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요 12:12~19)
38.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요 12:12~19)
  • 주성호
  • 승인 2014.09.2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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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암송요절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13절).

2) 본문요약
본문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 오일 전에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기록이다. 많은 무리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길에 옷을 펴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환호하며 열광적으로 예수를 환영하는 모습에서 그의 왕 되심을 암시한 사건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내용분해

(1) 열광적으로 환영을 받으심(12~15)
① 승리의 입성(12) ~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열린 그 다음 날 정확히 주일인데 그러므로 이 날을 종려주일(palm Sunday)이라 부른다. 예수께서는 살해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구속 사역을 완성 할 때가 이르렀기 때문에(2:4, 7:6, 8:20) 예루살렘으로 입성 하셨다. 유월절을 앞두고 이미 도착한 큰 무리들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열광적인 환영의 분위기가 된 것이다. 이 날은 주님의 지상 최후의 주간으로 수난 주간의 시작이기도 하며 속죄의 대업을 완성 시킨 중요한 주간이 된 것이다.
② 호산나(13) ~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군중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었는데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흔한 것이지만 존경과 희열을 뜻하며(레 23:40) 그들이 외친 구호는 "호산나"(Ωσαννά)인데 뜻은 "지금 구원 하소서"(시 118:25) 기쁨으로 부르는 찬송이요 오랜 희망이던 메시아로 인정한 환영이었다(1:49).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란 말은 예수가 이스라엘의 왕 임을 이해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후에 이 외침이 예수에 대한 고소의 항목이 되기도 했지만(18:33) 예수께서는 무리들의 환호를 막지 않으셨다.
③ 어린 나귀를 타심(14~15) ~ 예수께서 보잘것없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은 그의 겸비함을 나타낼 뿐 아니라 이미 구약에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이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리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라고 예언된 말씀의 성취이다. 왕이나 개선장군이 입성할 때는 병거나 준마로 위엄을 떨치는 것에 비해 세상 죄를 지신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모습이었다(마 20:28).

(2) 예루살렘 입성의 반응(16~19)
① 제자들의 반응(16) ~ 3년이나 예수를 따라 다녔으나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의 행동에 대해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였다. 군중들의 환성과 분위기를 보아 예언된 메시아임을 알아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 했는가를 알 수 있다. 제자들이 깨닫게 된 것은 "영광에(ἐδοξάσθη)을 받으신 후"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실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요 14:26, 15:26, 16:13~14). 3년이나 양육 받은 제자들이 이런 모습인데 군중들이야 무지 몽매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했다.
② 무리들의 반응(17~18) ~ 환영의 인파의 주동 역할은 죽은 후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 때문인데 목격하거나 주변에서 소식을 들은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증거 한지라"(ἐμαρτύρει, 미 완료형) 즉 그들의 증거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여기서 무리들은 두 종류의 부류로 나누어 진다. 17절의 증거의 무리들은 친히 표적을 본 자들이고, 18절의 무리들은 그들의 증거를 통해 들은 자 들인데 아마도 며칠 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저주의 외침으로 바뀜은 후자의 무리들이었을 것이다.
③ 바리새인들의 반응(19) ~ 예루살렘 입성 시 군중들의 환호성은 바리새인들에게는 크게 염려와 실망감을 더해 주었다. 예수를 죽이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분위기였고 자포자기 정도가 아니라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여기서 구지 바리새인이라 한 것은 실제로는 공회원들인데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지 않기 위한 요한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요 1147, 57, 12:10). 온 세상(κόσμος)은 공회원들이 홧김에 한 말로 반어적 진리(ironical truth)의 표현이지만 실상 예수의 사역은 온 세상을 위한 것이었다(요 3:16).

4) 질문
① 본문의 중심 되는 내용은 무엇인가?
②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를 환호하며 백성들이 한 말은?
③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신 의도는 무엇인가?
④ 제자들은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에 대해 언제 알게 되었나?
⑤ 입성에 대한 무리들과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각각 어떠했는가?

5)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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