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주님의 인도로 가지...
고마워, 주님의 인도로 가지...
  • 김홍술
  • 승인 2015.05.26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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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술 목사와 방인성 목사의 40일 단식현장 그후...(13)

어제 늦은 저녁까지 살피고 귀가한 조 원장이 걱정이 앞서서인지 아침 일찍 도착했다. 절대단식 이틀째 날이라 기운은 급강하였다. 조 원장은 머리맡을 떠나지 않았고 나는 일어나 앉기도 힘겨워 텐트 안에 누워있었다. 일요일 출석하는 교회도 나가지 않고 오늘도 이틀 연이어 종일 우리 두 목사 곁을 지키려는 게 분명했다. 가을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는 우리 천막에는 점점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누워있는 내가 걱정되어서 인지 들여다보고는 말을 붙이지도 발길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방 목사의 40일이 끝나는 날이라 오늘 오후에 공식적인 결단의 모임인 ‘해단예배’를 의논하고 있었다.

건강상 문제로 일찍 은퇴했던 이필완 목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단 걸음에 내 텐트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다혈질이고 순수파인 이목사는 다짜고짜로 ‘야, 이 새끼야 너 죽으려고 작정했냐? 아니 걍 죽는 게 아냐 마~ 응!’ 이마에 땀이 송알송알, 눈알은 튀어나올 마냥 부릅뜨고 침을 튀기며 정겨운 욕을 퍼붓는다. ‘홍술아, 나는 뭐니? 넌 죽으려한다면 나는 뭐냐고?’ 급기야 눈물까지 글썽인다. 이목사는 인터넷 신문 당당뉴스를 창간하고 뜨겁게 한국교회를 향해 일갈하다가, 몸이 상해 소백산 깊은 산골에 묻혀 구사일생의 생명줄
을 이어오고 있다. 낙엽처럼 누워있는 나는 득달하는 이 목사의 성화에 작은 목소리로, ‘필완 형, 미안해. 고마워~ 그냥 기도하면서 가야지...’하며 뒷말을 흐리고 말았다.

거의 매일 단식장을 찾아와 저만치 거리에 있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했던 J 목사가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주 부드러운 톤으로 ‘김 목사님, 진즉 인사 나눴어야 했는데... 나 지승룡이라고 해요. 알고 보니 나와 갑장이고 한데 친구하면 어때?’ 하면서 아주 쿨하게 프로포즈해 왔다. ‘아니, 나 같은 촌놈에게 과분한데요.’하니, ‘친구니깐 편하게 말 놓자고~’ 하면서 더 가까이 다가선다. ‘그래, 그러지...’ 나는 광화문에서 방 목사를 ‘의형’으로 얻은 후 졸지에 친구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간 방 목사와 주변을 통해 그는 기성 목회자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사역자라고 들었었다. 인간에 대한 심층적이고 폭넓은 관계망을 중심으로 자본의 힘에 저항하는 기업을 꿈꾸는 ‘별종’의 목사임을 차차 알게 되었다.

오후 5시로 예정되어있는 ‘해단예배’가 다가오는 모양이다. 이리저리 준비하는 손길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 같다. 방 목사와 나는 이 예배의 의의를 알고 있던 터라 꼭 같이 참석해야 하는데 도저히 일어날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방 목사만 휠체어에 몸을 싣고 참석하기로 했다. ‘형, 미안해. 갔다 와.’ ‘응, 코앞인데 혼자가기가 그러네.’ 방 목사와 나는 어느새 쌍둥이 같은 단짝이 되어서 혼자는 왠지 허전함이 있었다. 이윽고 예배는 시작 되었고 단식장 마당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많은 인파가 꽉 메웠다. 나는 누웠으나 마음과 귀는 마당에 나가 있었다. 그런데 몸은 그렇지만 마음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마당으로 나가겠다고 도움을 청했다. 여러 손길들이 나를 휠체어에 조심스럽게 태우더니 천천히 예배가 진행되는 마당으로 끌어준다. 마침 방 목사의 발언의 시간이었는데 내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마이크를 건넨다. 나는 겨우 인사말만 한마디 하고 다시 되돌아왔다.

이윽고 예배가 마치자 군중들이 우리 텐트 주위에 많이 몰려왔다. 입으로 귀로 내가 물도 끊고 의식이 꺼질 때까지 간다는 소문이 번졌던 모양이다. 나는 얼마 전 방 목사와 주변 몇 명에게 물을 끊고도 일주일 정도는 가다가 의식의 불이 꺼지지 않겠느냐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틀째 날이 저물면서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속으로 며칠 더 갈건 지 자신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조용히 방 목사에게만 이틀만 더 있다가 갈 터이니 형이 먼저 가 있으라고 말해 두기도 했다. 이틀간 계속 한 시간 간격으로 혈압과 당 체크를 마음 조리면서 지켜봐온 조 원장님은,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오늘은 밤 12시까지는 지켜보겠다고 했다.

