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하면 소설 「데미안」이 떠오르고 너무 유명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글이 생각난다. 너무 오랜 학창 시절의 기억에 주인공 싱클레어처럼 크로머 같은 악당에게 시달림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데미안 같은 구세주의 등장이 얼마나 큰 감격인가를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데미안은 훨씬 더 이상한 정신세계로 이끈다는 사실을 처음엔 알지 못한다. 소설 속에 <두 세계>가 등장한다. 한 세계는 아버지의 집으로 사랑과 엄격함, 온화한 광채, 인생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정돈되어 있으려면 그 세계를 향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또 하나의 세계인 어두운 세계 그 경계가 서로 닿아있어 얼마나 가까운지...
데미안은 ‘악령’으로 번역될 수 있는 ‘데몬’이란 단어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데미안은 살인자 카인에 대해 그에게 주어진 표적이 비범한 정신과 담력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붙인다. 그리고 예수 옆에 달린 도둑들 중 회개하지 않은 도둑이야 말로 사나이라고...
그리고 ‘압락사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신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한 존재.
헤르만 헤세는 신교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선교사인 외조부의 영향으로 서양 기독교적 경건주의 전통 뿐 아니라 인도와 중국의 동양적 신비주의의 영향도 받으며 자라났다.
헤르만 헤세가 쓴 「수레바퀴 아래서」는 또다른 헤세의 자서전이다. 주인공 한스는 의심할 여지없이 재능있는 아이였지만 주의 젊은이 가운데 선발된 뛰어난 인재만 모이는 마울브론 신학교의 엄격함으로 탈주 사건을 일으킨 하일너의 친구였던 한스까지 축출 대상으로 만든다.
물론 소설의 주인공 한스처럼 죽음으로 끝나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런 수레바퀴가 지나간 궤적이 헤세를 결국 맑고 깨끗한 세계에서 점점 멀어지게 한 것이라 생각된다.
처음 「싯다르타」를 읽을 때는 불교성전을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석가모니의 생애를 기록한 불교 성전의 내용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 까닭이다. 최소한 제목을 「싯다르타」라고 붙였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만약 「예수」라는 이름을 붙여 책을 썼을 때 예수와 전혀 상관없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심하게 반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서양인의 구조가 동양인과 달라서 그런 것인지 아무 생각없이 그런 제목을 붙인 것이며 어쩌면 그런 두뇌 구조가 동양 종교의 신비적인 부분을 오히려 잘 드러낸 것인지 어쨌든 꽤 혼란스러웠다.
왕자였던 싯다르타를 바라문의 아들이라 소개하고, 싯다르타의 어머니 마야 부인은 석가모니가 태어난지 이레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소설에는 싯다르타가 늠름하게 걷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머니는 환희가 샘솟았다고 한다.
그나마 싯다르타의 성(性)인 고타마를 이름으로 하는 성인을 만나는 장면이 있다. 그에 대해 4제와 8정도를 가르쳤다고 하고 “싯다르타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 분만큼 존경한 적이 없었으며, 어느 누구도 이 분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라는 표현으로 불교에 대한 최소한의 예절은 갖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후에 펼쳐지는 내용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헤세 자신의 사상을 담고 있다.
선과 악을 겸하는 신적 존재로서의 압락사스는 영지주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등장한 신으로 헤세는 자신을 치료해 준 칼 융을 통해 그 존재를 알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 삶의 모든 것들로부터 해탈할 것을 가르치는 불교의 설법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싯다르타는 카말라라는 창부를 만난다. 그녀는 싯다르타에게 “당신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최고의 연애 대장이에요.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이 세고, 더 유연하고, 더 자발적이에요. 싯다르타, 당신은 나의 방중술을 잘 배웠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의 소개로 카마스와미라는 상인을 만나게 되고 장사하는 법, 사람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법, 그리고 여자들과 즐기는 법을 배웠으며, 아름다운 옷을 입는 법, 하인들을 부리는 법, 그리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물 속에서 목욕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럼에도 마음은 사문(沙門)에 머물러 있던 싯다르타는 세상이라는 덫에 사로잡혀 마침내 자신이 끊임없이 가장 어리석은 것으로 경멸하고 조소해 마지 않았던 악덕인 탐욕에도 사로잡혀버렸다.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싯다르타는 뱃사공 바주데바를 만나고 그를 통해 강의 소리를 듣게 된다. 강으로부터 무엇보다도 경청하는 법, 그러니까 고요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활짝 열린 영혼으로 격정도, 소원도, 판단도, 견해도 없이 귀기울여 듣는 것을 배웠다.
이후 고타마의 입적에 대한 소문을 듣고 아들과 함께 그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카말라가 뱀에 물리고 죽음의 순간에 싯다르타를 만나게 된다. 홀로 남겨진 자신의 아들에 대한 미련을 갖게 되지만 결국 떠나버리는 아들...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서 얻게 되는 진리가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경험하며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강의 소리를 통해 얻게 되는 진리는 선만이 아닌 악도 포함하는 단일성의 사상, 결국 압락사스이다.
그런 그의 소설이 1,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허무주의에 빠진 히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그들로부터 ‘성자 헤세’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물론 헤세의 문학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진리를 대충 얼버무리는 혼합주의 종교관을 별 생각 없이 호기심으로 받아들이는 독자들을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