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독서를 즐기는 이들에게 큰 유익을 주는 책이다. 흔히 책 읽기의 유익에 대해 사람(삶)을 읽고, 세상을 읽는다는 말을 한다. 이 책은 스탈린 치하 주인공 슈호프(이반 데니소비치)가 겪은 오랜 수용소 생활 중 단 하루의 일상을 소개하지만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이 겪는 세상을 통해 책읽기의 유익을 선사한다.
아침 다섯 시, 기상을 알리는 신호 소리가 손가락 두 마디만큼이나 두껍게 성에가 낀 유리창을 통해 희미하게 들려온다. 점호 때까지는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자유 시간이 있고 수용소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이면, 언제든지 돈벌이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같은 수용소 체험을 담았지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보다는 긴장감이 덜하다고 느껴지지만 대부분 죄수가 25년형을 언도받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논할 수준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기상 소리에 한 번도 어김없이 일어났던 슈호프가 오늘은 일어날 생각을 못할만큼 몸이 좋지 않았다. 밤새 영원히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뿐이었지만 아침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당직이 간수 중에 가장 유순한 폴토르 이반일 거라 예상했는데 타타르인이 담요를 낚아채고 기상 시간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삼 일간 노동영창의 벌을 받으라고 한다. 하지만 관대하게 간수실 청소로 대신해 주었다.
슈호프는 일처리를 조심스럽게 할 줄 안다. 일은 영리한 사람 앞에서는 신경써서 해야 하지만 멍청이 앞에서는 하는 척만 하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벌써 오래전에 뻗어 버렸을 것이다.
다같은 죄수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다. 예를 들어 전직 해군 중령 부이노프스키 같은 사람에게 남의 밥그릇을 지키고 앉아 있으라고 할 수 없다. 슈호프도 아무 일이나 가리지 않고 하지 않는 이유가 자신보다 더 낮은 서열의 이들이 있는 까닭이다.
수용소 생활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침 식사 시간 십 분, 점심과 저녁 시간 오 분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다. 식사 때 제공되는 마가라로 만든 죽은 수수처럼 노르스름한 풀을 썰어 넣어 300그램만 되면 죽이든 죽이 아니든 그걸로 족하다고 하고, 생선도 살점보다 가시가 더 많고 얼마나 오래 끓였는지 형체를 분간할 수 없다.
혼자 다니다 간수에게 들키지 않게 항상 사람 많은 곳에 몸을 숨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일시킬 사람을 찾을 수도 있고, 울분을 터뜨릴 대상을 찾을지 알 수 없고, 간수들 중에 죄수를 괴롭히는 것을 재미로 여기는 경우도 있어 간수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수용소 생활을 십 년 넘게 한 죄수가 뭣 때문에 작업에 열을 올리는가? 못 하겠다고 버티면 그만 아닌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럭저럭 시간만 보내다 밤이 되면 되는 것 아닌가?
어림없는 얘기다.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도록 반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상관이 감독하지 않아도 반원들끼리 채근하며 작업하는 이유가 반 전원이 급식을 타 먹느냐, 아니면 배를 주리느냐의 문제가 걸린 까닭이다.
반장은 본부의 아들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수용소 생활에 통달한 사람이다. 군대에서 일등 사수로 복무하던 중 아버지가 부농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오게 되었는데 수용소 내에서 반장은 절대적 존재다. 좋은 반장을 만나면 두 번째 생을 산다고 할 정도지만 나쁜 반장을 만나면 영락없이 나무옷(관)을 입게 마련이다. 그래서 누구나 속일 수 있지만, 반장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철칙이고 그러면 최소한 목숨을 부지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
부이노프스키는 영국 순양함에서 한 달간 생활한 적이 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영국 제독이 기념품을 보낸 것이 문제가 되어 수용소에 오게 된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점호에 판텔레프가 나오지 않았다. 아파서 의무실에 갔다고 하지만 반원들은 보안부원이 잡아 둔 거고 또 누군가를 밀고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세니카는 세 번 포로가 되어 세 번 탈출을 시도했고, 세 번 붙잡혔다고 하는데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는 것이 상책이다. 공연히 대들다가 손해 보는 것은 자신뿐이다.”는 것이다.
슈호프의 죄목은 반역죄이다. 모든 게 사실이라고, 조국을 배반하기 위해 포로가 되었고, 독일 첩보대 앞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 풀려났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어떤 목적을 수행할 계획이었는지 자신도, 취조관도 꾸며낼 수 없어 그냥 목적이 있었다고 대충 결정을 내렸다. 부정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지만 인정하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어 서명한 것뿐이다.
그 외에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하지만 일일이 소개할 수 없다. 다만 책 속에 너무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침례교도 알료쉬카이다. 그는 눈으로만 복음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제법 소리까지 내며 읽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슈호프가 듣기를 바라며 일부러 그러는지도 모른다. 이 침례교도들의 전도열은 아주 유명할 정도니까.’라는 단서를 붙인다.
알료쉬카 녀석은 참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수첩을 얼마나 교묘하게 숨겨 놓는지, 검사에 한 번도 들킨 적이 없다. 뺨은 움푹 들어갔고, 돈벌이 하나 제대로 못하고 배급에만 매달려 겨우 살아가는 처지에 뭐가 즐겁다고 웃는단 말인가. 일요일이면 수용소 안에 다른 침례교도들과 함께 모여 수군거리곤 한다. 수용소에서 그들은 물 만난 오리 같다.
알료쉬카는 누가 무슨 부탁을 해도 싫다는 내색을 하는 법이 없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런 사람들뿐이었다면, 그러고 보면 알료쉬카의 동료들은 올바른 인간들임에 틀림없다.
슈호프가 기억하는 교구 신부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폴롬냐 교구에선 그 신부만큼 돈많은 사람은 없었어. 생활비를 대 주는 여자가 셋이나 있었고, 네 번째 여자는 아예 자기 집에 데려다 놓고 살았네. 그 도시의 주교도 신부에겐 꼼짝 못하지. 왜냐하면 신부에게 뇌물을 잔뜩 받아먹었거든. 다른 신부가 오면, 며칠 못 가서 쫓겨나고 말아.”
마치 일기처럼 써놓은 글이기에 줄거리도 두서없이 옮길 수밖에 없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세상을 볼 수 있기에 한 번쯤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잘 가르쳐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