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김영오씨가 쓰러졌다...
세월호 1주기, 김영오씨가 쓰러졌다...
  • 김홍술
  • 승인 2015.04.23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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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술 목사와 방인성 목사의 40일 단식현장 그후...(2)

광주의 한 절친한 동지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영오씨가 쓰러졌는데 어떻게 목사들이라도 올라가 몸을 던질 곳을 찾자며 12명의 자원자를 모은다는 거다. 나는 흔쾌히 응낙했다. 주일 다음날 8월 25일 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웬 늦여름 장대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와중에 대충 짐을 꾸려 나섰다. 광화문 국민 단식장에 가는 걸음이라 일단 일주일 정도나 늦어도 2주간 쯤 단식할 각오로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엔 멀쩡한 날씨로 뜨거운 햇빛에 숨이 컥컥 막혔고, 도착한 광화문 국민 단식장 천막촌은 노랑색 물결과 사람들로 북적였다. 천막 부스마다 연극 영화인방, 정의당방, 작가모임방, 학부모 모임방, 종교인방 등 다방면의 소속 단체별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가 찾은 곳은 종교인 부스였는데 세 개의 천막을 길게 터서 기독교, 불교, 원불교가 함께 쓰고 있었다. 천주교 측은 정의구현사제단 중심으로 아예 독립적으로 세종대왕 좌상 앞으로 천막을 따로 치고 있었고, 통합진보당도 천막촌과 천주교 측 중간 쯤 지하 내려가는 곳 입구에 자리를 잡고 천막 없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청주의 김창규 목사의 환영을 받으며 붙박이 최헌국 목사 등 몇몇 목사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조금 있으니 광주의 김희용 목사, 나주의 김병균 목사, 강진의 홍요한 목사가 도착하였고, 근처와 서울의 양재성, 이승철, 정태효, 조헌정, 이적, 김희헌 목사와 원로 조화순 목사까지 12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 모였다. ‘12사도 행동단’을 제안한 김창규 목사는 6월 항쟁 때의 국민적 항쟁을 일으키기 위해 작은 밑불이 되자고 제안했고, ‘기장’ 교단본부에서 보라색 로만칼라 셔츠를 12벌 준비해 왔다.

바로 옆 부스에는 문재인 의원이 김영오씨의 단식을 만류하러 찾아 왔다가 단식에 합류하며 일 주일여를, 다른 정청래 의원도 문 의원보다 이틀 뒤인 21일부터 단식의 대열에 벌써 참여하고 있었다. 또 우리 부스의 한 쪽 구석에는 팔순의 원로이신 전 의원 김병오 선생도 역시 3일째 앞서서 진행하고 계셨다. 이곳 국민 단식장 천막촌에는 주로 하루단식이 많았고, 3일, 5일 등 스스로 일정을 정하여 가슴에 몇 일째 날 표시를 달고 다녔다. 이렇게 많은 단기단식 참여자들 중 장기단식 참여자가 간간 부스마다 몇 명씩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오전 방인성 목사가 우리 천막으로 들어왔다. 방 목사는 40일간 단식을 작정하고 나왔다고 하였다. 개인적이라기보다 이미 세월호 관련 대책기구의 중심에서 활동한 바 있는 방 목사는, 김영오씨 쓰러진 이후 대신 할 종단별 장기단식 논의가 있었는데 타 종단에는 자원자가 없었고 기독교 측에서 불쑥 자원하여 오늘 들어오게 되었다는 거였다. 방 목사는 나와는 구 면식이 있어 친근한 관계였지만 김창규 목사는 첫 인사를 나눴다. 방 목사도 김 목사의 권유에 함께 보라색 로만칼라 셔츠를 입기로 했다.

우리 12사도 행동단은 첫 주간이 지나면서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개별화되어 갔다. 주말쯤 되니 하나 둘 자신의 교회로 돌아가고 먼 지방인 관계로 매 주일을 지내고 다시 오는 것이 간단치 않는 사정이었다. 명색이 자원 단장격인 김창규 목사만 열정과 책임감에 주말 청주 시무교회로 갔다가 다음날이면 서둘러 올라왔다. 우리가 공동행동을 하기로 해 움직인 건 동부시립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영오씨 위로방문 이었고, 팽목항에서 과로로 쓰러진 문명수 목사를 문병 차 현대아산 병원에 방문한 일이었다.

우리 종교인 천막 부스에는 기독교 측 2,0 목회자 모임의 목사들 몇몇이 자주 드나들었고, 내가 주로 함께 활동하는 에큐메니칼 목회자들도 몇몇 찾아왔다. 기독교 측은 다소 많은 편인데 비해 불교 측과 원불교는 좀 뜸하였다. 그런데 한 주간 정도 지나자 원불교 측은 조직적으로 교무들이 순번으로 참가하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천도교도 적혀 있었지만 거의 볼 수 없었다. 8월이 다 기울었지만 여름 불볕더위 위세는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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