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처 목사. 보빙사면담 후 한국선교추진(5)
가우처 목사. 보빙사면담 후 한국선교추진(5)
  • 이길극
  • 승인 2014.12.2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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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초목사 김창식 김기범 기념예배당 건립추진 우표

조선정부는 미국과 1882년 4월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라 민영익을 비롯한 11명의 최초외교사절단인 보빙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하였다. 사절단은 1883년 7월 제물포항을 출발하여 태평양을 횡단하고 9월 초 샌프란시스코 도착. 미 동서대륙간 철도로 워싱턴으로 가던 중에 워싱턴 볼티모어 감리교회 담임목사 가우처(John F. Goucher 1845-1922)를 만나게 된다. 가우처 목사는 기차를 같이 타고 가던 중 사절단의 한 사람이었던 로엘의 통역으로 민영익과 대화를 나눈 뒤에 조선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아직 조선에 개신교회 선교사가 파송되어 있지 않음도 알게 되었다. 9월 18일 고종 임금의 보빙사절단과 미국 대통령 체스터 앨런 아더와 국서 교환이 있었고 보빙사절단이 40일간 미국에 머물면서 산업 경제 문화를 시찰하게 된다. 한편 보빙사절단을 만났던 가우처는 11월 6일 미국 감리회 총회 선교위원회(The General Missionary Committee) 해외선교부에 “만일 은둔국인 한국에 선교사업의 정책을 세울 수 있다면 한국에서의 선교사업은 영구히 확립될 것이다.”라는 건의와 선교기금 2,000달러를 기탁하고 조선선교를 착수를 요청하게 된다. 1주일 후 3000달러를 다시 선교부에 송금하였고 선교위원회의 승인이 지연되자 1884년 1월 가우처는 일본주재 선교사인 맥클레이 목사에게 조선의 선교지 개척 가능성 여부를 타진해보도록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며 조선 선교를 추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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