 세워진 요한 교회를 보았다. 이곳은 가톨릭에서는 교황이 가끔 다녀가는 성지로 우리나라 간판도 서 있다.
어느 때나 신앙인은 신뢰할 만큼 의리도 있어야 하고 신의를 지키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믿지 않는 이들 가운데도 의리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되는데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자처하면서 신의를 저버린다면 믿지 않는 자만 못한 경우가 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사는 사람의 많은 세상에서 신앙인은 요한과 같은 신의의 사람이어야 함은 두말할 것 없다.
사실 일순간에 결심과 각오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그것을 평생 간직하며 충성함이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한은 주님과의 약속을 평생 실천한 충성스런 제자였다.

둘째: 사랑의 사도

1) 성경의 저자 요한
요한은 신약성경에 다섯 권이나 그의 저서를 남겼는데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②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함이니라"(요 20:31)고 했다.
신약의 4복음서 중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하는데 주로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같은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이고,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독특성 때문에 제4복음서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외적 사건보다 내적이면서 영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리고 요한 1, 2, 3서에서는 사랑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여러 덕목 중 하나로서가 아니라 신앙의 진리와 계명의 핵심으로 규정하여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성경의 마지막 책이기도 한 요한계시록은 종말론적인 예언서로서 과거, 현재는 물론 주로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예언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요한의 저서가 신약에 없었다면 성서로서의 가치가 덜했을 것이다.

2) 사랑을 선포한 요한(요일 4:16~21)
젊은 날의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께서 그들을 제자로 부르실 때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라는 별명을 붙여주실 정도였는데, 이는 둘 다 성격이 불이나 칼같이 날카로웠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제자로 있을 당시에는 그 성격이 여전했으므로, 복음을 배척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 멸망시키자는 제안을 했는가 하면(눅 9:54~55), 야심도 많아서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 왕이 되신다면 오른편 자리를 달라는 부탁까지 하였다 (마 20:21~22) 그러나 십자가의 경험 이후 다른 별명이 붙었으니 '사랑의 사도'가 된 것이다. 흔히 예수 믿고 은혜를 받아도 성격은 어쩔 수 없다는 말들을 한다. 사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러나 덜 되어서이지 제대로 은혜를 받으면 근본적으로 변화됨을 알아야 한다. 자기 의지로 되는 것 아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십자가의 은총으로 되기 때문이다.
다른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으나 요한만은 마리아와 십자가 밑에까지 갔고 십자가상에서 외치는 주님의 말씀, 또한 그에게 마리아를 부탁하는 말씀을 들었기에 요한은 사랑은 말로만의 추상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천적이어야 한다는 강한 주장을 했다.
요일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일 4:21 "우리가 그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형제를 사랑하느니라."
예수님은 사랑의 근거를 계명에 두었는데, 모세의 10계명을 크게 둘로 나누면 1~4계명은 하나님 사랑이고, 5~10 계명은 이웃사랑이 된다. 예수님을 잘 믿는 생활은 진실과 행함으로 사랑을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비추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과연 사랑의 사람이 되었는가? 사랑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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