어둑해 질 무렵 친구 맺은 지 목사가 다시 조용히 다가온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저- 친구야 있잖아, 지금까지 인성형 곁에서 페이스메이커로 뛰었잖아, 이젠 마라톤 종착지 다 왔어. 낼 새벽이면 42.195야. 거기까지 종주하는 거야. 생각해 봐?’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난

‘응, 고마워, 주님의 인도로 가지.’ 라고만 했다. 조 원장은 차차 혈당 지수가 떨어지는 거를 보고 타들어가는 심정인 모양이다. 저녁 6시로 72을 가리키니 다시 링거 수액과 주사를 챙기면서 60대로 내려가면 링거를 맞자고 두 번째 권고한다. 아침 7시에 92로 시작했는데 8시에 84, 그리고 72, 72, 70, 76, 69, 69, 69, 79, 74, 72가 된 거다. 저녁 7시가 되니 기어코 67로 떨어졌다. 괜찮냐고 묻는데 정말 고요하고 편안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고개를 넘어갈 때도 이렇게 평화롭게 넘어갔으면...

일반적으로 저녁으로부터 밤을 지나는 기간이 위험한 고비를 맞이할 수 있기에, 의사로서는 어떻게든 안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하는데 조 원장은 밤 12시에 발길을 뗄 수 있을지... 침착한 표정 안으로 얼마나 타들어 갈까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더 밀려온다. 그리고 조 원장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밤에 더 당이 보충되면서 올라가던데요?’ 하니, ‘아녜요 목사님, 목사님 체중도 15킬로를 넘어 20킬로 가까이 빠졌고 더 이상 당을 만들어 낼 여지가 없을 거 같애요. 외부 보충 없인 위험하죠.’ 하였다. 또다시 옛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2000년을 맞이하던 어느 날 관속에 들어가 무덤에 묻혀 있을 때,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생명의 요동침’을 경험했던 기억이었다. 그래서 ‘조 원장님, 하느님께서 아마 제 온몸 박박 긁어서 맨들어 주실 거애요.’ 하니, 그냥 헛웃음을 지어 보이신다.

그때였다. 아직도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방 목사가 뒤를 돌아보면서 텐트 옆 자락을 약간 젖히며, 천연덕스럽게 ‘자기야! 그냥 내가 모레까지 같이 있을게~ 혼자 두고 나 혼자 가면 뭐해?’ 하지 않는가. ‘아!’ 내 심장이 잠시 멎는 듯한... 그 어느 누가 타당한 이유로 나를 종용해도 꿈쩍하지도 않았는데, 별안간 무너지는 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40일의 광야를 함께 걸어온 동지요 형이 한 이 한마디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말이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아냐, 형! 낼 새벽 그냥 같이 가자!’ 하자, 방 목사는 놀란 듯이 ‘아니, 왜 갑자기...?’ 하며 영문도 모른 채 반문한다. ‘그러게... 형 한마디가 넘 고맙네? 낼 새벽이 42.195도 되구.’ ‘뭔 말이야? 42.195는 뭐구?’ 그러자 몇 명은 박수를 치면서 ‘잘 생각 했다.’느니, ‘고맙다’느니 하면서, 순식간 단식장 주변에 모여 염려와 기도로 함께 해 준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다.

이렇게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분위기지만 여전히 조 원장만은 조금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낼 새벽 갈 거면 이 밤 링거를 맞고 자신도 좀 안심하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런데 혈당이 8시에 69, 9시에 76으로 점차 오르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조 원장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상황이 급변할지 모른다는 의사의 특유한 입장에서 일게다. 10시가 되고 11시 늦은 밤이 되도 천막 안 저쪽에는 수십 명의 신자들이 기도와 성원의 마음을 모으며 밤을 같이 지낼 심산인 것 같다. 10시에 77, 11시에는 87까지나 오르자 조 원장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의아해 한다. 이윽고 난 12시도 못되어 잠들고 말았고 그 밤은 내게는 그대로 멎어버리고 말았다.

깊고 깊은 잠은 정말 하늘 아버지가 주시는 은혜로운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눈꺼풀 문을 스르르 열고 보니 방 목사는 앉아서 웅크리고 기도인지 묵상에 잠겨있다. 내 침낭 재크 열리는 소리에 ‘어, 괜찮아?’ 한다. 나는 모기소리 정도로 ‘응.’ 하자, 방 목사는 재미있었다는 듯 내게 이야기를 한다. ‘자기 말이야. 나 거의 한숨 못 잤어. 혹시 밤에 어떻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보니까 꿈쩍도 않고 숨소리도 안 들리는 거야. 그래서 가까이 가서 손바닥을 코앞에 대 봤다니깐?’ 신난 듯 다시 이야기를 잇는 방 목사는, ‘첨엔 놀랬어! 사람 불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어?’ 하며, 당 체크 한번 해 보잔다. ‘이거 뭐야? 89가 나왔어!’ 방 목사는 신기하고 놀랍다면서 ‘정말 자기 말대로 하느님께서 구석구석 박박 긁으셨던 거야!’ 한다. 우린 마지막 새벽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미명을 이렇게 맞았다. 깊은 밤 고요히 잠든 날 두고 발길 떨어지지 않았을 조 원장과, 지난 밤 그 뒤를 이어 잠 한숨 못자고 지켜봐야 했던 방 목사가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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