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육유(陸游)가 성도(成都)의 늦봄에 명승 마하지(摩訶池)를 찾았습니다. 따스한 볕에 꽃들이 활짝 피었습니다. 풍악이 울리고, 귀족들의 행차로 경내가 떠들썩했습니다. 육유는 '수룡음(水龍吟)'에서 이런 경물과 풍광을 묘사한 뒤 "슬프다 좋은 시절 문득 바뀌면, 남몰래 넋은 녹아, 비 걷히고 구름은 흩어지겠지(惆悵年華暗換, 黯銷魂, 雨收雲散)"라고 썼습니다. 청춘의 꿈은 가뭇없고, 이 풍광도 곧 자취 없이 스러질 것입니다.
소위 ‘감리회 사태’로 일컬어지는 상황을 두고서 2009년 4월 27-29일에 감리교신학대학교 82학번 동기회 주관으로 100인 기도회가 본부 회의실에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단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보다 책임적인 자세로 대응할 것을 고민하던 끝에, 양재성 목사와 곽일석 목사의 주선으로 제20회 경기연회 개최 기간 중 4월 16일 수원에서 이십여 명이 모임을 갖고 기도회를 갖자고 의견을 모았던 것입니다.
기도회 후 ‘감리교회 개혁 을 위한 전국 목회자 100인 선언’을 하여, “1. 오늘날 감리교회의 불행한 사태는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통감하며 전교회적인 영적각성과 회개운동을 촉구한다. 2. 감리 교회의 교리와 장정은 철저히 준수되어야 하며 감독회장과 관련한 법원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3. 현재 감리교 본부에서 행해지는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하고 하루빨리 감리교 본부의 업무가 정상화 되어야 한다. 4. 그 동안 감리교회를 파행을 이끈 모든 사람들은 교회법에 따라 엄중히 치리하여 교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 5. 감리교회의 아름다운 유산인 단일교회의 전통은 지켜져야 하며 교회 분열을 통해서라도 교권을 취하려는 모든 행동은 중단되어야 한다. 6. 감리교회의 현안 해결과 개혁을 논의하기 위한 전국 감리교 목회자대회를 조속히 개최하자.”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제안에 따라 5월 28일 아현교회에서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 준비위원회 출범예 배를 드리고 현판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6월 19일 종교교회에서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가 열렸으며, 1천여 명이 참석하여 ‘회개와 변화와 비전’을 위한 프로그램을 가졌습니다. 100인 기도회와 전감목의 목적은 교권투쟁의 대결과 혼돈 상황을 ‘개혁국면’으로 전환하자는 데 있었습니다. 제1차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 선언문과 서명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국 감리교 목회자대회 선언문
- 회개ㆍ변화ㆍ비전 -
지난 해 9월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선거로 야기된 일들은 감리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주었습니다. 사회의 나침반이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자정능력을 상실한 채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권위를 한 없이 실추시키고 말았습니다. 웨슬리의 성 서적 경건에 기초한 자랑스런 감리교회의 신앙전통은 금권 및 불법타락 선거로 말미암아 그 빛을 잃은 채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으며, 영적지도력의 부재는 이런 혼란을 가중 시킨 채 오늘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에 전국 감리교목회자 대회에 참석한 우리는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 이 바로 우리 모두의 죄로 말미암아 비롯된 것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소명의식은 주님과의 첫사랑을 잊은 채 희미해졌으며, 영혼을 구원하고 세상의 소망이 되어야 할 교회의 존재목적을 상실한 채 성공주의 신화에 사로잡혀 세상에 영합하여 왔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와 같은 감리교회가 겪는 어려움을 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방관자였으며, 개교회주의에 기초한 무관심과 무책임한 냉소주의, 그리고 자기 의에 빠져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일에 익숙했던 교만의 죄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의 이 현실을 초래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통감하며, 자복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가운데 감리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이루어져야 함을 밝히는 바입니다.
하나.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는 감리교회의 회개와 자정을 선언한다. 1) 감리교회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감리교회가 자정의 길을 가야함을 고백한다. 2)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이라는 교회의 본질을 잊고 교회를 사유화하려던 모든 의도를 회개한다. 3) 감리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회개하며, 감리교회 신앙 전통인 사회적 성화를 추구하고 포용적이고 균형 잡힌 감리교신학을 회복한다.
