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47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47
  • 안양준
  • 승인 2024.06.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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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속에서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은 독자에게 불편함을 선사한다. 물론 작품을 비평하려는 의도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작품의 수준 때문에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에 대해 누가 감히 수준을 논하겠는가? 그럼에도 책장을 넘기는 내내 답답함을 감출 수 없을 뿐 아니라 완독한 후에도 마음 속 깊은 한 언저리에 무언가 짓눌리는 듯한 무언가가 남는 까닭이다.

물론 내용만으로만 본다면 요즘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장 드라마가 분명하다. 그런 드라마를 선호하지 않지만 그런 점에서 막장 드라마의 효시라 불려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빙점」은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들려지는 울림이 너무 큰 작품이다. 

등장 인물들도 평범의 수준을 넘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있는 인물들이고 도덕적인 기준에서 볼 때에도 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을만큼 인격적인 모습들을 갖춘 자들이다. 

나쓰에의 남편 게이조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병원 원장이었고, 나쓰에의 부친은 귀신이라 일컬어질 만큼 유명한 내과 의사였으며, 게이조의 학창시절 친구였던 다카키는 나쓰에를 사랑하여 부친에게 청원한 적이 있는 인근 삿포로 병원의 산부인과 의사이며 이후 독신으로 살고 있는 인물이다.

소설은 남편 병원의 안과의사인 무라이와 나쓰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뭇 여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무라이는 나쓰에가 난로의 재가 눈에 들어가 진찰을 받은 시점부터 너무 아름다운 그녀에게 매료되어 버렸다. 그런 무라이에 대해 나쓰에도 호감을 갖고 있었다. 무라이가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3살 밖에 안된 그녀의 딸 루리코가 들어와 무라이가 싫다고 말한다. 적당한 핑계로 루리코를 나가게 한 뒤 자신에게 키스하려는 무라이를 거절하자 그는 모멸감으로 돌아갔지만 결혼 후 6년만에 외간 남자의 키스를 볼에 받은 나쓰에의 감정은 흥분되었다.

이후 남편이 집에 돌아왔고 응접실 테이블에 담배꽁초와 커피잔을 보며 찾아온 손님이 누구일까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나갔던 루리코가 누군가에 의해 목이 졸려 죽임을 당한 것이다. 게이조의 마음 속에 무라이와 나쓰에에 대한 분노가 쌓인다. 루리코를 죽인 범인이 밝혀지지만 범인 사이시는 이미 유치장에서 목을 메어 죽은 후였다.

딸 아이를 낳고 싶다는 나쓰에의 말에 죽은 사이시의 딸을 양녀로 삼아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학창시절 자신이 자주 했던 ‘너의 적을 사랑해라.’는 예수의 말처럼 이를 실제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가정에 들어온 아이가 요코이다.

처음에 나쓰에는 요코를 무척 사랑했다. 7년의 시간이 흐른 후 무심코 남편의 읽기장 케이스 사이에 접어진 종이조각의 편지를 읽게 되었다. 요코를 데려오게 된 경위가 나쓰에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요코가 루리코를 죽인 범인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때부터 요코에 대한 미움이 시작되었다. 심지어 요코의 목을 조르기도 하였다. 돈도 주지 않고 학교에서 요구하는 준비물에 대해 무관심했으며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하는 요코가 미워 백지로 바꿔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요코는 예쁜 모습으로 자라났다. 오빠 도루는 어릴 적부터 친동생이 아닌 요코와 결혼할 마음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부모가 다투는 과정에서 요코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왜 요코를 데려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 후 부모에 대해 악감정을 품게 되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데려다 기른 딸이라는 사실을 요코도 알게 되었다.

이후 도루의 친구 기다하라와 사랑에 빠지고 그런 와중에 나쓰에는 기다하라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나쓰에는 분명하게 자신의 나이도 입장도 잊고 있었다. 나쓰에는 기다하라가 보낸 호의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미모가 아직은 충분히 20대 남자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가 어떤 사이로 보이겠냐는 나쓰에의 질문에 기다하라는 어떤 사이로 보이면 만족하겠냐고 반문한다. 자신의 돌아가신 어머님의 신성함이 침범 당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결국 요코와의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란다는 기다하라의 말에 요코가 자신의 딸 루리코를 죽인 범인의 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이를 들은 요코는 충격에 빠져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부모에게, 기다하라에게, 오빠 도루에게 세 장의 편지를 유서로 남기고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제 마음은 얼어버렸습니다. 저의 빙점은 너는 죄인의 자식이다, 라고 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무언가 불안한 예감에 집으로 돌아온 도루가 혼수상태의 요코를 발견하고 게이조는 다급하게 요코를 살리려고 하였다.

그때 다가온 다카키를 통해 요코의 부모가 살인범이 아닌 학창시절의 수재로 유명했던 나카가와 마쓰오와 연애하던 하숙집 미스코 게이코 사이에서 낳은 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범인의 자식이 아닌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미워했다는 생각에 나쓰에도 요코도 가엾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사이시도, 나쓰에도, 무라이도, 다카키도, 그리고 나카가와 미쓰오도, 미쓰이 게이코도, 모두 함께 요코가 여기까지 다다르게 한 원인들이다.’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서로 뜻하지 않게 깊이 엉키어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에 게이조는 새삼스럽게 두려움을 느꼈다.”

「빙점」을 읽으며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소설 속의 게이조가, 소설 속의 나쓰에가 결국 나란 존재인 사실을 깨닫게 되면 불편한 마음은 양심에 짓눌리게 되는 것이다. 

나쓰에가 어떤 책에서 ‘지나가 버린 시간만은 신이라도 되돌릴 수 없다.’고 쓰여져 있던 것을 기억해내는 것이나 게이조가 신의 존재나 영원에 관해서 교회의 청년들과 토론했던 기억들 모두 인간의 종교성을 상징하는 예표일 것이다.

연약하기에 신적 존재를 더듬어 찾아가는 인간, 미우라 아야꼬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메시지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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