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46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46
  • 안양준
  • 승인 2024.06.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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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어느 누구도 그러한 평론을 내리지 않지만 니체의 ‘초인’ 사상에 대한 기독교 진리의 승리라고 한 마디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 구성은 단순할 수 있지만 엄청난 분량과 수많은 등장 인물과 성격, 그와 비례하는 여러 사건들로 인해 자칫 작가의 의중을 놓치기 쉬운 작품이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내면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갖춘 작가로 이는 그의 평범하지 않은 삶에서 비롯되었기에 이에 대한 이해도 없이는 더욱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

1849년 12월 22일, 페테르부르그의 세묘노프 연병장에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전제정치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은 21명의 죄수들이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중에 도스토예프스키가 포함되어 있었다. 극한의 시간에 황제의 사면을 통보하기 위해 흰 수건을 흔들며 달려오는 한 사람, 가까스로 생명을 구할 수는 있었으나 시베리아의 유배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까?

‘죄와 벌’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단서들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는 주인공이 발표했던 논문의 내용이다. 예심판사인 포르피리와의 대화 중에 등장하는 <정간 논평>에 실린 「범죄론」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정작 자신은 그것이 실렸는지조차 몰랐던 것이었다. 범죄가 진행되는 동안 범죄자의 심리 상태를 고찰한 것으로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분류하여 비범한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고 온갖 방식으로 법률을 뛰어넘을 권리가 있는데, 그 이유가 비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대부터 리쿠르고스, 솔론, 마호메트, 나폴레옹 등 인류의 입법자나 제정자들 모두가 범죄자였는데 이들이 세계를 움직이고 목표를 향해 이끌고 가는 미래의 주인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전당포 주인인 노파의 살인 동기는 성립되는 것이다.

“노파는 해로운 존재니까 이(蝨)나 바퀴벌레의 목숨, 아니, 그만도 못한 목숨이야. 남의 목숨을 좀먹고 있거든.”

둘째는 당시 사회 현실이다. 주인공이 살던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수도로 ‘베드로의 도시’라는 의미로 1860년대 농노제 폐지와 토지개혁으로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 실업난과 주택난, 범죄와 매춘, 알코올중독과 고리대금 등 온갖 범죄의 온상이었다. 

책 중에 관리 출신 알콜중독자 마르멜라도프와의 대화에 “가난은 죄가 아니라는데, 이건 진리입니다. 하지만 극빈이라면, 형씨, 극빈은 죄랍니다.”라고 한다. 그가 “우리 딸애는 황색 감찰을 갖고 산다오”라고 한 말에서 황색 감찰은 제정 러시아에서 매춘부에게 발급된 신분증이다. 그가 주님은 자신을 용서해 주실 거라고 늘어놓는 장황설이 넋두리에 불과하지만 그런 그도 “주여, 주님의 왕국이 도래하길!”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느 시대에나 술주정이야 있게 마련이지만 그러한 일이 다반사인 사회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셋째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상경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작은 연금과 가정교사를 하며 자신의 학비를 보내주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결혼을 조건으로 올라온다는 편지를 보내왔을 때 주인공은 분개한다. 더욱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려고 결심하게 된다.

상대는 7등관이 된 루쥔이라는 인물로 그 먼 거리를 3등칸을 타고 온다는 말에 그의 인물됨을 파악한 까닭이다.

소설 속에 주인공은 자신의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가난한 이웃을 보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인물이다.

자신의 성품과 동떨어진 환경,

그는 거리를 배회하는 이방인이었고, 지성답게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소박한 꿈과 도달하지 못할 높은 이상을 갖춘 인물이지만 현실은 주인 아주머니의 극성을 피해다닐 수밖에 없는 한량에 불과하였다. 당연히 꿈꿀 수밖에 없는 인간. 

“그 광경을 예술적으로 완성해 주기에 충분한 디테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설령 꿈을 꾼 자가 푸쉬킨이나 투르게네프 같은 예술가일지라도 생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꿈, 이런 병적인 꿈은 항상 오랫동안 기억되어, 인간의 교란되고 흥분한 조직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가 살인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기도한다.

‘주여! 저에게 저의 길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저 빌어먹을… 저의 몽상을 단념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최근 들어 더 강해진 미신적인 성향이 누군가 자신이 살인 의지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엿들으며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마르멜라도프의 죽음 앞에서 그의 딸 소냐와의 만남. 그녀를 만난 후 그의 되뇌임은 ‘유로지브이! 유로지브이!’이다. 그 뜻은 ‘자주 백치에 가깝지만 동시에 성스럽게 여겨지는 존재’ 단순하게 표현하면 ‘성(聖) 바보’이다.

그녀의 서랍장 위에 놓인 손떼가 묻은 낡은 신약성경, 그는 그녀에게 ‘나사로의 부활’ 부분을 읽어 달라고 조른다.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대인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이후 그는 자수를 하고 재판 이후 8년이라는 제2급 징역행을 선고받아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날 때 소냐와 함께 떠난다. 사순절이 끝날 무렵 그가 본 환몽은 전 세계에 무서운 돌림병이 돌고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며 화재와 기근이 시작되는 상황에 목숨을 건지는 사람은 몇 명에 불과했는데 이들이야 말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순결하고 선택된 자들이었다.

비범한 자의 범죄는 용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명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 외에는 없음을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 앞에 인간이 만든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이 작품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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