하나.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는 감리교회의 변화와 갱신을 선언한다. 1) 감리교회의 변화를 위해 개혁입법을 우선한다. 2) 소송 당사자들은 본안 판결을 수용하고, 직무대행은 빠른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 3) 금권, 학연, 파벌정치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선거제도를 개혁한다. 4) 연급순 의회제도를 개선하여 직능별, 연령별, 성별, 전문성 등의 대표성을 보장한 다. 5) 감독제도를 혁신적으로 개혁한다. 6) 은급제도를 개선하고, 미자립교회 문제와 목회자 최저생활비를 제도적으로 해결한다.
하나,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는 감리교회의 책임과 비전을 선언한다. 1) 예수님을 본받고, 웨슬리 복음주의를 회복하여 성화와 부흥의 교회공동체를 이룬 다. 2) 세상과 소통하는 교회를 위해 섬기며, 교회의 대 사회적 신뢰회복을 위해 책임을 다한다. 3) 교회가 섬기는 지역사회의 소외된 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책임을 다한다. 4)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정의를 선포하는 일과 사회와 민족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2009년 6월 19일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 참가자 일동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 서명자 명단(6월 23일 오후 1시 현재 2122명)
이어서 6월 30일 전감목대회 정책수련회가 열려, 서철 목사의 '개혁 의제'와 백용 현 목사의 '비상(개혁) 총회 요구' 발제를 듣고 토론했습니다. 참석자는 김순영 조경열 민경보 백용현 정연수 최이우 이광열 권철범 김성국 윤여군 조언정 박정인 서철 박상칠 유기성 서호석 심자득 곽일석 박인환 차흥도 정명기 전용재 엄상현 이필완 권승길 목사였습니다. 그들은 '공교회성 회복'과 '교회의 책임과 비전'을 기본의제로 ‘감독제도 개혁’, ‘선거제도 개혁’, ‘의회제도(총대선출 포함) 개혁의 5대 과제를 확정했습니다.
전국감리교목회자대회가 주최한 감리교개혁토론회가 2009년 8월 3일 감리회관에서 열려, 선 ’개혁총회냐 재선거냐‘를 놓고 토론을 했습니다. 이후 전감목은 개혁총회 개최 노선을 주장했습니다.
11월 23일 정동제일교회에서 '십자가로 돌아가자!'는 주제로 2차 전감목대회가 열 렸습니다. 이 대회의 목적은 “1) 개혁총회요구 2) 개혁법안 제안 3) 개혁조직 건설”이었다. 전감목은 설문조사기관인 ‘월드리서치’에 의뢰하여 전국 감리교 목회자 1,832명을 대상으로 9월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감리교 정상화방안 가운데 ➀개혁총회(47.8%) ➁재선거(22.5%) ➂행정총회(21.3%) 순으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날 참석자들은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는 성명을 채택하고, “감리회가 혼란과 갈등에 휩싸인 지 1년이 넘었지만 사태의 책임당사자들에게서 반성과 성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감독회의의 행정총회 소집 기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기존 총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을 묻고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연회원 전체가 참여하는 개혁총회 소집, 행정총회 즉시 철회, 감리회 사태 일괄 해결을 위한 연회원 전체투표 제안, 현 사태 책임 당사자들은 사과하고 물러날 것, 전감목은 개혁운동을 위해 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로 출범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전국 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 초대회장에 김고광 목사가 추대되었습니다.
그 후 전국감리교목회자개역현대의 연회 조직 작업에 들어가, 12월 8일 삼남연회 가 조직되었습니다. 다음 해인 2010년 1월 21일 동부연회, 5월 31일 서울연회, 7월 8일 경기연회, 9월 16일 중부연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그리고 11월 25일에는 선한목자교회에서 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 총회를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의 행보는 이규학 감독회장 직무대행 체제하 7월 13일 실시된 재선거를 통한 정상화 노선을 밟았다가 재선거가 사회법 소송에서 무산됨으로써 사실상 멈춰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12월 19일 “감리교회를 새롭게, 감리교회를 희망으로 바라봅시다.”라는 성명서를 통해 자성하며 미래의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 동안 <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는 웨슬리신학을 바탕한 건강한 교회운동을 추구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감리교회의 공교회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책임을 고양하며, 보다 적극적으로는 감리교회의 제도개혁을 통하여 감리교회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기치를 내세웠습니다. 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는 1차 2차 목회자대회와 3,000명에 이르는 개혁총회 서명운동을 통하여, 감리교 개혁이라는 뜨거운 열망을 확인하며 감리교회의 미래와 희망을 견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는 개혁총회 소집을 끝까지 관철하기 보다는 교단정상화라는 현실적 문제를 비켜갈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재선거 운동으로 정책적 방향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재선거로의 방향 전환은 선총회를 반대하는 범민주적인 개혁 세력들이 연대하여 재선거를 통해 감독회장을 선출하고, 총회를 개최하여 개혁입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지도부의 고육지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음을 뒤늦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전감목이 이렇게 짧은 운동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감리교 개혁을 열망하는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감리교사태라는 환경적인 요인과 함께 감리교 구성원들의 개혁 염원이 결집된 까닭이었습니다.
