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연회 예수학당 제3회 웨슬리 목회세미나 개최
경기연회 예수학당 제3회 웨슬리 목회세미나 개최
  • 곽일석
  • 승인 2024.06.1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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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새로운 동력은 "사회선교적(디아코니아적) 교회로의 갱신과 전환"에 있다 하겠다.

오늘 618() 오전11시에 활초관광농원(대표 홍상선 장로) & 카페 LA PLACE에서, 경기연회 예수학당이 주관하는 제3회 웨슬리목회세미나가 개최되었다.

본회의 총무인 이신덕 목사(은성교회)의 사회로 시작하여 황성호 목사(영신교회)가 기도하였으며, 회장인 곽일석 목사(원천교회)가 환영인사와 함께 내빈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강사이신 박인갑 박사(감신대 교수, 하이델베르트대학교 Ph.D) 를 소개하였다.

조금 낯선 학문 분야였던 [디아코니아학]의 개론적인 설명으로 서두를 열어가면서 종교개혁의 중심 사상으로서의 디아코니아를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강연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존 웨슬리의 디아코니아적 사상과 영성을 이야기하면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관하여 더욱 주목하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열정적인 강연으로 참석한 많은 목회자들에게 도전이 되고 힘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실제적인 관심에 있어서 디아코니아적 목회 전환을 위한 다양한 관심을 이야기 하는 가운데 시간 관계로 아쉬움을 남긴 채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이어서 질의응답이 있었으며, 박승호 목사(오산열린교회)의 폐회기도로 세미나를 마쳤다.

이후 주최 측에서 준비한 점심식사를 함께 나누었으며, 오산열린교회 박승호 목사와 수원성교회 임일우 목사의 후원으로 식사 후에도 카페 LA PLACE에서 더 많은 대화들을 나누다가 자유롭게 헤어졌다.

아래의 본문은 제3회 웨슬리 목회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으로, 지면을 통해 공유하고자 한다. ‘디아코니아적 목회 전환을 위한 실천적 관심을 기초로 강연의 내용의 일부를 정리해 본다.

교회는 사회 안에 존재하며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킬 구체적인 장은 바로 사회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디아코니아적 책임이라 하겠다. 디아코니아 즉 섬김을 통한 사회적 변혁은 교회에 맡겨진 중대한 사명의 하나인 것이다.

원활한 디아코니아적 목회를 위해서는 우선 지역사회의 실태를 세밀하게 조사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본적인 지역사회 조사내용은 크게 자연환경 조사 (지역, 특성), 인구(연령별, 계층별)-거주지(인구밀도, 이동)-사회구조(특성, 인접환경)의 조사, 향토문화와 전통에 관한 조사 (전통, 문화, 종교), 산업과 경제생활 조사 (생활수준, 생활방식), 주민들의 생활과 의식 조사 (의식주, 도덕, 행동방식), 사회단체와 공공시설과 행정구조 조사 (복지시설 포함) 등으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단순히 지엽적 한 문제를 다루기 이전에 근본적 구조의 변화와 목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하지 않으면 의미가 적을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본적 교회의 구조변화와 그에 상응하는 목회적 전환을 위해 상황분석과 해결모색을 위한 방법과 내용을 다루어 보면서, 실천적으로는 지역사회를 위한 디아코니아적 전환을 실천해 보자.

첫째로, 교회건물을 활용하는 방법과 교회 밖 현장 활동을 통한 방법이 있다. 교회건물을 이용하는 방법만 하더라도 그 활용대상은 다양할 수 있다. 영세 맞벌이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탁아소에서부터 청소년들을 위한 진로상담, 건전한 특기활동, 독서실운영, 대안학교, 체육대회, 영세민들을 위한 결혼식장, 주부대상의 각종 강좌개설, 지역사회 성인들을 위한 각종 강좌, 빈민층을 위한 일자리소개소, 중고물품을 나누는 자선시장, 노인들을 위한 노인대학, 경로대회 건강강좌, 등등 상황과 여건에 맞는 활동내용들을 개발하여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교회 외적으로는, 교회가 재정능력이 가능하여 놀이터, 양로원 같은 기관을 건립하여 운영할 수도 있고, 인적자원만 가능하다면 기존의 기관들을 방문봉사나 결연 또는 후원도 가능할 것이다. 그 외에도 의료봉사, 노동봉사 등의 자원봉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입양 또는 소년소녀 가장과의 결연 등도 가능하고, 더 나아가 과소비억제운동, 자연환경보호운동, 부정부패추방운동 등 사회적 정화운동에도 앞장 설 수 있을 것이다.

1)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 모인 인적자원이 중요하다. 각종 전문인 또는 직장인들이 가진 인적자원을 합당하게 활용한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인적자원들이 자원하여 자발적으로 활용되어지기 위해서는 디아코니아적 인식이 바로 되는 전제가 필요하다.

2)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이 시설과 공간이다. 교회의 기본목적 이외에 지역사회를 위해 활용 가능한 시설자원으로 개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3) 재정자원의 동원문제이다. 디아코니아적 재정동원은 지역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시킴으로써 디아코니아적 기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기금이나 헌금을 통하여 참여한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4) 생필품을 비롯하여 의료용품, 약품, 식품, 교육자료 등의 물품자원의 동원 역시 필요하다.

