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위대한 감리교회는 어디로 갔는가?
57. 위대한 감리교회는 어디로 갔는가?
  • 조박사
  • 승인 2014.05.2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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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재 감독회장은 자신의 부덕을 인정하고 회중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할 때

‘짐 콜린스’의 『위대한 기업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그가 지난 번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와 『성공하는 기업이 8가지 습관』에서 위대한 기업이라고 평가하던 수 십 개의 기업들이 줄줄히 도산하거나 파산하고 난 뒤, 왜 그렇게 잘 나가던 세계적인 기업들이 멸망하게 되었을까를 조사연구한 책이다. 그 책을 보면 기업들이 멸망하게 되는 과정이 5단계로 정리되어 있다.

1단계 :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이다. 성공의 요인을 살펴보면 운과 기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가 많은데, 그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자기 능력과 장점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자만하게 된다.

2단계 :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로 ‘성공’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 대상이 된다. 이 때 기업의 능력을 무시하고 기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단계이다.

3단계 :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이다. 기업이 3단계에 들어서면 내부에 경고 신호가 증가하지만, 외부 성과가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에 걱정되는 징후에 대한 우려를 날려버린다.

4단계 :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이다. ‘구원투수’들은 비전과 카리스마가 있고 과감하지만 입증되지 않은 전략, 급격한 전환, 드라마틱한 문화적 변혁, 공전의 히트를 칠 제품, 판을 뒤집을 합병, 사태를 한 방에 해결할 묘안을 추구한다. 이러한 극약 처방은 초기에는 긍정적인 결과를 내는 듯 보이지만 지속되지 못한다.

5단계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 : 극단적인 경우 기업은 완전히 생명이 끝난다. 「위대한 기업들도 휘청거리고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 있으며 다시 회복할 수도 있다.

5단계까지 떨어지고 나면 살아나올 수 없지만, 4단계에서는 어렵긴 해도 극복할 수 있다. 물론 거의 모든 기업이 언젠가 수명을 다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조사를 통해 몰락은 대부분 스스로 자초한 것으로 회복 역시 스스로 이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나는 이번 감신대 대학원 “교회경영 세미나”에서 이 책을 필독서로 읽게 하였다. 기업이든지, 국가든지, 어떤 조직이든지 탄생과 성장, 성숙, 그리고 쇠퇴의 싸이클은 모두 같은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현재 기독교의 위기와 우리 교단의 위기를 깨닫게 하고, 회생의 방법을 찾게 하려는 의도로 이 책을 잃게 했다. 그리고 받은 학생들의 독후감은 대다수 우리 감리교단이 지금 4단계를 너머 가고 있다는 평가였다. 즉, 이대로 가다가는 이제는 희생의 소망도 없다는 평가였다. 그리고 그 붕괴의 원인이 나름대로 감리교단이 잘 나갔었고, 그 때 이런 미래의 쇠퇴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감히 이렇게 내린 평가는 우리 감리교단의 소송을 단골로 하시는 목사님들, 장로님들께 고한다. “이제 그만 하십시다” 본인들은 지금 감리교단의 정의를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위하여 소송을 하고 재판을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돈 선거를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재판을 하고, 소송을 하실 것이다.

지금 감리교단은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이다. 그런데 자칭 의사들은 숨도 제대로 쉬고 의식도 혼미한 환자에게 열심히 피를 뽑고, 엑스레이를 찍고, 각종 첨단의 기계를 가지고 와서 조사하기 바쁘다. 분명 지금 이 환자는 식물인간이다. 가장 긴급한 일은 환자의 의식을 살려 놓는 일이다. 그리고 자가 호흡을 하게 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지금 죽어가는 환자에게 그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각종 조사를 한 들, 그리고 그 조사가 제대로 된 들,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먼저 살려놓고 그 다음에 조사를 해야 한다.

언젠가 돈 드는 선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입법회의에서 주장할 때,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들키지 않으면 됩니다.” 이게 감리교단의 현실이다. 교단 밖에서 보면, 우리 감리교단은 지금 무너져 가는 집안에서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면서 싸우는 못난 형제와 같은 꼴이다. 누가 옳고 그름보다는 지금은 집을 세우는 것이 먼저이다. 집이 무너져서 형제들이 모두 무너진 집에 깔려 죽은 다음에는 누가 옳으냐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은 전용재 감독회장은 자신의 부덕을 인정하고 회중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할 때이다. 그리고 세월호와 같은 이 감리교단을 위하여 “내가 부덕한 선장이 되었다. 죄송하다, 그리고 용서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목회자와 장로님들은 지금까지의 감리교 사태에 모든 책임을 통감하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입법을 하여 바로 세워야 한다. 미래의 감리교를 책임질 수 많은 신대원 학생들이 더 이상 교단의 입법회의, 총실위, 선거위원회, 감독회의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빨리 희망을 주는 교단이 되어야 한다. 몇 년 전인가 우리 감리교단의 표어에 이런 것이 있었다.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 제발 그렇게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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