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는 종탑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새벽마다 이 종탑에서 종을 울렸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종탑에 비가 새기 시작했고, 결국 종을 철거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종탑에 올라가 보니 한쪽에 예전에 사용하던 물건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설립 연도가 다르게 인쇄된 머릿돌, 오래된 교회 표어가 적힌 액자, 그리고 녹슨 십자가. 제가 이곳에 부임했을 때는 이미 교회가 리모델링을 마친 상태라, 이 오래된 물품들은 종탑 계단 한켠에 방치되어 오랜 세월의 흔적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 교회의 원로 장로님께서 십자가를 봉헌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당 정면을 밝히던 십자가를 교육관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새로운 크리스탈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교회 스크린 공사를 하면서 크리스탈 십자가를 본당 왼쪽 벽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제단상 위에 십자가가 있었는데, 스크린이 제단상 위에 설치되면서 십자가는 왼쪽에, 제단상은 가운데에 떨어져 조화롭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단상을 십자가가 있는 왼쪽으로 옮기면 더욱 어색할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에 문득 녹슨 십자가가 떠올랐습니다. 얼른 종탑에 올라가 십자가를 꺼내 보았습니다. 스크린과 제단상 사이에 십자가를 놓아보니 길이가 조금 길었지만,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십자가는 놋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1983년 교회를 건축할 때 만들었던 십자가였는데, 1996년 교회 리모델링 이후 창고에 방치되면서 색깔이 검게 변해 마치 버려진 놋그릇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유튜브에서 ‘놋그릇 닦는 법’, ‘놋그릇 닦는 약’ 등을 검색하며 놋을 닦는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소개된 약품을 구입해 교회의 권사님에게 십자가와 함께 맡겼습니다. 며칠 후, 권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날도 덥고, 냄새도 심해서 도저히 못 닦겠어요.” 그때 다른 권사님이 본인이 한번 닦아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제단상 촛대 사이에 놓인 십자가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놋 십자가가 밝고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검게 변색된 십자가가 아니라, 마치 금 십자가처럼 보였습니다.
검게 변색된 십자가도 닦으니 빛이 납니다. 창고에 방치되어 있을 때는 검고 더러웠지만, 제단 위에 올려 놓으려고 깨끗이 닦아내니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검고 어두운 십자가일까요, 아니면 빛나는 십자가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제단 위에서 쓰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보혈로 닦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빛나고 있습니다. 천등산 박달재의 교회에서 빛나는 놋 십자가처럼,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단을 위해 살지 않고 창고 속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의 빛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맡겨진 제단과 교회를 위해,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날마다 닦아 더욱 거룩하고 빛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