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곧 국가이지 않는가!
국민이 곧 국가이지 않는가!
  • 김홍술
  • 승인 2015.05.16 1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홍술 목사와 방인성 목사의 40일 단식현장 그후...(10)

어느 날 누군가 조용히 두고 간 지팡이 두 개가 천막 귀퉁이에 놓여 있었다. 경북 봉화 깊은 시골서 뿌리가 이어진 나무를 불로 휘어 직접 만든 정성이 깃든 멋진 지팡이였다. 어찌 우리 둘이 휘청거리면서 걷는 걸 알고 이런 걸 다 만들어 준걸까. 참으로 색다른 선물에 마음속 여운이 남는다. 화장실 왕래와 운동은 물론 이틀에 한번 꼭 찾는 이른 아침 사우나를 다녀오는데 제격이었다. 9월 중순에 접어드니 아침저녁이 제법 선선하여졌다. 보라색 로만칼라 셔츠 위로 입으라고 누군가가 같은 보라색으로 스웨터를 선물로 사오셨다. 어떤 교회 청년들은 체온도 떨어지는 것까지 섬세히 챙기면서 검정색 재킷을 일찍 잠든 머리맡에 사다놓고 갔는데, 새 깃털처럼 가볍고 편했다. 내복, 속옷과 수건, 목도리, 손에 꼭 쥐고 기도하는 나무십자가, 전기매트, 침낭, 무릎담요 등 갖가지 마음담은 선물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또 일지 노트에 격려, 응원, 연대의 메시지를 남기고 갔다. 모두 하나같이 세월호 아픔과 분노에 함께하고픈 절절한 마음, 쓰러진 김영오씨의 뒤를 이은 우리 두 목사의 40일간 단식에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배어있는 걸음들이었다.

한편, 우리 단식장 천막촌 건너편에는 극성스런 극우파들이 천막을 치고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매일 커다란 확성기로 우리 쪽을 향해 온갖 비난과 모욕적인 언사를 외쳐대었다. 그 중 ‘일베’(일간베스트) 회원들은 간간 우리 쪽 천막촌을 넘보고 침투해 와서 험악한 욕지거리와 시설물 손괴하는 등의 행동을 저지르곤 했다. 그때마다 우리 쪽 진행요원에 의해 경찰에 넘겨지는 모습이 너무 씁쓸하였다. 남북의 심리전을 그대로 옮긴 축소판과 같았다. 어떤 때는 집단적으로 우리 쪽에 와서 치킨파티를 열기도 하고, 어떤 기독교 단체는 확성기를 단 차량을 동원해 광화문 광장을 빙글빙글 돌며 ‘사탄’ 운운하면서 저주의 말을 서슴지 않고 질러댔다. 아, 정말로 대한민국의 막장을 보는 역사의 현장이 아닌가! 세월호가 가져온 국민 분열현상은 지난 66년간의 우리 국가가 정말 국가인가를 묻고, 현 대통령 말대로 ‘국가 대 개조’의 임계점이 찬 게 아닐까!

단식 26일 째날 아침, 제체기가 연발 나오더니 콧물이 점점 뚝뚝 떨어진다. 감기가 오는 증상인 모양인데 약간 난감이었다. 의료진은 다급하게 감기약을 보내왔지만 나는 일단 안 먹기로 했다. 계속 먹던 찬물 생수를 끓여서 뜨겁게 하여 마시고 했더니 다음날 뚝 떨어졌다. 천만 다행이고 감사했다. 나는 매일 진료진이 올 때마다 혈압과 맥박과 혈당 수치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사우나에 갈 때마다 체중도 체크하여 함께 기록에 남겼다. 31일째 되는 날 9월 24일자를 보니 혈압 112~63, 맥박 46, 혈당은 83이었다. 체중은 61.7㎏ 이었는데 단식 전 평소 76㎏ 정도였으니 14㎏ 이상이 빠진 셈이다. 의료진은 평소 체중에 15㎏ 이상 빠지는 것은 위험수위를 넘기는 거라고 하였다. 20일 이상 단식하는 사람이 단식장 내에는 우리 두 목사만 남았기에 상주하는 소방 119 응급팀은 비상이 걸린 모양이다.

