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평범한 일상에 다가올 수 있는 변수에 대해 말한다. 도리스 레싱은 「황금 나침반」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세계가 있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꿈꾸는 세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너무 다른 현실의 삶을 맞닥뜨리게 될 때 그것이 처음에는 충격으로 다가오겠지만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은 그것이 일상이고 그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만난 것은 직장 파티에서 였다.”라는 글로 시작된다. 그냥 평범한 직장 파티, 두 사람 다 특별히 가고 싶어하던 파티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파티를 즐기기는커녕 아웃사이더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생각을 완강하다고 할 수 있으리만치 옹호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 까다로움이나 절제가 단지 인기 없는 자질이라는 이유로 비판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만약 누군가가 방을 가로질러 해리엇의 모습을 보았다면, 해리엇은 파스텔 톤의 희미한 모습이었고 그런 해리엇에게 데이비드는 어느 곳에도 굳건히 뿌리 박지 못한 사람으로 보였다.
이 두 사람을 괴짜로, 변종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섹스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였다! 데이비드는 마지못해 사랑하게 된 한 여자와 길고도 어려운 관계를 한 번 가졌고, 해리엇에 대해 말하자면, 그녀는 처녀였다. 그녀에게 처녀란 올바른 사람에게 사려 깊게 줄, 예쁜 종이로 여러 겹 포장한 선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둘이 만나고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고 조용히 나와서 근처에 있는 그의 아파트로 가서 침대에 누워 손을 맞잡고 이야기했고 빠른 시간 안에 그녀는 그의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그들은 이미 봄에 결혼하기로 결정했고 그들은 천생연분이었다.
런던에서는 그들이 원하던 종류의 집을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통근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소도시에서 무성한 정원을 가진 거대한 빅토리아풍의 집을 발견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완전한 공간이 있는 그런 집이었다. 그들은 자식을 많이 낳을 예정이었다. “우리는 애가 많아도 개의치 않아요.”라고 선언했고 “넷도 좋지, 아니 다섯도….”, “아니 여섯도.”라고 데이비드는 말했다.
첫아기 루크를 낳았을 때 순한 아이였다. 부활절에는 첫 번째 가족 파티가 열렸다. 방은 충분했고, 가구도 대충 들여놓았고 그들은 즐겁게 보냈다. 두 번째 아이 헬렌도 루크처럼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방 침대에서 태어났고 1968년 여름, 거의 모든 가족이 모여 다시 한번 다락방까지 가득 찼고 며칠만 있겠다고 하고 와서는 일주일을 머물렀고 이 모든 경비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냈다.
그렇게 넷째 아이를 낳았을 때까지 행복은 계속되었다. 가족처럼 되어버린 브리짓에게 “이봐, 브리짓, 너무 기대하지는 마. 인생은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면서도 “올바르게 선택만 한다면 인생은 그럴 수도 있다. 왜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풍부하게 가진 것을 그 소녀는 가질 수 없다고 느껴야만 하는가?”라는 추론을 붙인다.
1973년 크리스마스 때 해리엇은 다시 아이를 가졌다. 그녀는 이전에 알던 어떤 것과도 다른 이 새로운 존재로부터의 요구를 느끼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작은 존재가 그런 무서운 힘을 보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진정제를 복용하여 원수를 -자신 안에 있는 이 야만적인 것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한 시간가량 조용하게 만들면 그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잠에 취해 정신없이 잤다.
태어난 아이는 예쁜 아기가 아니었다. 전혀 아기같이 생기지도 않았다. 아기의 이름은 벤이라고 지었다. 아이를 갖지 못하던 라헬이 난산 끝에 아들을 낳지만 결국 숨을 거두면서 슬픔의 아들이란 의미의 ‘벤노니’라고 부르지만 야곱은 아이를 오른팔 같은 의미로 ‘벤야민’으로 바꾼다. 벤은 슬픔을 안겨 준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벤과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 애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마치 이제까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서 여러 시간 동안 기억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돼.”
해리엇의 대사를 통해 벤이 어떤 존재인가를 잘 보여준다. 벤이 자라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은 가정의 행복을 하나씩 파괴하는 것이었다.
“우린 벌 받는 거야. 그뿐이야.”
“무엇 때문에?”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
“이건 우연이야. 누구나 벤 같은 애를 가질 수 있어. 그건 우연히 나타난 유전자야, 그것뿐이야.”
“우린 행복해지려고 했어!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니, 나는 행복한 사람을 만나 본 적이 결코 없어.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려고 했지. 그래서 바로 번개가 떨어진 거야.”
“그만둬, 해리엇! 당신은 그 생각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몰라? 유대인 학살과 형벌, 마녀 화형과 분노한 신들!”
해리엇이 말했다.
“희생양도 잊지 마.”
결국 마지막엔 자신들의 행복의 보금자리로 만들려했던 집을 팔게 된다. 작품 후기에 이런 글이 있다.
빅토리아식 큰 집을 포함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를 낳고 사랑하는 모성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또한 자식들이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도움을 주는 부모로서의 의무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가치관이 이 시대에는 얼마나 허상인지를 레싱은 「다섯째 아이」에서 그대로 보여 준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맞이하게 되는 생각지 못했던 암초에 대해 그리는 소설이다. 자신들이 꿈꾸던 세계,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의 몰락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