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원의 「니고데모의 안경」은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책이다.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는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께 온 사람이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만한 위치에 속한 자라면 예수님과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을텐데 4장에 등장하는 당시 유대인의 시각에서는 개처럼 취급하던 사마리아 사람, 더구나 평소 대화하는 것을 터부시하던 여인과의 대화보다도 말귀가 어둡게 느껴지진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예수님이 그에게 가르치고자 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으로 거듭난 자라야 볼 수 있기에 니고데모는 볼 수 없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안경이 필요했던 것이다.
책의 서두에 저자는 니고데모와 같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20년전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대학가에서 다른 친구들처럼 운동권에 뛰어들지 못하고 엉거주춤하던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준 것이 개혁주의 신앙관이었다.
세상은 하나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은 다양하다. 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창문을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나?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세상은 이다지 고통과 죄악으로 가득한가?
구원이 실제로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며, 세상과 역사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은 위와 같은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쓴다. 물론 누구나 그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잇다.
클리포드 기어츠와 제임스 올시우스는 세계관은 두 가지 요소를 갖는다고 했다. 첫째는 세상과 삶에 대한 조망이며, 둘째는 세상과 삶을 위한 조망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세상과 삶에 대한 이해와 비전이라 할 수 있는데 이해는 비전의 토대가 된다. 그런 점에서 세계관은 삶을 안내하는 지도와 같다.
책에서 아브라함 카이퍼가 쓴 「칼빈주의」를 기독교 세계관의 고전이라고 소개하는데 “칼빈주의가 교회 제도 뿐 아니라 생활원리로 발전하고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카이퍼는 “칼빈주의가 교회 운동을 대표한다는 그릇된 관념을 뿌리 뽑으려 한다”고 말한다.
‘창조와 타락과 구속’은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게 하는 성경의 삼중 렌즈이다.
먼저 창조는 세상 만물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가르쳐 준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 분은 지금도 일하고 계시다는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게획대로 이루어가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마지막에 인간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 또한 모든 것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부여받는 존재로서의 인간에게서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악과 고통의 문제는 인간이 직면하는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이다. 성경에서는 타락의 관점에서 이를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이는 선악과 사건이 있기 전부터 주어진 것이요, 사탄이 인간을 유혹한 것은 사실이나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것은 인간이다. 그에 따른 결과로서 주어지는 벌을 고통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담의 원죄 이후 모든 인간은 부패하였다. 성경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신다. 원죄 이후 인간은 바벨탑을 쌓는 등 문명의 발전을 거듭하더라도 스스로 의인이 될 수 없는 전적 부패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속의 약속을 허락해 주셨다. 죄에 빠져 두려워 숨는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는 원시복음 즉 메시아에 관한 약속을 주신 것이다.
구약은 이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하시는 하나님,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시는 하나님,
출애굽은 흠없는 어린양의 피를 보고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는 유원절로 시작된다. 또한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주신 십계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정리된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하시며 성막을 짓게 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상 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율례를 가르치시고
제사법을 통해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통해 제사장의 직무를 가르치시고
레위인의 직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가르쳐주시는 하나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광야 생활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며’에 대한 해답으로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을 명령하신다.
그리고 출애굽한 백성이 꿈꾸는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다. 이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천국이라고 불려지는 곳이다. 첫 언약을 어긴 아담의 후손들에게 약속하신 메시아에 대한 약속, 그 약속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의 땅이다.
「니고데모의 안경」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은 개혁주의 신앙관에 너무 얽매여 성경적인 신앙관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껏 안경을 쓰지 못한 니고데모처럼 살아가는 자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보여준 것에 대해서는 무한 감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