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으로 유명한 작가 기 드 모파상은 300여 편이나 되는 단편 소설을 쓰기도 하였는데 그 중 특히 인상적인 ‘목걸이’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그 외에 지금 소개하는 ‘비계덩어리’는 모파상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또한 ‘쥘르 삼촌’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데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중적인 성격은 인간 자체에 대한 심한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
모파상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는데 부모의 결별이 그의 인생과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독일과의 전쟁에 참전하게 되는데 그때 체험이 단편 소설의 소재가 되었는데 ‘비계덩어리’도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보바리 부인」의 저자 귀스타브 플로베르와의 인연은 모파상의 어머니가 플로베르의 가장 친한 친구의 여동생으로 그런 인연으로 모파상을 돌봐줄 것을 요청하여 그의 스승이자 양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플로베르를 통해 에밀 졸라나 투르게네프와 같은 유명한 작가들을 만나게 되었고, 에밀 졸라와 친한 작가 6명이 전쟁을 소재로 단편 소설 한 편씩을 기고하여 〈메당의 저녁(Les Soirées de Méda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는데 그때 모파상이 쓴 ‘비계덩어리’가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되어 단숨에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비계덩어리’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매춘부의 별명으로 실제로는 그녀 주위에 있던 인물들의 실체를 꼬집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줄거리를 요약하면 프랑스군은 이미 도주한 상태였고 독일군이 곧 쳐들어 온다는 소문이 루앙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두려움에 휩싸이게 한다.
곧이어 밀어닥친 독일군 앞에 정복자에게 보여야 할 패자의 의무를 프랑스인의 고아함을 구실 삼아 공손함으로 대처했고, 정복자들은 많은 돈을 징수한 까닭에 잔악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점차 대담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중 어떤 사람들은 루앙을 떠날 결심을 하는데 마차 한 대에 동승한 비슷한 기질을 가진 이들이 작품의 주요 인물들이다.
먼저 포도주 도매상인 르와조 부부는 협잡꾼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었다. 그들 곁에 약간은 위엄이 있고, 상류 계급에 속하는 카레 라마동 씨와 그의 젊은 부인이 앉았다. 그는 공장을 세 개나 가졌으며 도의회 의원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옆에 드 브레빌 백작 부부가 앉았는데 노르망디에서 가장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인물이었다.
그들 곁에 주기도문을 중얼거리며 묵주를 만지고 있는 두 명의 수녀는 하나는 늙고 하나는 병약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시선을 끌고 있었는데 남자는 민주주의자 코르뉴데로 저명인사들에게는 공포를 주는 존재였지만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여자는 ‘볼 드 쉬프’(비계덩어리)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뚱뚱한 그럼에도 싱싱한 모습을 보여주는 여인으로 그녀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자, 정숙한 여자들 사이에서 ‘매춘부’니 ‘공공의 수치’니 하며 쑥덕거리는 소리가 퍼져나왔다.
마차는 너무 느렸고 언덕길에서는 남자들이 내려 걸어야 했고 길가에 있는 농장에서 먹을 것을 얻을까 했지만 빵조차 구하지 못했다. 그때 불 드 쉬프가 먹을 것을 꺼내 맛있게 먹기 시작했고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게 되었다.
그녀가 “좀 드시겠어요.”하고 말하자 사람들은 거절하지 않았고 그녀가 퍽 얌전한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더 허물없이 대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어느 마을에서 묵게 되었을 때 한 독일인이 “엘리자베트 루세양이 누구죠. 프러시아 장교가 직접 할 이야기가 있답니다.”라고 하자 볼 드 쉬프는 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마차가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무르자 사람들은 합세해서 그녀가 장교를 만나도록 설득시킨다. 십여 분쯤 지나 몹시 화가 나서 돌아온 그녀가 “그 작자가 나와 함께 자고 싶다는 거예요.”라고 말하자 그 말을 들은 모두가 분노한다.
하지만 시간이 계속 되자 르와조가 “저 매춘부가 언제까지 우리를 이 장소에 남아 있게 할 셈인가”하고 말하고 정중한 백작이, 한 여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 그녀 자신이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성이 난 르와조는 그 하찮은 여자의 손발을 묶어 넘겨주자고 한다.
백작 부인이 나이 많은 수녀에게 성인들의 위대한 업적에 관해 성인들도 죄악으로 여겨지는 행동들을 범했다며 그것이 신의 영광이나 타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 죄도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논리를 편다.
결국 볼 드 쉬프가 장교에게 가자 라마동 부인이 “여자들이란 군복 입은 사람에게 반하면, 프랑스인이건 프러시아인이건 상관없어요. 한심한 일이예요.”라고 한다.
그녀가 돌아오고 마차가 다시 떠나 한참을 갔을 때 사람들은 먹을 것을 꺼내 먹기 시작했고 어느 누구도 볼 드 쉬프에게 권하는 이가 없었다.
볼 드 쉬프는 계속해서 울었고 백작은 “어쩌란 말이오. 내 잘못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렸고 르와조 부인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부끄러워서 우는 거예요.”
코르뉴데는 의자 밑으로 긴 다리를 뻗고 팔짱을 끼고는, 짓궂은 장난을 생각해 낸 사람처럼 미소를 지으며 휘파람으로 ‘라 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를 불기 시작했다.
‘조국에 대한 성스러운 사랑이여, 인도하라, 떠받치라, 복수라는 우리 팔을. 자유, 사랑하는 자유여, 그대들의 수호자와 함께 싸우라.’
‘비계덩어리’를 읽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그 논리를 폄에 ‘신의 영광’을 주절대는, 그리고 그런 자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수녀들의 모습에서, 자칭 민주주의자라는 인간의 더 비열한 모습 속에서, 나 역시 더 나을 바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 때문에 존재 자체가 죄인인 인간의 실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요즘 한국교회를 통해 접하게 되는 부끄러운 뉴스들 역시 겉으로는 온갖 위선을 치장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더 비계덩어리처럼 느껴지는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 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