사람들이 처음엔 40일 단식 목표로 들어온 방 목사에게 관심을 갖더니 전혀 함께 할 계획에도 없던 내가 ‘페이스메이커’로 자청해 이틀 앞선 단식기간이 30여일이 되자 내게도 관심이 쏠렸다. 그러니까 방 목사의 40일 끝나는 날이 10월 5일인데 나는 그날이 42일째 되는 날이라 함께 마무리하는 게 당연한 듯 묻는 거였다. 그래서 난 내 의식이 유지되는 한 할 거고 의식이 있는 한 어떤 의학적인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말한 이후로 의료진과 주변에서는 긴장과 불안의 분위기가 드리워졌다. 나는 이번 처음 경험하는 효소단식이 이렇게 장기간 가리란 걸 몰랐다. 효소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실히 모르지만 경험상 아주 오래토록 갈 것 같아서, 40일 다음 날부터는 물과 효소와 소금 등 일체의 것을 끊겠다고 하였기에 초긴장을 불러 일으켰다.

안양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미정 원장은 여러 한의사 진료팀원 중 기억에 남는다. 일주일에 두어 번씩 방문해 주는 한 원장은 진료 중 특유한 소탈한 밝은 성격에서인지, 자신이 세월호 이전에는 가족의 행복과 찾아오는 환자들 진료에만 묻혀 사는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고 하였다. 특정 종교와 무관한 무종교인이지만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세상을 좀 더 넓고 깊게보는 안목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리고 억울하고 아파하는 자와 공감하고 봉사하고 정의감을 공유하는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는데 대한 기쁨을 느낀다고 하였다.

특별히 J 목사의 소개로 찾아온 가정의학과 조계성 원장은 신실한 신앙심으로 우리 두 목사에게 성심을 다했다. 조 원장도 세월호 희생자 학생과 같은 또래의 엄마의 심정으로서 마음깊이 공감하며 기도하던 차에, 이렇게 연결되어 광화문 광장까지 나와 두 목사님을 뵈올 줄 몰랐다고 하였다. 장기단식자를 환자 아닌 환자로 처음이라면서 저녁때는 한의사들이 오니 매일 아침 출근길에 들르겠다고 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 주었다. 조 원장은 매일 검진뿐 아니라 간절한 기도로도 함께했고, 두 번씩이나 혈액과 소변을 채취를 해서 종합검사 데이터를 체크해 주었다.

토요일 밤이 깊어간다. 광화문 단식장엔 주말의 붐비던 저녁문화제도 마치고, 늦은 밤 어둠속에 빌딩 불빛들과 세종로를 질주하는 차들만 요란하다. 오랫동안 광화문 광장 충무공 동상아래 자리를 잡고 있었건만, 정작 충무공 이순신에 대해 그저 그렇게 생각 없이 하루하루 보냈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서울의 달이 긴 칼에 걸려있어 동상 충무공이지만 쳐다보고 마음의 주파수를 맞춰본다. ‘명량’ 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졌듯이 공은 선조 왕으로부터 ‘백의종군’이라는 치욕을 안고서도,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라고 한 말이 울려오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충성’은 국가를 위해 있는 것이지 국민을 위해 의미가 있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국민이 곧 국가이지 않는가! 특히나 여기서 국민은 더 아파하고 슬퍼하는 소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영토나 시스템은 껍질이지 않는가! 물론 껍데기도 알맹이를 위해 중요하고 필수 요소다. 허나 영혼 없는 몸이 그러하듯 국민에 앞설 수는 없다. 마침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을 때 온 국민은 그의 리더십에 감동했다. 그의 눈길과 가슴 그리고 손길과 발길에서 우리는 열광하고 위로를 받았다. 한편 부끄러웠다. 죽음까지 불사하고 책임감과 희생정신으로 국민을 챙기는 오늘의 이순신이 그립다. 아니, 이젠 누군가가 이순신이 되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