그러나 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는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외침”과 “개혁의 염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계속적인 운동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현실적인 정치상황에 매몰되어 감으로 개혁 열망과 에너지를 전적으로 소진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재선거를 통해 교권주의자들의 권력싸움을 막고, 어떤 방법으로든 재선거를 견인하여 개혁국면을 주도하려 하였으나, 7.13 감독회장 재선거가 무효라는 참담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므로 진퇴양난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는 개혁총회의 좌절과 재선거 무효에 대한 사과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작금의 감리교회의 참담한 현실에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자성하는 가운데, 감리교회가 그렇게도 열망하는 개혁의 진전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절망만을 안겨준 과오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 이제야 말로 감리교회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갈 중대한 국면으로,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주십시오. 따라서 <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는 무엇보다도 감리교회의 제도적 모순에 대하여 과감히 대항하며 보다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행동하겠습니다. … 또한 장기적으로는 감리교회의 공교회성의 기초인 연대주의를 회복하고 선교적인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운동으로 나아가 교회의 대사회적인 책임을 고양하므로, 바른 목회의 표상을 정립하고 목회자들의 자긍심을 회복하는데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전국감리교목회자 개혁연대 성명서, 2010.12.19.)
그러므로 전감목의 의미와 역할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감리교 차세대(1970년대 – ‘80년대 - ’90년대 학번 세대) 목회자들의 개혁열망과 개혁의식과 개혁의지를 제 1, 2차 대회에 함께 모여 집단표출을 했다는 데서 찾으려고 합니다. 제 1차 대회에 1천여 명, 제 2차 대회에 5백여 명 참석, 그리고 개혁총회 개최 주장에 3천여 명이 사인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전 세대가 지나가고 다음 세대가 등장하는 전환점에서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개혁의지를 선명하게 표명했다는 점에서 감리교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4년 7월 현재도 그때 함께 참여 했던 목회자들의 가슴 깊은 곳에 개혁 열망의 숨소리가 살아있을 것입니다.
둘째, 총 2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감리교개혁운 동을 경험하는 소중한 사건이었습니다. 역사 속에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교회개혁운동 역시 어떤 시행착오나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성사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 막 감리교회에는 차세대의 지도력과 에너지와 헌신이 등장하는 시점이며, 현재 감리교회의 기반과 정신은 앞선 세대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이전 세대 1960년대 후반 학번들의 기운이 은퇴하고 있습니다. 다시 차세대에 의해, 차세대들의 비전과 투신과 기운과 정성이 들어간 새로운 특성과 지평의 한국감리교회공동체를 형성해야하는 한 시대의 전환점에서 경험하고 학습한 개혁의 전초전이나 준비운동 정도로 보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감목의 결정적인 한계가 드러납니다. 전감목의 활동기간을 ‘82학번 이 중심이 된 100인 기도회가 있던 2009년 4월에서 개혁의 실패에 대한 사과 성명서를 발표한 2010년 12월까지 잡아도 불과 1년 7개월여 정도밖에 안 됩니다. 여기서 좀 차분하게 바라다 볼 필요가 있는데, 어떻게 수십 년이 넘도록 낡아져간 150만 여의 교단공동체를 그렇게 단기간에 그 정신과 성격과 행태와 제도와 조직과 구조를 개혁해 낼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현재 감리교회는 개혁이 필요 없이 아주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전감목은 감리교회의 현 상태를 다각도에서 심원하게 진단하고 분석하고 개혁의 대안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접근하는 관점에서 근원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새로운 시대에 차세대의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한국 감리교회공동체를 다시 빚어낼 수 있는 새로운 비전과 지평과 패러다임과 로드맵과 궤도를 찾아 타고 가는 데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감목의 좌절이 지닌 의미와 여운은 너무나 중요하며, 그때 함께 했던 차세대 목회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 살아 있을 개혁열망과 개혁의지는 앞으로 한 세대 동안 계속 숨 쉬며 한국감리교회의 건강한 발길에서 소중한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