5) 조직자원의 동원도 매우 중요하다. 교회의 조직을 치밀하고 구체적인 조직체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구역단위 속회조직을 아주 역동적으로 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

셋째로, 한국교회의 디아코니아적 사역의 방향, 디아코니아의 범위와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한 마디로 디아코니아 만큼 전 방위적이며, 전천후 적이며, 통전적인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필요로 하고 보다 급선무적인 것을 감지해 내고 도전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디아코니아의 새로운 과제들을 미래적 방향에서 모색해 보고, 현실적으로 보다 필요성이 있는 몇 가지 방향들에 대해 프로그램 내지 사업 차원에서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대부분 그 동안의 목회방향은 교회 안에서만 가르치고 양육하는 프로그램으로 점철되어 왔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라, 이제부터는 교회 밖으로 눈을 돌려 "나눔과 섬김의 디아코니아적 (사회봉사적) 실천목회로 개혁하여야 한다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동안 교회는 성도들에게 믿음만 강조하여 가르치기만 하고 실제로 그 믿음을 사랑으로 실천하는 일에는 등한하였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교회 내에만 안주시킨 바빌론적 포로상태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전 루터가 비유로 언급한 바벨론 포로 속의 교회가 바로 오늘의 한국교회에도 해당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번 전반학기 내내 살펴본 진정한 의미의 성서적 관심과 성서의 핵심사상인 디아코니아 사상과 그것을 실현하는 이웃사랑을 망각하고 무관심해 왔기 때문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여러 조사기관에 의하면 한국교회의 예산 중 사회봉사비는 불과 7% 이내로 나타나고 있으며, 심지어 4.5% 미만이라는 통계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비록 타종교보다 총 사회지출비가 앞선다고 자부 내지 자위할지라도, 오늘의 한국교회의 현실이 어떠한 지를 뚜렷이 파악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한국교회가 이토록 사회봉사적(디아코니아적) 역할수행에 등한히 해 올 수 밖에 없었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보다도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오인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고, 그로 인해 한국 교회의 신앙고백과 신학사상에서의 신앙이 실천이나 봉사적인 면이 강조 되지 않고 단순히 믿음이라는 피상적인 것들만을 강조해 온 것 등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현실적 내지 실천적 면에서의 문제들로는 개 교회 중심적인 구조상의 문제를 비롯한 디아코니아(사회봉사)에 관련된 교회교육의 부재 및 훈련을 통한 경험부족과 교회의 할당된 재정부족 등을 문제점으로 들 수 있겠다.

따라서 이제 선교 2세기를 맞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가르치고 실천해야 할 선교적 과제 내지 성장의 새로운 동력은 "사회선교적(디아코니아적) 교회로의 갱신과 전환"에 있다 하겠다.

이제까지의 한국교회는 지나친 교회중심적인 모습으로,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성도들을 교회 안에만 감금 시켜두는 모습의 교회를 이상적인 교회로, 또 교회의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것으로 알고 그 자리에 정주하며 만족해 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모이고 흩어지며참다운 나눔섬김이라는 디아코니아를 능동적으로 수행할 때, 성도들은 참 신앙과 참 소망과 참 사랑을 바로 깨달아 참 구원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을 가르치고 훈련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바로 참 목회요, 교회의 리더로서의 올바른 목회자일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해방되어야 한다. 성도들을 해방시켜 사랑을 위한 자유를 누리게 해야 할 것이다. 참다운 자유와 그 자유를 통한 기쁨은 사랑의 행위 속에 있기 마련인 것이다. 신앙의 자유, 그것은 바로 사랑을 의미한다. 이것을 가능케 해 주는 유일한 길이 바로 디아코니아이다. 이 디아코니아가 교회의 핵심 사명이자 교회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이자 교회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디아코니아의 실현을 위하여, 먼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예수의 사랑의 정신을 선포해야 할 것이며, 가난한자와 병든자,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와 나눔과 섬김을 갖는 사회공동체적 교회로 세상에 열려 있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바빌론 유배처럼 된 교회와 포로처럼 된 성도들이 오늘의 왜곡된 한국교회의 상황 속에서,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져온 실천 있는 신앙관사랑(행함)을 포함한 믿음의 회복을 통해 구속적 해방과 사랑의 자유를 누리게 되기를 바라며, 디아코니아적 목회관과 교회관의 회복은 실로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보면서, 이를 위해 목회현장 속에서 실천되도록 하기 위한 목회의 방향을 디아코니아적 목회를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의 개신교회는 디아코니아교회로 귀향하여야 할 것이다.

디아코니아적 실천적 목회사역에로의 귀향은 결과적으로 우선 개체교회가 살아있는 교회공동체로 발전하게 되면서, 교인들의 실천적 신앙관 형성으로 영적 부흥을 이루게 될 것이며, 또한 왜곡된 한국교회에 대한 각성과 대안을 제시하게 됨으로써 특히 침체된 한국교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게 될 뿐만 아니라, 참 신앙관과 바른 구원관으로 이상적 기독교운동을 펼치는 바른 목회자의 리더십으로 말미암아 영적 카리스마를 회복하게 되어 일반사회로부터의 바람직한 교회인식과 함께 선교효과의 극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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