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다시 히딩크 리더십을 생각한다.
58. 다시 히딩크 리더십을 생각한다.
  • 조박사
  • 승인 2014.05.31 11: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리교회 돌려막기 인사, 이제 그만

-회전 문 인사는 이제 그만-

박지성이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박지성 선수가 히딩크를 만나면서부터이다. 박지성선수는 당시 명지대학교 선수로서 국내에서도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선수이다. 그런데, 히딩크는 박지성선수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후 박지성선수는 국내에서도 빛을 보지 못하던 상황에서 세계적인 명문 구단의 주전을 맡아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박지성이나 이영표 선수 이외에도 히딩크를 만나서 제 기량을 꽃피운 선수가 많다. 히딩크는 우리나라 축구를 월드컵 4강까지 올려놓은 외국인이지만, 가장 사랑받는 축구인이 되었다. 그 히딩크가 선수를 격려하고 신뢰하는 한 장면을 소개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선수들은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 전날 밤 히딩크 감독의 방으로 한 명씩 불려갔다. 좀처럼 개인 미팅을 하지 않았던 히딩크 감독은 이 자리에 불려온 선수들에게 그동안의 체력측정 결과를 펼쳐 보여주며 “지난 5개월 동안 너의 체력이 향상된 것을 눈으로 확인해봐라. 나는 세계 최고의 팀이라는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감독을 했지만 지금 우리 팀의 체력 수준은 ‘레알 마드리드’ 이상이다. 너도 그 중 하나다”라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리고는 “우리가 월드컵에서 맞붙을 선수들은 세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지만 너의 실력도 절대 그들에 못지 않다. 나는 세계 최고 스타들을 직접 감독했던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그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팀이라면 그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당시 대표팀의 맏형었던 홍명보는 “히딩크 감독과 미팅을 한 후 네 차례의 월드컵 출전 가운데 가장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고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홍명보의 마음을 말 몇 마디로 안정시킬 수 있었다면 다른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히딩크는 당시의 축구계의 고질적이었던 출신학교 중심의 계파나, 감독을 따라 움직이는 계파를 무시하고 철저하게 능력 중심으로 선수를 선택하여 훈련을 시키고 격려하였다. 그러므로 당시 계파 밖에 있던 선수들이 능력으로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히딩크의 능력 중심으로 선수를 뽑는 객관적인 리더십을 보았고 그런 리더십이 성공적이었던 것을 보았으면서도 이 후로 우리는 빙상계에서 안현수 선수 파동과, 태권도계에서도 똑같은 계파로 인하여 선수들이 무너지는 수 많은 일들을 보아왔다. 참으로 우리는 깨달음이 없는 민족이다.

나는 지금 우리 교단의 문제도 히딩크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교단의 중형급(이 규정은 상당히 세속적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임으로 사용한다) 이상의 여러 교회들이 소위 회전 문 인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회의 장로님에게 영향력이 있는 몇 몇의 교단 지도자들이 어떤 목회자를 전임 교회에서의 목회실적이나 평가와는 무관하게, 시무하는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교회로 이동을 해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적 리더십으로 보면, 리더의 상황이 달라지니까 새로운 각오로 목회를 하면 새로운 은혜로 부임한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도 있다. 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함으로 목회자 이동이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 생기는 것이다. 보통 3년에서 5년이 되면 또 시무하는 교회에서 잡음이 들린다. 그러면 또 옮겨 주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해서 목회자에게 또 다시 목회의 기회를 주는 것은 잘 하는 일이며, 고마운 일이다. 어떻게 훈련받고 세운 목회자인데...

그런데 그 과정에 죽어나는 것은 교회공동체이다. 성도들의 영적 건강이다. 이렇게 서 너 번 교역자가 지나간 교회는 이제 영적으로 피폐하게 되고 그 건강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제 목회자의 권위를 의심하게 되고, 목회자는 그 영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만약 이런 목회자가 영향력이 있는 분과 아무리 가까운 목회자라도 하더라도 같은 사건이 여러 번 일어나는 목회자에게는 스스로 근신하고 그의 영적 능력과 지도력을 추스릴 시간을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이런 목회자는 스스로도 다른 교회로 이동하려고 하지 말고, 안식년 제도 같은 것을 사용하여 근신하고 텅 빈 영성을 회복하는 스스로의 결단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중형교회들을 보면서 개척하는 목회자들이나, 능력이 있지만 소위 줄이 없어서 이런 영향권에 끼지 못하는 목회자들은 상대적인 허탈감과 궁핍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도 빨리 어느 줄에 들어가야 살 수 있는 것인 아닌지 하면서 어린 나이에 교단 정치에 빠지는 경우도 보게 된다. 참으로 교회의 공교회성의 입장에서 볼 때 안타까운 일이다.

목회자의 능력에 따라 객관적으로 천거할 수 있는 목회문화가 아쉽다. 히딩크 리더십이 그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